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잊을 수 없어서
사람이 고양이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고양이 역시 사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특히 길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해 웬만해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습니다만, 간혹 애교를 피우며 먼저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고양이 간택'이라고 말하죠. 고양이에게 선택받았다는 뜻입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냐옹냐옹님)
처음으로 길냥이에게 ‘간택’ 받았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가을날 아침이었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계단에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옥상에 있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돌보는 길고양이의 새끼인 줄 알고 따라오라고 손짓하면서 옥상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저기 엄마 있네.” 하고 큰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런데 아뿔싸. 둘 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가리킨 고양이는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 하는데, 그 와중에 새끼 고양이는 밖에서 굶었는지 고양이 밥통에 있는 남의 사료를 먹었다. 그리고 나한테 와서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드러눕는 게 아닌가. 세상에, 너무 귀여웠다. 이런 걸 ‘간택’이라고 하나. 그동안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후다닥 도망가거나, 도도한 표정으로 나를 본체만체하며 자기가 가던 길을 태평하게 지나갔는데 이 고양이는 ‘개냥이’과 인지 사람을 겁내지 않았고 오히려 애교가 넘쳤다.
나는 평소에 도도한 고양이보다 사람에게 잘 안기는 개를 더 좋아했었다. (이것도 동물마다 다르겠지만) 그런데 이 순간은 고양이 애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어쩌면 고양이와 처음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새끼 고양이는 자세히 보니까 한쪽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고 한쪽 눈도 다쳤는지 뜨지 못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마음이 애잔했다.
안타깝고 불쌍했지만 우리 집에서 키울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새끼 고양이는 사람 손을 타면 어미 고양이가 그 냄새를 맡고 버리고 간다는 말도 있어서 쓰다듬어 주고 싶어도 꾹 참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내려가는데 고양이가 절뚝거리면서 나를 따라왔다. 의지할 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 고양이는 엄마한테 버림받고 떠돌다가 우리 집 건물로 들어오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가 불쌍하다고 해서 집에 데려올 수는 없었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마냥 예뻐하는 마음과 고양이의 한 평생을 책임지는 건 아주 다른 문제니 말이다. 고양이는 문 앞에서 울었다. 너무 미안했다. 마음이 쓰여서 길고양이 구조, 보호소 등등 검색해봤지만 길고양이가 하도 많다 보니까 이렇다 하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고양이를 도와줄 돈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더 이상 고양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의 모습은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다. 나를 졸졸 따라왔던 작디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쓰였다. 책임을 질게 아니라면 마음을 줘서는 안 되는 건데, 짧은 시간에 정이 든 것 같다. 누구보다 애정과 사랑이 필요할 때인데 측은했다.
그런데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듣게 된 소식이, 옆 건물 아주머니가 동네 길냥이에게 밥을 주는 분이 있다고 해서 그 고양이를 그쪽으로 데려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종종 잘 지내고 있는지 생각났다. 남자친구는 내가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가끔 유튜브로 개나 고양이 동영상을 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동물에게 마음 쓰인 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기도 했다. 멀리서 구경하는 것과 일대일로 교감하는 게 이렇게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고양이는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한테 다가왔던 고양이가 처음이기도 했고 한쪽 다리를 절뚝이고 한쪽 눈은 다친 모습이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보름 정도 시간이 지났나. 엄마에게 아주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엄마가 계단 청소를 하려고 3층으로 올라가는데 우연히 3층 주인집 막내딸을 마주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그때의 새끼 고양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진짜요? 진짜 그 고양이가 맞았어요?”라고 여쭤봤다. 한쪽 눈이 다친 상태여서 그때 그 새끼 고양이라는 걸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하셨다. 막내딸에게 그 고양이를 언제부터 키우게 됐냐고 물어보니, 밖에서 고양이가 주인집 아주머니를 따라와서 키우게 됐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잘됐다 싶어서 마음이 확 놓였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전에도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운 경험이 있어서 그 고양이도 잘 키워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내가 뭐라고)
그 고양이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막내딸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10년 넘게 이 집에 살면서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주인집 막내딸과 얘기를 나눈 경험이 없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별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 바람은 3개월이 지날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주인집에 있는 그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 엄마한테 주인집으로 갖다 드릴 건 없는지 여쭤볼까 싶기도 하다. 이참에 없던 이웃 간의 정도 새록새록 피어나서 주인집 고양이를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를 처음 간택해줬던 그 고양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