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동네에서 친구와 처음으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고 부모님은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아빠는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 들어오냐며 혼을 내셨다. 늦게 들어간다고 연락은 드렸지만, 늦은 밤 집에 오는 딸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반항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늦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혼자서 자취하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삶을 꿈꾸긴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내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상황이 무서웠다. 나이로는 성인이 되었으나,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아기 때부터 낯을 많이 가렸고 엄마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녀서 엄마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오빠랑 남동생과 달리 할머니에게도 잘 안기지 않았다. 워낙 아기 때여서 들은 걸로만 기억할 뿐이지만, 당시에 나는 많이 불안했나 보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걸까.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사람이 타고나는 기질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기질이라고 하니 내가 그동안 받았던 심리검사가 떠오른다. MBTI, 애니어그램, 직업심리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지나쳐오면서 나의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나는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해서 창조적인 일을 추구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고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얻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선호한다는 점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이어서 심리 검사 얘기를 했던 이유는, 내가 그만큼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존적인 게 꼭 나쁜 걸까? 학교도 졸업하고 다니던 회사도 퇴사했을 때,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이 어떤 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지인을 통해 모임에 들어가거나,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스터디를 찾으면서 어떻게든 공동체를 찾아 들어갔다. 혼자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무언가를 같이 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받고 서로를 응원하며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일어서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과연 그 자립이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함께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갈수록 개인주의가 극대화되고 이기주의는 팽배해져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같이 의존적인 사람은 그저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의존적인 사람이라도 여러 명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면 생각지 못한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아직 자립할 힘이 없다고 해서 기죽지 말자.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라며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하고 주저앉을 필요도 없다. 기어 다니던 아기가 두 다리로 일어설 때도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약 아기가 두 다리에 힘이 약한데,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될 거야!’라며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꽈당하고 넘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 주변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열심히 붙들고 일어서려고 해야 한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두 다리로 걷고 힘차게 뛸 것이다. 각자의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한 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과정이 필요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과정은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영화 말모이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