그리고 나를 보며
Y2K. 2022년 패션 트렌드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단어다. Y는 연도(year), K는 '1000'을 뜻하는 킬로(kilo)를 의미하며 2000년을 가리킨다. Y2K는 컴퓨터가 2000년을 '00'으로 인식해 1900년과 혼동이 일어나면서 생긴 천 년대의 오류로 '밀레니엄 버그'로도 불린다. 2000년대 패션을 'Y2K'라고 표현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는데, 올해 Y2K의 패션이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카프 두건이나 체인벨트, 벨벳 트레이닝복, 틴트 선글라스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아랫배를 드러내는 크롭탑과 함께 밑위길이가 짧은 로우 라이즈 팬츠가 있고 화려한 패턴이나 그림, 캐릭터가 그려진 옷도 다시 돌아오는 패션이라고 한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유행이 한 물 갔다거나 촌스럽다고 지나간 패션을 돌아보고, 요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을 거쳐서 다시 유행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스카프 두건이나 로우 라이즈 팬츠가 다시 유행한다는 건 도통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패션의 세계는 시대를 역행하기도 하나보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들은 벌써 Y2K의 패션을 소화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나는 어떨까. 평소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나는 트렌드에 맞춰가지 않는다. 옷도 내가 좋고 편한 것을 입으면 그만이다. 옷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패션은 잘 알지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옷을 입으면 그제야 그 옷이 괜찮아 보여 한참을 고민하다가 뒤늦게 따라사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튀는 선발주자보다 사람들에게 묻어가는 후발주자가 속 편하다고 할까.
한 번은 친구에게 나는 독특한 옷이 좋다고 하자, 친구가 하는 말이 '그런데 막상 너는 그런 옷을 사지 않고 무난한 옷을 사지 않냐'라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유니크한 패션을 보면 시선이 확 끌리는데 막상 내 옷을 사게 될 때는 평상시에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게 됐다. 그 이유는 옷의 활용도가 가장 크겠지만, 나에게 어울리는지를 생각할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빼놓을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입고 싶은 옷과 주변 사람이 봐도 괜찮은 옷, 그 중간지점을 고르며 살아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독특한 게 좋았다.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건, 평범해 보였고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고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특별해 보였고 멋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옷이 중학생 때였는데, 알록달록 화려한 독수리 한 마리가 크게 그려진 티셔츠였다. 당시에는 분명 마음에 들어서 샀을 텐데, 시간이 지나서 그 옷을 보니 이런 옷을 도대체 왜 샀나 싶었고 도저히 못 입겠다 싶은 옷 1순위가 되어 버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버린 옷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옷이 좀 특이해서 기억에 남을 뿐.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그 옷을 샀던 나의 심리를 생각하면, 남들과 다른 화려한 옷으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그 옷을 버리고 미련이 남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화려함으로 나를 꾸미고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내가 무슨 옷을 좋아한다고 한 줄로 정리하려니 어렵다. 다만 남들과 다른 개성이라는 게 꼭 화려하고 튀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위 옷은 날개라고 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생각인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스티브 잡스를 말하고 싶다.
그는 1998년부터 12년간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를 고수했다. 이 정도면 아주 지독하다. 그는 하나의 패션만 고집하는 게 질리지도 않았을까. 어쨌든, 그를 보면 "Simple is Best"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패션에서부터 삶에 대한 그의 철학과 분위기 등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티브잡스는 남들과 다른 유니크한 패션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굉장히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카리스마 있고 멋지다.
그렇다고 스티브잡스처럼 하나의 옷만 고집하며 입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지루하다. 각자에게 맞는 고유한 특성이 있을 테니,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게 더 좋겠다. 그 과정에서 이것도 시도하고 저것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뭐든 말이다. 돌고 도는 유행처럼 결국엔 돌고 돌아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게, 내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고 개성인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나는 무난하고 편안함을 주는 옷이 좋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라면 남들의 시선은 뒤로 하고 과감한 도전도 해보리라.
(대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