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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28. 2020

외로워도 괜찮을 수 있는 이유

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5)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조건 참고 감추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쿨하지 못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내 마음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전공수업 시간에 배웠던 ‘나 전달법(I-massage)’*도 실제로 내가 하는 대화에 적용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나 전달법(I-massage)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진실되게 말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렇게 나의 서운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건, 남자친구의 영향도 한몫했다. 연애하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주 사소한 일로 서운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스스로 너무 쫌생이 같아서 당황스럽고 왜 나는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느끼는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자괴감이 들었다.


남자친구한테 말하자니 내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아서 꾹꾹 참고 눌렀던 것이, 어느 날 터져서 눈물을 쏟아내며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갑자기 쏟아내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나를 진정시키며 작은 일도 쌓아두지 말고 말해달라고 했다. 오히려 자기를 믿기 때문에 말해주는 게 아니냐면서, 용기 내어 말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줬다.




그때부터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되도록이면 쌓아두지 않고 얘기하는 편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에는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서운함이 쌓여서 갑자기 폭탄처럼 터트리면 상대방도 당황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뒤끝이 있는지라, 사골 우려먹듯이 지난 일을 반복해서 얘기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남자친구는 웃으면서 풀릴 때까지 얘기하라고 받아준다. 쫌생이 같은 나와 달리,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을 만난 건 참 복이다.


한 번은, 친한 친구와 연락 문제로 서운한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신경 쓰이고 서운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관계가 멀어질 것 같아서 그냥 넘기려고 할 때, 남자친구의 말을 듣고 용기 내서 서운한 마음을 털어놨고, 지금도 그 친구와는 서로의 근황을 자주 살피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때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해줬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려워서 무조건 참으면, 내 마음이 곪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에서 내 서운함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과는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서 털어놨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너무 어렵기도 하고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실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를 은근히 따돌렸던 선배가 있었는데, 봉사기간에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화를 꾹꾹 참았다가 화병이 나서 혼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중이 되어 그 선배는 동기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취했는지 그때 나한테 미안했다고 대신 전해 달라는 말을 했다는 걸,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지만 자기도 미안한 짓을 했다는 걸 아나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관계를 계속 이어갈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왕따의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인간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학년이 올라가도 끊임없는 불안과 소외감이 나를 괴롭혔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한 고비를 넘어서면 또 다른 고비를 만나게 되었고 인간관계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끝이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있어서 힘들었고, 없으면 문제로 만들어내면서 힘들었다. ‘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만 빼놓고 모여서 나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을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했다.’ 등등 관계에 대한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제조기였다.  

사실 지금도 나를 괴롭혔던 불안감과 소외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있지도 않은 문제를 만들어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어두운 생각과 감정이 나를 갉아먹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벗어나는 힘이 조금씩 생기면서 구렁텅이에 빠져도 오래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어두운 생각과 감정의 크기도 전보다 작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일대일의 만남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선호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꼭 일대일의 만남이 아니라 여럿이 만나게 되는 자리도 편안하게 즐기게 되었다. 때때로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주제가 나왔을 때, 나와 관심사가 다른 것을 존중하며 소외감으로 연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때까지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낯선 환경을 자주 겪는다. 처음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전에 걸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로 걷는 모든 일이 그러하다. 물론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환경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된다고 해서, 똑같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외부적인 환경보다 내부적인 마음 상태이다. 나의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 속에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는 건, 글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니 말이다. 어제 의지했던 사람이 오늘 등을 돌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믿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뒤에서 내가 얘기했던 말을 가볍게 떠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적도 있었다. 사람은 존중하되, 사람을 너무 의지하고 기대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을 쉽게 믿고 정이 드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동안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몸부림쳤다. 상대방에게 맞추면서 열심히 관계를 쌓아가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내가 비참했고, 왜 맨날 나는 혼자일까 생각하며 스스로가 서럽고 불쌍해서 자기 연민에 많이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 외로움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더욱 매달릴 수 있었다. 매달리는 기도의 대부분은 나를 왜 자꾸 혼자로 만드는 거냐며, 나는 왜 이런 사람으로 만드셨냐며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하는 내용이었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따질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너무 작아지고 초라해서 무너져있을 때,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절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늘 함께하셨다.


과거의 왕따를 당했던 상처는 이제 발판이 되었다. 지금도 인간관계는 어렵고 종종 외로움을 느끼지만, 더 이상 과거의 일로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리지 않는다. 고통을 지나오면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주셨다. 생각지 못한 일로 인해서 혼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예전처럼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그분을 의지하며 오늘도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의 크신 은혜다. 






-마지막 편입니다. 저의 트라우마를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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