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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18. 2020

무뚝뚝한 게 잘못인가요?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난 아기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다고 한다.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고 친할머니가 오라 해도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이 퍽 서운하셨는지 만날 때마다 두고두고 그 얘기를 하셨다. 할머니가 안아주려고 해도 내가 잘 안기지 않았다며. 기억도 나지 않는 아기 때의 모습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쓱하게 웃어넘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할머니가 서운한 기색을 비추었을 때, 애교를 부리면서 살갑게 풀어드리는 손녀였다면 좋았겠지만 소심하고 무뚝뚝한 성격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수줍음이 많아서 어른들과 같이 있는 자리는 어찌나 불편하던지. 명절이나 가족행사로 친척들과 모일 때면, 나보다 세 살 많은 오빠는 어른들한테 예쁨을 많이 받았는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 사이에서 딱히 할 말도 없고 시선은 바닥을 향했고 자리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그래도 남동생이 함께 갈 때는 의지가 되어서 불편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친척 중 한 분은 이런 나를 보고 곰 같다고 했다. 아빠한테 애교도 부리고 그러라면서. 생각해보면 이때까지 아빠한테 애교를 부린 기억이 없다. ‘애교’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연애를 하면 달라진다고 하던데 , 나에겐 별로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야, 여보야 등등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호칭으로 부른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으면서도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남자친구는 무뚝뚝한 내 말과 행동을 다 귀엽게 봐줬다.




어쨌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런 나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분은 나를 보고 겉모습만 봤을 때는 천생 여자 같은데 입을 열면 여장군 같다고 얘기하셨다. 실제로 털털한 모습도 있고 목소리의 톤도 조금 낮은 편이다. 당시 여장군 같다는 말에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당차고 굳세다고 얘기해주시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 좋게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어 보면서 ‘내가 여성스럽지 못하고 너무 남자 같나?’라는 고민도 했다.


특히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서인지, 첫 직장에서 전화 업무를 하면서 지적을 많이 받았다. 말투가 너무 딱딱하다고, 조금 더 상냥하게 응대하라고 하셨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었다. 혼나는 게 당연하니까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연습했다. 원래 내가 가진 목소리의 톤이 낮다 보니, 전화로 응대할 때는 평소보다 톤을 조금 높이고, 툭툭 끊어지는 말투를 부드럽고 상냥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상사가 알려주신 방법대로 전화할 때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다시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같은 문제로 지적을 당하면서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한계와 자괴감을 느꼈다.


상사는 내가 봐도 전화 업무에 탁월하신 분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콜센터의 전화 응대를 들어봤지만, 그 업종에서 일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게 응대하셨다. 내가 들었던 전화 응대 중에 가장 친절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전화로 존중받고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곤란한 전화에는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 대하셨고 막힘이 없었다. ‘저게 바로 내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분도 처음부터 그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분의 상사로부터 혼나기도 하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해온 처세술이 쌓였을 테고,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응대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노력해왔을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인정받고자 노력했지만,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은 이제 부질없다. 1년의 계약직을 마치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남들은 버티면서 성장하는데 그 힘이 없는 나는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퇴사할 때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상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맞았다.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계속 위축되다 못해, 쪼그라드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참 힘들었다. 나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계속 부정했고 채찍질을 가해왔다.




하지만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누구나 잘하는 일이 하나씩 있다. 그분은 전화업무에 탁월하셨다면, 나는 또 다른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동안은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퇴사하는 날이 가까워질 때쯤 상사는 내게 글을 좀 잘 쓰는 편이라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얘기해주셨다. 지적받는 데 익숙했던 내게 그 칭찬 한 마디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고,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 현재 대학원은 가지 않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중이다.


여전히 나는 변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은 톤에 무뚝뚝하고 애교도 없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애써 나를 힘겹게 바꿔가며 변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물론 업무적으로 어느 정도의 스킬은 필요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야겠지만, 저마다 약점이 있듯이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약점을 보완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강점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약점도 나만의 개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아빠한테 애교 좀 부리라는 친척 분의 말에 ‘나는 왜 애교가 없고 무뚝뚝할까?’라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런 나를 조금씩 인정하면서 친척 모임에서 그 말을 똑같이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모, 생긴 대로 살게요.”라고.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분위기가 딱딱해질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내 생각을 존중해주셔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무뚝뚝한 성격은 잘못된 게 아니다. 내 말투는 앞으로도 좀 더 부드럽고 둥글게 고쳐가야겠지만(누군가 상처 받지 않도록, 의도가 잘 전달되도록), 성격은 그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성격이 똑같다면 사는 재미가 없지 않을까? 자신의 성격이 못났다고 몰아세우는 사람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괜찮으니까, 우리 생긴 대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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