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이웨이니까
착한 아이 증후군
: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교회와 학교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많이 들었다. 지적보다는 칭찬이 낫다고, 착하다는 칭찬은 듣기 좋았다. 상대방이 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점에서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하는 걸까? 착하다는 건 뭘까? 주변 사람이 내가 ‘착하다’고 느꼈던 점은 아마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좋게 말하면 배려심이 넘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이유가 더 컸다.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질투가 많았고, 부모님께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들보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고 싶었지만, 욕심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항상 성적은 중상위권 혹은 중간에 머물렀다. 공부 외에도 딱히 잘하는 게 없었다. 무언가를 콕 짚어서 잘한다고 말하기엔 애매했다. 그만큼 평범한 학생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착함’을 택한 것은 그래서였을까. 우등생은 될 수 없지만 모범생은 될 수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과 선생님께 반항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씀 잘 들으면 되는 부분이었다. 인성과 예의범절을 중시했던 아버지의 교육 철학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랑의 매’라는 회초리를 맞으면서 컸으니 더 그랬다.
착하다는 건, 내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착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했다기보다 혼나고 싶지 않았고 남들에게 좋은 모습으로만 남고 싶었다. 혹여나 내가 조금이라도 엇나가서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된다거나, 선생님의 기대를 실망시키는 일은 애초에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암묵적인 강요로 나는 착한 아이로 자라서 착한 성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늘 나의 기준은 상대방에게 맞춰져 있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화난 표정을 지으면 나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살피고 배려하려는 건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과해지면 내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고 만다. 특히 첫 직장을 다닐 때 그랬다. 학교생활을 벗어나 사회생활이 처음이었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지만 실수가 많았다. 그때마다 위축되고 눈치를 살피며 상대방의 말투, 표정 하나하나에 너무 큰 영향을 받았다. 주변 사람의 눈치는 보면서 정작 내 마음의 눈치는 보지 못했다. 나는 잔뜩 눌리고 쪼그라들었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하기 싫어도 애써 표현하지 않고 꾸역꾸역 했다. 억지로 맡은 일에는 당연히 즐거움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책임감,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서 해야만 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데, 누구에게라도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 착한 사람을 자처했다. 그런 행동이 나를 갉아먹는 줄도 몰랐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누르니까 몸도 마음도 자주 아팠다. 어느 순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내 생각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가 김민철의 <하루의 취향>이라는 책에서 ‘거절’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따로 적어놨다.
“거절을 연습하는 것은 내 삶을 내가 더 살고 싶은 방향으로 이끄는 연습이며 에너지를 좀 더 간추려서 내가 좋아하는 쪽에 쓰는 연습이다.”
여전히 거절하는 것도, 도움을 청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는 ‘착하다’는 말로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만 맞추는 것이 ‘착함’이라면, 그만두고 싶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에너지를 좀 더 간추려서 내가 좋아하는 쪽에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인생은 마이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