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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Sep 26. 2020

어쩌면 당연한 것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식탐이 많았다. 아기 때는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었다고 한다. 식탐이 많은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먹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닮은 것도 있지만 풍족하지 못한 가정환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위로는 오빠,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고 나는 중간에 껴서 샌드위치로 자랐다. 엄마가 소시지나 동그랑땡 같은 맛있는 반찬을 해주시면서 삼 남매가 먹을 1인당 할당량을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더 많이 먹었냐는 걸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학교 앞에 분식점은 나의 작은 낙이었고 불량식품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위장이 건강하지 못한 탓에 중학교 때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배앓이는 갈수록 점점 심해졌고 절정을 찍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과민 대장증후군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말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수험생에게 그게 가능한 말인가 싶었다.


엄마는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딸을 위해서 그 당시 유명(?)했던 건강한 채소가 가득한 해독주스를 아침마다 만들어주셨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주스였으나 나에게는 고약한 냄새와 이상한 맛이었기에 감사하게 먹지 못하고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이 끝나자, 내 위장은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본래 예민한 성격인지라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바로 위장이 아팠다. 작년에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때마다 내 위장은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그렇게 힘들다던, 그래서 피하고 싶었던 위장과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검사는 금방 끝났다. 검사를 위한 준비 과정이 매우 끔찍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계속 배가 아프다 보니 이상이 있을까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받았던 것인데 의사 선생님 왈, “깨끗하고 이상 없습니다. 아픈 이유는 80%가 신경성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이놈의 신경성, 나도 스트레스 안 받고 싶다고요.


먹고 아픈 것을 반복하는 나의 일상과 달리, 후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강철 위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장트러블이라는 새장에 갇혀 끙끙대며 날지 못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며 훨훨 나는 새와 같았다고 할까. 세상은 넓고 맛집은 왜 이렇게 많은지, 늘 딜레마에 빠진다. 단짠의 향연에 길들여진 입맛은 건강한 음식보다는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을 찾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소음인이고 그만큼 위장이 작아서 소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 중에 미식가들이 많다고 했다. 조금밖에 먹지 못하니까 먹을 때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한다고. 그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만큼 소화하지 못해서 늘 만족이 없었다. 그나마 한식을 먹을 때는 뱃속이 편했는데,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던 건 간식을 정말 끊임없이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먹는 거로 풀었다. 그러다 보니 위장약도 달고 살았다. 내 위장은 이미 병들어 있었는데, 계속해서 들어오는 음식물에 쉬지 않고 일하다가 결국 더는 못해 먹겠다고 파업을 선포한 꼴이었다.


역류성 식도염에 갑자기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식습관을 돌이켜보니 이미 오래 진행된 상태에서 드러난 것이었다. 내가 식탐이 많은 이유에 대해 풍족하지 못한 가정환경도 한몫했을 거라고 했지만, 오빠랑 남동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내가 제일 식탐이 많았다. 물론 아빠 다음으로. 나는 엄마의 작은 위장 크기를 물려받았는데 거기에 아빠의 거대한 식탐을 닮았다. 그러니 내 위장은 쉽게 피로해졌다. 그렇게 피로가 쌓이다가 아플 때, “내 위장아, 너는 주인을 잘못 만났다.”라고 말했다. 변기 위에서 주님을 간절하게 찾으며 회개 기도를 하기도 했다.


아픔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위장병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인지하고 나니까 당연했음을 인정하게 되고 전보다 침착하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고쳐가야 할지 생각했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이 문제가 올 수밖에 없었던 당연함을 발견한 그 지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말이다. 그것은 작지만, 결코 작은 게 아니니까. 나의 식단을 인스턴트 푸드에서 슬로 푸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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