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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Dec 26. 2020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햇빛 산책

간신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은 음악이라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우리 삶에 널려있는 모든 게 마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확실한 건, 겨울날 침대는 마약이다. 특히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대에서 줄어들지 않는 요즘, 좀처럼 침대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작년만 해도 연말이 다가오면 시끌시끌하고 북적거렸는데 고작 일 년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정부에서는 연말연시 코로나 특별 방역 대책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내세웠고 수도권은 사적 모임도 금지다. 이를 어기면 300만 원의 벌금이 청구된다고 하니 전염병 앞에 인심이고 뭐고 없어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연말 분위기는 더욱 삭막하고 흉흉하고 무시무시해지고 있다. 지금껏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때, 마치 의식처럼 치르는 것이 있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경건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고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이불속에서만 누워있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 계속 집에만 있었더니 몸은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의미 없이 SNS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옷을 껴입었다. 마스크도 단단히 쓰고 무장했다. 마침 해가 떠 있을 때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사람은 햇빛을 자주 쬐야 한다고 그랬다. 나는 자주 무기력해지는데, 무기력에 딸려오는 게 우울이다. 그래서 귀찮지만 잠깐이라도 산책하자고 나를 타일렀다.




이불 밖은 위험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햇빛을 받아야 했다. 내가 나를 타이르면서 겨우 밖을 나왔을 때, 한 줌의 햇살은 나를 반겨주었다. 겨울에는 일조량이 적은 탓에 햇빛이 더욱 귀하다. 집을 나오기 전에는 귀차니즘과 씨름을 벌였으나, 막상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아지처럼 햇빛을 쫄래쫄래 따라 걷게 된다.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햇빛을 참 좋아한다. 혼자 산책하더라도 햇빛이 있다면 외롭지 않다. 햇빛과 함께 산책을 즐긴다고 할까. 집 근처에 뒷산이 있어 입구를 따라 걷다 보면 나무가 많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린다. 자연이 주는 소소한 선물에 황홀해지는 순간이다. 참 감사하다.


가끔 햇빛과 눈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랬다. 30분 남짓 짧은 산책을 하면서 해를 마주할 때면 그 눈부심을 즐겼다. ‘햇빛 산책’을 마치고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내년에도 자주 줘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항상 새해가 시작할 때는 거창한 리스트를 세우고, 다이어리를 사서 매일 일기를 써야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들은 나에게 또 다른 짐이 되어서 나를 자책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이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벌여놓은 일들이지만, 욕심이 많으면 넘친다고. 흐지부지하게 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올해도 그랬다.


마음만 앞서다 보니, 게으른 몸을 채찍질하며 나를 괴롭히는 게 취미였다. 나만의 속도로 가자고,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다짐해놓고 금세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조급해졌다. 그래서 내년에는 거창한 계획을 약속하지 않는다. 물론 계획을 알차게 세우면 그 순간은 뿌듯하겠지만, 어느새 빽빽한 리스트는 ‘나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위한 계획’이 되어버린다.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일을 벌여놓고 거기에 나를 욱여넣으려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2021년, 해야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욕심을 덜어내고 나에게 불필요한 것은 끊어내면서 단순하고 여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햇빛 산책은 자주 하기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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