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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Sep 26. 2020

어느 날,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아픔의 시작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으로 각자 쌀국수 1인분에 사장님의 인심이 가득 담긴 짜조(베트남식 만두)를 먹었다. 얼큰한 국물에 푸짐한 쌀국수와 겉은 바삭한데 속은 부드러운 짜조는 정말 찰떡궁합이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친구에게 숨은 맛집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는 든든히 채워졌지만,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술을 좋아하는 친구의 제안에 난생처음으로 와인바를 가게 되었다. 가게의 크기는 아담했지만 인테리어는 취향 저격에 감성이 넘치는 곳이었다. 금요일 밤이었던지라 분위기는 더욱 흥겨웠고 톡톡 쏘는 스파클링 와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취하는 기분이었다. 과식한 상태에서 둘이 와인 한 병과 치즈 플레이트를 안주로 먹었으니,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다.


먹는 순간은 행복했다...

그러나 과식한 날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게 생각했다. 집에 와서도 배가 불러서 소화를 시킨 후에 자려고 좀 늦게 잠이 들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평소보다 트림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왔다. 명치는 답답했고 식도가 꽉 막힌 느낌이 드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속이 계속 불편했다. 그날은 주말이었기에 동네 병원은 쉬었고 답답한 마음에 증상에 대해서 이것저것 검색해봤는데 아무래도 역류성 식도염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은 위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해 식도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가슴 쓰림, 가슴의 답답함, 속 쓰림, 신트림, 목에 이물질이 걸린 듯한 느낌, 목 쓰림, 목소리 변화, 가슴통증 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엄마도 내 증상이 역류성 식도염이 맞는 것 같다며 작년에 엄마도 걸려서 두 달 동안 고생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두 달이나?라고 생각하며 놀랐다. 그땐 이렇게 길어질 줄 전혀 몰랐다.


원인은 과식한 상태에서 평소에 먹지 않는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같이 먹었던 친구는 괜찮았는데 연약한 내 유리 내장은 견디질 못했나 보다. 웬만해서 끼니를 거르지 않는데 속이 계속 불편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강제 금식을 해야 했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쫄쫄 굶고 동네 병원에 갔다. 기운이 너무 없어서 수액도 맞고 죽을 먹은 후에 약도 먹었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 후에 나름대로 식이요법과 소화에 좋다는 운동을 병행하였으나 크게 차도가 없었다. 어떤 날은 거의 종일 굶기도 했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한 달이 다 된 끝에, 결국 한의원을 가게 되었다. 한약은 워낙 비싸서 생각을 못 했는데 얼른 낫고 싶은 마음에 비싼 돈을 주고 맛없는 한약을 먹기 시작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는가. 열심히 번 돈이 이렇게 약값으로 나가다니. 마음이 쓰라렸다. 보름치의 두둑한 한약과 복용법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먹지 말라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정말이지, 먹을 게 없었다. 위장에 좋은 음식도 함께 적혀 있었다. 양배추 된장국이 좋단다.


사실 그동안 식이요법을 나름대로 해왔다고 했지만, 그것은 정말 나름대로였기에 평소 먹는 것에서 절제만 했을 뿐, 철저하게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비싼 한약도 먹고 있으니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식단 관리를 제대로 해야만 했다. 인스턴트 음식을 강제로 끊어야 했으며, 아주 천천히 소식해야 했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에서 꿀팁으로 알려준 티스푼으로 밥을 먹기도 했다. 그 작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간에 기별이 가겠는가. 게다가 나는 평소에 다람쥐처럼 음식을 두 볼에 한가득 담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작은 것부터 바꿔야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하니까 불쾌지수가 쌓여서 쉽게 짜증이 났다. 줄곧 인스턴트 음식과 절친하게 지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멀어져야 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실제로 밀가루 중독이 있지 않은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중독 상태로 지내왔음에도 알지 못했다. 위장이 자주 아프기도 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애써 외면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내 아픔에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동안 자주 아픈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한 차원 더 심해진 아픔에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먹는 즐거움을 사라지게 만든 주범, 역류성 식도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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