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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27. 2020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4)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는 세 번째 전학을 가야 했다. ‘중2병’이라고 불리는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는 여름에,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전학을 가는 건, 너무나도 싫었기에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로 다니면서 남은 2학기를 다니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이사한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가는 게 그렇게 싫었다면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다 해도 계속 다닐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나는 부모님 말씀에 고분고분 순종하며 자란 아이였고 그땐 내가 싫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친구관계를 돈독하게 쌓을 때쯤, 전학을 가야 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게다가 세 번째 전학이라니. 왜 이렇게 우리 집은 이사를 다니고, 나는 전학을 가야 하는 건지 지겹고 화가 났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관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적응해야 한다는 게 막막하고 힘들었다. 몸도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전학을 간 초기에는 그 전 학교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마저도 각자 있는 환경이 달라지니 서서히 연락이 끊어졌다.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면서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너무 외로웠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까지는 여중을 다녔는데 이사 온 지역에는 여중이 없고 전부 남녀공학이어서 지금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학년이 올라간 새 학기여서(그렇다고 해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은 쉽게 친해진다) 학기 중에 전학 가는 것보단 나았다. 칠판 앞에서 선생님이 나를 전학생이라고 얘기한 뒤,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는 뻘쭘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자기소개할 필요는 없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시작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럼에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중을 다닐 때와 남녀공학은 분위기가 너무도 달랐다. 다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예민한 시기였고 이성에도 민감한 시기였다. 이전 학교에서는 복장 규정이 단발머리에 무릎 밑으로 긴 교복 치마를 입고 실내화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전학 간 학교는 전보다 규정이 엄격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실내화 가방 없이 실내화를 그냥 손에 들고 다녔고 어깨를 넘는 긴 머리에 치마를 짧게 줄여서 입는 여자애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문화 충격을 받았다. 여중을 다닐 때는 복장에 준수하며 단정한 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던지라, 내 눈에는 모두 다 날라리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적응하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다음 날부터 학교에 갈 때는 실내화를 손에 들고 다녔다. 나만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장 규범을 지키면서도 너무 촌스럽게 보이지는 않으려고 했다. 관계에 있어서는,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말을 거는 걸 시작으로 다른 애들과도 친해지고자 노력했다. 전학 가기 전 다녔던 학교와 친구들이 그리운 한편, 전학 온 학교에서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중학교 3학년의 1년을 보냈다.


다행히 세 번째 전학을 끝으로, 더 이상의 전학은 없었다. 하지만 전학이 아니고서도 끊임없이 낯선 환경은 나를 찾아왔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새로운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학년이 올라가고 새롭게 반이 편성되면, 또다시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며 그 속에 적응해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나는 적응하는 게 어려운지, 관계를 맺는 게 정말 어려웠다. 아니, 처음 관계를 형성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는데 그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를 좋게 유지하면서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아서 힘들었다. 언제 이 관계가 끊길지 모르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분명 친구들과 함께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은 외롭고 허전했다. 그래서인지, 소외감을 자주 느꼈다. 친구랑 가까이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이러다가 동떨어져서 나만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서운한 일이 생겨도, 소외감을 느껴도 내 감정을 모른 척하거나 꾹꾹 눌러 담기에 급급해서 잘 표현하지 못했다. 막상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관계가 멀어질까 봐 두려웠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음 편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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