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1)
초등학교 1학년, 여덟 살. 뽀송뽀송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이 7세 반이었던 무지개반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었다.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를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가야 했다. 1학기 중간에 전학 갔던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낯선 친구들 앞에서 어떤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분홍색 사각형 필통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연필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그때만 해도 연필을 연필깎이로 뾰족하게 깎아서 필통에 들고 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부모님이 사주신 새 필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필통이 마음에 들었고 소중하게 들고 다녔다.
낯가림도 있고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처음에는 괜찮았다. 반 친구들도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그룹 활동을 위해서 주변에 앉아있는 친구들과 책상을 돌려서 마주 앉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친구가 내 필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 필통과 바꾸자고 했다. 그 친구는 반에서 꽤나 인기가 있는 여자애였다. 그 친구의 필통은 앞뒤로 세일러문이 그려져 있었고 앞뒤 뚜껑에 자석이 붙어있는 있는 사각형의 필통이었다. 새 필통이 아니라 쓴 지 꽤 되어서 여기저기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누가 새 물건을 헌 물건과 바꾸고 싶겠는가.
하지만 나는 소심해서 진짜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그 친구와 필통을 바꿨다. 새 필통과 헌 필통을 맞바꾼 바보가 된 것이다. 그 필통 안에는 세일러문 종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걸리적거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렸다. 그땐 알지 못했다. 내가 버린 종이 쪼가리가 화근이 될 줄은.
며칠 후에, 그 여자애는 뻔뻔하게 다시 필통을 바꾸자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바꾸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하지만 역시나 나는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고 다시 바꿔줬다. 새 물건이었던 소중한 내 필통은 며칠 사이에 더러워졌다. 속상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느낄 새도 없이 갑자기 그 여자애가 자기 필통에 종이가 어디 갔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물음에 대답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여자애는 다른 친구에게 게시판이 있는 뒤쪽을 가리키면서 내 사물함과 가방을 뒤지라고 했다. 나는 지금 뭐 하는 거냐며 막았지만 고작 여덟 살인 내 힘은 너무 약했다. 여러 명이 내 머리를 때렸다.
반에서 왕따가 된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여자애의 필통이 내 필통이 되었으니, 내게 필요하지 않은 종이를 버렸을 뿐이었는데, 심지어 나는 내가 아끼는 새 필통과 헌 필통을 바꿔준 게 아닌가. 바보처럼 손해를 보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호의를 베풀었던 일이 악의가 되어 돌아올 줄 전혀 몰랐다. 갑자기 180도 달라진 그 아이의 태도에 엄청 큰 충격받았다. 처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을 때는 친절하게 대했다. 그 후에 새 필통을 헌 필통으로 만들어놓고 뻔뻔하게 다시 바꾸자고 하는 것도 황당했는데, 필통 안에 세일러문 종이가 없어졌다며 내 가방을 뒤지라고 소리 지르며 난리 치는 이 표독한 모습은 뭔가. 내 눈에 그 아이는 소름 끼치게 악랄하고 이중인격자로 보였다.
나는 집으로 오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내 얘기를 들어주셨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상황을 말씀드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후에 필통 사건은 일단락을 지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할지라도 요즘 시대에 왕따를 당했다면,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타이르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 같다. 담임선생님께 고자질했다며 더 심한 보복이 가해졌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반 아이들 여러 명이 내 머리를 때렸던 신체적인 폭력은 더 이상 없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너무나도 크게 남았다. 다 같이 약속이라고 한 듯이 반 친구들은 한순간에 내게 등을 돌렸고 단짝 친구마저 나를 멀리했다.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여자애의 심경을 건드린 게 나의 잘못이었을까. 나는 그저 필통을 바꿔준 호의밖에 없었는데, 자꾸만 그 잘못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 후에 내가 학교생활에 어떻게 적응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왕따 사건의 트라우마는 내게 선명하게 각인이 되어서 학년이 올라가도 친구 관계를 맺을 때 늘 불안했다. 나랑 친했던 이 친구가 떠나갈까 봐, 어느 순간 내게 등을 돌릴까 봐 무섭고 불안했다. 반에서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건, 수많은 무리 속에서 혼자 투명인간으로 취급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비참한 일이었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여덟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쓰기는 실제로 힘이 있다. 몇 년 만에 박스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필통을 꺼내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당시 수난을 함께 겪었던(?) 나의 분홍 필통이다.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나의 옛 필통을 보니, 기분이 새롭다. 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수집가다.
학교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글을 적어봤습니다. 필통 사건 이후에 학교생활에 적응했던 시간은 흐릿하지만, 저를 따돌렸던 주동자 여자애와 따돌림을 거들었던 남자애의 얼굴은 기억이 나네요.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친구들이었어요.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서 적는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완성하고 싶었으나, 방향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호흡을 끊어가며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관계는 어렵지만 글을 계속 적다 보면 방향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제 자신을 마주하고 상처를 보듬어가려는 글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