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우리 집이 싫었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가을의 끝을 알리나 보다. 어제는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잠이 든 탓에, 아침에도 한 시간을 더 잤다. 곧장 일어나기 싫어서 침대에서 누운 상태로 스트레칭을 조금 하다가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빗소리에 이번 여름이 생각났다.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올해 장마.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계속 내렸다. 끝도 없이 내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불안했다. 오래된 건물이 낡아서 집 천장에서 물이 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살게 된 지도 올해로 벌써 12년째가 되었다. 평소에도 잠귀가 밝은 편이었지만, 이 집에 살게 되면서 더욱 예민해졌다. 잠을 자다가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서 바닥이 흥건해진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는가. 그 경험을 여러 번 겪고 나면 잠귀가 밝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가 많이 쏟아졌던 어떤 날은 내 방 천장에 한 부분이 엄청 크게 부풀어지기도 했다. 언제 터질지 몰라서 공포를 느끼는 한편,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엄마가 전화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아서 속이 터졌다. 한밤중에 딱히 방법은 없었고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끝내 천장은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다. 방은 물 폭탄을 맞았고 걸레로 이곳, 저곳을 닦으면서 생고생을 했다.
그 후에 힘겹게 연락이 닿은 주인집 아주머니는 기사를 불러서 천장에 물이 새는 부분을 공사했다고 했다. 공사가 허술했던 건지, 아니면 건물이 낡아서 어쩔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장에 물이 새는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다. 내 방뿐 아니라 거실 천장에도 물이 떨어져서 여러 개의 대야를 바닥에 놓고 받쳐야 했는데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겪으면서 살아야 하는지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독립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모아둔 목돈도 없고 나가 살면 당연히 지금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집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살아야 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일반 주택 건물이 아니라 상가 건물이었다. 집 안에 있어야 할 화장실이, 현관문 밖 계단 중간에 있다 보니 너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두 개의 화장실이 있는데 한 개의 화장실은 열쇠를 가지고 우리 집만 사용하는 반면에, 다른 한 개의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었다. 상가 건물이다 보니, 1층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외에 외부인의 출입도 자유로웠다.
집에서 입는 편한 차림으로 화장실을 가려고 현관문 밖을 나섰다가, 외부인을 마주치게 되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워낙 사건도 많아서 밤중에 현관문을 나서서 화장실을 가는 게 무섭기도 했다. 잠깐 요강도 생각했다가 그건 그거대로 불편하고 위생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접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있다면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와 공포를 겪다 보니, 시간이 오래 지나도 이 집에 대한 애정은커녕 부정적인 감정만 쌓였다.
사실 집은 추위와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는 것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감을 주고 몸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 아닌가.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은 그렇지 않았다. 가난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집은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이사를 왔다. 그전에 2년 동안 살던 집은 작은 빌라였지만 화장실도 집 안에 있었고 나름대로 아늑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전세 기간이 끝났고 이사를 할 수밖에 없어서 이 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살았던 집은 시장 안에 있었는데 그때도 상가 건물이었다. 1층에는 치킨집이었고 우리 집은 3층이었다. 지금과 달리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여름에는 그렇다 쳐도 겨울은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 수가 없어서 집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양말을 두 개 신으면서 추위를 견뎌야만 했다. 굶은 적은 없었지만, 쌀이 떨어져서 며칠 동안 국수와 수제비만 먹은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은 학기 초에 반 아이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나눠주시면서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라고 했다. 저학년일 때는 몰랐지만 고학년이 되어 유인물의 내용을 보니,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을 적는 네모 칸이 있었고 급식비 지원을 원하는지 묻는 항목과 경제 수준을 상, 중, 하로 나누어서 표시하는 칸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우리 집의 경제 수준을 ‘하’에 표시했고 급식비 지원도 받겠다고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담임선생님은 그 가정통신문을 나눠주실 때,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다만 불편한 것이라고 얘기하셨다.
하지만 어린 내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면 인사를 하고 빙 둘러서 그 친구가 한참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어디 살고 있는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숨겼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말 드물게 단짝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친구가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졸랐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친구를 집에 데려왔을 때, 같이 놀 생각에 신나고 설레는 마음보다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긴장되고 불편했다.
더군다나 그땐 겨울이었고, 보일러는 고장 나서 집 안에서 패딩을 입고 있어도 너무 추웠고 심지어 입김도 나왔다. 마땅히 줄 간식도 없었다. 전에 놀러 갔던 그 친구네는 잘 살았고 집도 넓었고 간식도 많았다. 친구도 추워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 후로 친구를 데려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 집이 왜 가난해야 하나, 언제까지 가난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가난이 싫었고, 가난한 우리 집이 싫었다. 가난은 불편할 뿐 아니라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어릴 때 받은 가난에 대한 상처는 무뎌진 것 같았지만 다른 모양으로 가난을 겪을 때마다 지긋지긋하다고 느꼈다. 올해 여름도 쏟아지는 폭우 앞에서 어김없이 집 천장에 물이 샜다. 변하지 않는 우리 집의 모습이 지긋지긋했다. 취업하긴 해야 하는 데 낫지 않는 병으로 대책 없이 길어지는 백수 생활과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 무능하고 가난한 나의 현실이 지긋지긋했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고 이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방을 보면서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거실 천장에는 여러 군데에서 물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내 방에는 징조가 없어서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집에 잠깐 나간 사이에 내 방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천장에서 물이 샌 것이었다. 엄마가 그것을 먼저 발견하시고 바닥에 젖어있던 물건들을 말리려고 거실에 꺼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전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지긋지긋하다며 신세 한탄과 자기 연민으로 빠졌을 텐데, 이번에는 ‘오래된 건물이 낡아서 천장에 물이 샜구나. 젖어서 회복이 안 되는 물건들은 어쩔 수 없고 아닌 것은 마르겠지.’라고 생각하며 차분하고 담담해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처음이어서 스스로 좀 놀랐다. 문제라고 여겨지는 상황 속에 문제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전에는 천장에 물이 새는 것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과 연결해서 상처로 끌어안고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이것은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난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막상 어디를 가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가난할지언정 평생토록 가난하게 살리라는 법은 없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을 보면, 1억 원 정도의 빵을 가진 A와 1억 원 규모의 빵공장을 가진 B를 예시로 말하면서 누가 더 부자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빵 공장을 가진 B가 더 부자다. 생선을 잡아주지 말고 생선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비록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이 없고 무능한 백수여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아니 돈이 따라오는 능력을 갖추면 된다. 가난을 겪으면서 내가 돈을 따라가고, 돈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라 돈이 따라오는 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로또에 당첨되어서 벼락부자가 된다거나 하루아침에 재벌이 되어서 돈을 펑펑 쓰는 비현실적인 꿈은 꾸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갑자기 생겨난 어마어마한 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돈에 내 인생도 삼켜지고 말 것이다. 로또가 당첨되어 행복한 삶을 산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극히 일부 아닌가. 내가 있는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게, 그저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지금 나로서는 최선이다.
화장실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시골에 있는 집처럼 뒷간 간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한밤중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울 때는 주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면서 간다. 겁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오래된 건물이 낡아서 천장에 물이 새고 전기 문제로 내 방에 새로 간 형광등도 자주 불이 나간다.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 집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오순도순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이 있음에 감사하다. 집에 햇빛이 많이 들어서 그거 하나는 좋은 점이다. 그동안 머리 아프다며 덮어놨던 돈에 관한 공부도 시작해봐야겠다. 가난을 벗어날 뿐 아니라, 돈이 따라오는 자가 되어서 진정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