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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01. 2020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당신은 열일곱이 아니라 스물일곱이에요”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내게, 어떤 분이 현실을 직시하라며 말했다. 스물여섯에 첫 직장에 들어가서 계약직 일 년을 마치고 스물일곱에 퇴사했다. 미래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지라,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공은 사회복지였지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그것을 찾고 싶었다. 스물일곱, 누군가는 취업 준비를 위해 치열하게 스펙을 쌓고 또 누군가는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데 나는 이제야 뒤늦은 진로 탐색을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의 휴학 생활을 보냈던 스물셋, 대학을 졸업하고 또다시 1년의 공백기를 보냈던 스물다섯, 그리고 지금은 스물일곱. 쉴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는 거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계속 쉬어가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학과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진로가 고민됐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서 주변에서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였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퇴사 후에 갑작스럽게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게 되면서, 내가 가진 아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곧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아픔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나쳤던 아픔도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이 보는 나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좀 더 ‘내가 보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그런 나를 가꾸고 다듬어가는 중이다. 내게 어떤 아픔이 있고, 내가 본 나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어떤 노력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지 글을 적으면서 담았다.


올해 4월 말에 걸린 역류성 식도염은 현재 6개월이 넘었다. (사실 그전부터 만성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역류성 식도염이 낫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완전히 회복되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언제쯤 완벽하게 회복될지는 알 수 없었기에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쉽게 낫지 않는 병도, 여전히 꿈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혼자 가는 길은 빨리 갈 수 있을지라도 외롭고 금방 지쳐버린다. 하지만 함께 가는 길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의지하며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느릴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가진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응원을 보낸다. 지금 어떤 모습이든, 가지고 있는 아픔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아픔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시작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꾸며 조금 느리게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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