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이대로 나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나는 나를 방치하고 있었다. 무기력에 잠식되어 무엇도 할 의욕이 나지 않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우울증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공기 좋은 나라에 와서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를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건, 잘 지내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점점 주변 사람들의 연락에 답을 하는 것도, 누구를 만나서 에너지를 쓰는 것도 너무 지쳐만 갔다. 이런 내 상태는 일을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다. 영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영어가 필요한 서비스직을 구했는데, 어떻게든 부딪히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준비 없이 링 위에 올라선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5주 만에 일을 그만뒀다. 고작 5주 만에. 처음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힘들었던 사수와 비슷한 상사를 만나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항상 화가 나있는 표정, 지적하는 말투, 설마 그것도 모르냐며 대놓고 무시하는 상사를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 그때의 상처를 디딤돌로 삼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푸시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압박감에 힘들고 속이 쓰렸다. 그동안 한국에서 처방해 온 위장약을 먹을 일이 없었는데, 종일 속이 쓰렸던 어떤 날 위장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곳에서 5주간 일을 하면서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는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의 존재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다. 안 그래도 힘든데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더 힘들었다. 글을 쓰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불쑥 나타나는 나의 못난 모습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여기 와서 내 일상을 돌아보니 엉망이었다. 영양이 무너진 식단과 끊임없이 먹는 간식으로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심해졌다. 영어공부, 글쓰기는 전혀 못하고 있는 집중력 마이너스의 상태로 폰을 잡았다 하면 SNS, 유튜브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새로 마음을 먹고 결심하고 되뇌면서도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 상태였다. 관계가 버거운 지경에 이르고 그 속에서 내가 싫어지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뉴질랜드의 삶이 어떤지 보여주기식의 글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좀 살아야겠어서, 어딘가에 내 마음을 쏟아놔야 살겠어서 노트북을 열었고 솔직한 글을 쓰고 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모두 내려놨기에 비로소 나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일기는 종종 썼는데, 그것도 꾸준히 지속하기 힘들어서 브런치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깊은 절망을 하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결심해도 다시 무너지는 사람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참된 시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부터가 아닌 오늘 글을 쓰는 이 순간부터 나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나를 병들게 했던 것들을 버리려면 힘들겠지만, 매일의 나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