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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Dec 02. 2020

난생처음 사랑니를 뽑았다

치열한 전쟁의 서막

‘하나님 저 너무 무서워요. 살려주세요!’

    

치과 진료 의자 위에 누워서 소리치는 내적 비명이었다.



일주일 전이었나. 왼쪽 위에 맨 안쪽 이가 간지럽고 건드리면 아팠다. 충치를 먹은 걸까. 왜 이러지. 병원이면 어디든 가기 싫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치과는 너무 가기 싫은 병원이었다. 한번 충치 먹으면 돈도 많이 들고, 작은 입 안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투 끝에 마치는 치료도 너무 고되고 힘들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만난 친구에게 왼쪽 위에 맨 안쪽 이가 아프다고 하니, 사랑니인 것 같다고 했다. 세상에나, 사랑니라니. 자기도 사랑니를 위랑 아래 모두 4개나 발치했다고 하면서 위쪽에 난 사랑니를 빼는 건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고 했다. ‘발치’라는 단어에 덜컥 겁이 나서 사랑니를 안 빼면 안 되냐고 물으니 (친구가 의사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랑니를 그냥 놔두면 염증이 더 심해질 수 있고 다른 이가 충치를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빼는 게 좋을 거라고 얼른 치과를 가보라고 했다.


나는 워낙 이가 삐뚤빼뚤하게 자라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단거를 좋아하는 탓에 지금까지 충치치료를 많이 했다. 충치가 심해져서 고생고생을 하며 신경치료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치과라면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아픈 이를 방치할 수 없고, 더 심해질 수도 있으니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과에서 검진을 받을 때, 안 빼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사랑니가 위아래로 4개가 다 났다며 위치가 안 좋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일단 아픈 사랑니 하나만 빼기로 하고 바로 그다음 날로 예약을 잡고 오늘 다시 갔다. 위치가 안 좋아서 잇몸을 벌리고 깨고 부수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에 하루 동안 너무 무서웠다. 고맙게도 남자친구는 무섭겠다며 치과에 같이 가줄지 물어봤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 모르겠지만 우리 집까지 버스 타고 한 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남들 다 빼는 사랑니이기도 했고.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염장이었다면 죄송하다)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잇몸에 아주 따끔거리는 마취주사를 놓고 10분 기다렸다. 사랑니 발치는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을 텐데 입을 크게 벌려야 하니까 입술이 아플 수 있다고 했다. 피부가 약한 사람은 피부 혈관이 터져서 멍들기도 한다고. 주의사항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무서워졌다. 마취시간 10분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제발 무사히, 빨리 마치기를 바라며 사랑니 발치가 시작되었다. 시작하기 전에, 의사 선생님께 내 상태를 말씀드렸다.  

    

“제가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서 의지랑 상관없이 트림이 나올 수 있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괜찮다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이 얼굴 위로 천을 덮어주셨다.



 “아- 벌리세요.”


천을 덮어주셨는데도 겁이 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피할 수도 없다. 차라리 위내시경을 수면으로 할 때처럼, 자고 일어나서 끝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입안에서 벌어지는 생방송을 직접 겪어야 했다. 사랑니를 발치하는 내내 너무 무서웠던 나는, ‘하나님 저랑 함께 하시죠? 저 너무 무서워요. 살려주세요.’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전쟁은 시작됐다. 사랑니를 뽑으려는 의사 선생님과 내 잇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으려는 사랑니와의 전쟁.


생이빨을 뽑은 적이 언제더라. 생생한 고통의 현장 속에서 가물가물한 파노라마가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 흔들거리는 유치를 부모님이 뽑아줬을 때, 집에서 실을 묶어서 뽑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지금은 스물일곱, 난생처음 사랑니를 뽑는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입을 크게 벌렸다가 작게 벌리는 걸 반복했다. 의사 선생님이 힘껏 사랑니를 뽑을 때, 우지끈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없었다. 사랑니가 뽑히고 비워진 잇몸을 실로 꿰매었다. 내 잇몸에 실이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영 이상했다.




잔뜩 겁을 먹었던 게 허무할 정도로 사랑니 발치는 삼십 분도 채 안되어서 끝났다. 이를 뽑는 과정에서 왼쪽 입술은 조금 붓고 찢어졌지만 피부 혈관이 터지는 일은 없었다. 반쯤 누워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민망하게 트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다행히 그런 일도 없었다. 그보다 의사 선생님이 배가 고프셨는지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긴장이 풀려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는데 잘 참았다.


무사히 치료가 마치고 두 시간 동안 솜을 물고 있어야 하고, 지혈을 해야 하니까 피와 침은 뱉지 말고 삼키라고 당부하셨다. 샤워는 괜찮지만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것과 심장박동이 뛰는 격한 운동은 삼가라는 주의사항을 들었다. 꿰맨 잇몸의 실밥을 풀기 위해 일주일 뒤에 오라는 말씀을 듣고 치과를 나왔다.


치과 근처 죽 집에서 야채죽을 사고 집으로 오면서 잇몸 마취가 풀리기 전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럴 땐,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 또한 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좀 나아진다. 난생처음 겪는 일은 겁이 나지만, 막상 부딪히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을 때도 많다. 남들도 경험했던 일이니까 별거 아니라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다독이며 순간마다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려고 한다. 그게 무엇이든.


이런. 글을 쓰는 동안 서서히 마취가 풀리는지 점점 고통이 느껴진다. 두 시간이 지나서 물고 있던 솜을 뺐는데 계속 피가 나온다. 지혈하기 위해 치과에서 준 새로운 솜을 접어서 입에 넣고 물었다. 아무리 뽑아야 하는 사랑니라 해도 원래 있던 이가 없어지면 잇몸은 잇몸대로 몸살을 겪을 것이다. 사람마다 회복하는 건 시간이 다르다고 하는데, 보통 아무는 대는 일주일, 뼈가 만들어지는 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금방 나았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건강하게 무사히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할 테니 이놈의 조급한 마음 내려놓아야겠다. 나도, 나의 잇몸도 충분한 여유를 갖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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