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곧 있으면 영하로 떨어질 것 같다. 습하지 않고 건조한 겨울의 공기는 맑고 깨끗하지만 때론 고요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런 겨울만의 분위기는 나름대로 좋지만,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추운 건 질색이다. 게다가 수족냉증이 있어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서부터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에는 족욕을 자주 한다. 요즘은 매일 한 번은 기본이고 두 번을 할 때도 있다. 따로 족욕기가 있는 건 아니다.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뜨겁게 끓여서 준비한다. 발을 담가 둔 대야에 물이 식을 때쯤, 전기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주면서 잔잔한 족욕 시간을 즐긴다.
“아- 따뜻해”
발이 뜨끈해지는 걸로도 몸과 마음이 녹는다. 체질적으로 차가운 발은 족욕을 했더라도 금방 식어버리긴 하지만, 언젠가 수족냉증이 고쳐지길 바라면서 나를 위해 소소한 시간을 갖는다. 안 고쳐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소중한 족욕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족욕으로 나의 차가운 발을 달래면서 온기를 불어넣어주려고 한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목욕탕을 좋아했다. 사우나는 숨 막히게 뜨거운 느낌이 답답해서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뜨끈한 탕에 들어가는 건 좋아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없던 피로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목욕탕 안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기도 하고 몸을 돌려서 탕 밖에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시끌시끌한 아주머니들의 수다, 목욕탕 하면 빠질 수 없는 때를 미는 모습 등 친근한 목욕탕의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랑 함께 갈 때는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목욕탕을 가지 못했다. 가끔 집에서 반신욕을 하지만 그걸로는 뭔가 충분하지 않다. 목욕탕에서 목욕이 끝나면 산뜻하고 개운한 상태에서 계란과 식혜를 먹으면서 행복함을 느꼈는데, 지금은 반신욕이 끝나고 계란과 식혜를 안 먹어서 그런 걸까. 아님, 집에는 목욕탕처럼 몸을 푹 담글 큰 탕이 없어서 그런 걸까. 글쎄, 딱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졌던 목욕탕의 풍경.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저 목욕을 하려고 목욕탕에 모였다는 사실 하나로 친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 속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목욕탕 가기를 좋아했던 발길마저 끊어지도록 만들었다. 코로나가 참으로 야속하다. ‘온기가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목욕탕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 '온기가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표현은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릴레이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