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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Feb 05. 2021

그대는 모나리자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예 없는 사람은 찾기 드물지 않을까 싶다. 나도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지독했다.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 생각만 바꾸면 될 문제겠지만 무신경하게 툭툭 던지는 말에 상처 받고 힘들었다.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다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몇 가지를 얘기하려고 한다.

     

1. 눈썹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눈썹 숱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눈썹 숱이 보통인데 나는 거의 모나리자의 눈썹 수준이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별명 중 하나는 모나리자였다. 짓궂은 애들은 대놓고 외모에 대해 지적하며 놀렸다. 20살이 되어 화장을 처음 했고 어설프게 눈썹도 그렸다. 때론 눈썹을 너무 진하게 그려서 짱구 눈썹이 되기도 했다. 쌩얼로 집 앞 마트를 가는 경우에도, 눈썹은 그렸다. 귀찮아도 어떻게든 내가 눈썹이 별로 없는 것을 감추며 눈썹을 사수하려고 했다. 눈썹 문신도 고민을 했으나 겁 많은 졸보여서 하진 않았다.


눈썹 숱이 많은 친구를 보면 부러웠다. 어느 날 너는 눈썹이 진해서 좋겠다고 말하니까, 자기는 송충이 같은 눈썹이 콤플렉스였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나에겐 부러운 점이 친구에겐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니.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눈썹을 그리고 싶은데 애초에 숱이 많으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눈썹 정리만 한다고.


내가 눈썹 숱이 적어서 고민하는 것처럼, 친구는 눈썹 숱이 많아서 고민했다. 그때 친구의 진솔한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흰색의 도화지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눈썹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 눈썹에 예술을 담는 건 아니다. 그냥 일자 눈썹으로 평범하게 그린다. 요즘에는 집 앞 마트를 갈 땐, 눈썹을 빼먹고(?) 갈 때도 많다.

     

2. 피부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본격적으로 여드름이 내 얼굴에 꽃피는 시작이었다. 2차 성징을 겪으며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그랬는지, 이전까지 나지 않았던 여드름이 하나둘씩 얼굴에 생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여드름이라니.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땐 피부 건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코에 블랙헤드부터 시작해서 얼굴에 난 여드름을 모조리 손으로 짰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엔 너무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손으로 열심히 얼굴을 짰으니 당연히 흉터도 남았다.


사춘기 여드름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여드름은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피부가 깨끗한 사람이 너무 부러웠고 피부과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피부과 비용은 나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시로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팩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여드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피부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었다. 얼굴에 무엇을 바르는지도 중요하지만, 운동과 식단, 숙면을 취하는 등 생활 습관이 더욱 중요한 부분이었다. 거기에 스트레스 관리까지.


피부가 좋아지는 법은 알고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돈을 많이 쓰면 눈에 보이는 피부는 좋아 보일 수 있겠지만, 피부 속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면 좋은 피부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여드름에 좋다는 크림을 찾아보거나, 피부 좋아지는 법을 검색하지 않는다. 쉬운 방법만 찾을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비록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전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를 가꿔가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이 하나씩 쌓이면 내면이 더욱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트러블쯤이야 뭐.   

    

3. 목

나는 목이 좀 긴 편이다. 게다가 어깨도 좁다 보니 목이 좀 더 길어 보인다. 어릴 땐 내가 목이 길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중학생 3학년 때였나. 다음 시간이 체육이어서 반에서 여자애들이 옷을 갈아입는데 어떤 친구가 엄청 큰 소리로 “너 목이 되게 길다!”라고 얘기하는 것 아닌가. 다른 친구들의 이목이 나의 ‘목’에 집중되니까 민망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나. 내 별명 중에 ‘기린’이 추가됐다. 모나리자에 이어 기린까지. 고등학교에 가서도 반 친구에게 목이 길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린’이라고 부른 정도는 괜찮았다. 그런데 계속 길다는 말을 듣게 되니까 스트레스가 점점 커졌다.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나도 목이 조금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 한 번은 나한테 목이 길다고 놀려댔던 여자애가 내 얼굴을 그려서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에 종이를 붙여놓았다. 어떻게 그렸는지 보니까, 내 목을 지네처럼 길게 그려놓은 게 아닌가.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 웃어댔다. 애들이 다 보는 학급 게시판에 붙여놓은 심리는 대체 뭘까. 그 애가 나한테 한 모욕적인 행동은 공개처형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 행동에 대해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화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그랬다.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 애는 사과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랑 친해서 그런 장난을 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걔한텐 나를 놀리는 게 재밌었던 것뿐이다.


안 그래도 내 긴 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의 목을 지네처럼 그렸던 그림은 거의 트라우마로 남아서 마음의 상처를 쉽게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따뜻하고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소녀시대 윤아도 목이 긴 편 아니냐고, 목이 긴 건 좋은 거라며 자기는 목이 짧아서 내가 부럽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기린’은 목이 길어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동물이지 않냐고, 내게 좋은 별명을 가졌다고 얘기해줬다. 그렇게 나를 생각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의 말에 조금씩 회복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목이 길어서 놀랐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상할 때도 있긴 하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가 싶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의 외모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는 말을 곱씹을수록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다. 어렵긴 하지만 예전처럼 그 말을 오래 곱씹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악플처럼 떠드는 말을 내 마음에 담을 필요는 없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하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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