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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r 23. 2021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식단관리

밀가루 끊기, 다시 도전!

현재 밤 9시가 넘었다. 게임을 요란스럽게 하던 동생이 방에서 나오더니 부엌에서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다. 나는 마음잡고 내 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한석봉 어머니가 한석봉에게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라고 말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나는 글을 쓸 테니, 너는 삼겹살을 굽거라. 지금 내 상황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한번 끼워 맞춰봤다. 하지만 내게 삼겹살은 그림의 떡이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 동생에게 ‘한 입만’ 달라고 했지만 요즘은 그러진 않는다. 사실 한 입은 간에 기별도 안 갈뿐더러, 더 먹고 싶어 지기 때문에 꾹 참는 중이다.




나는 작년에 ‘그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 무한리필 가게를 좋아했다. 특히 고기를 좋아해서 무한리필 삼겹살, 갈비와 같은 곳을 종종 갔다. 물론 무한리필 떡볶이도 놓칠 수 없었다.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무한리필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바로 그 사건은 내 첫 글의 시작이었던 역류성 식도염을 겪게 되면서부터였다. 작년 4월 말에 걸린 역류성 식도염은 아직도 낫지 않았다. 거의 1년 가까이 이 병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관리하려고 노력했고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식단관리는 어렵다. 정도에 따라 역류성 식도염의 증상이 가볍다면 약을 먹고 금방 나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오랫동안 위장병을 겪어 왔다면 쉽게 낫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식단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선 야식 금지는 기본이고 간식도 먹으면 안 된다. 구황작물과 같은 건강한 간식도 안 좋다. 음료도 소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식사 후 최소 2시간 이후로 먹는 게 그나마 낫다. 식사 시간에만 음식을 먹고 소화를 위해서 속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간식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에겐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먹으면서 푸는 일이 많아서 철저히 나를 관리한다는 게 무척 어렵다. 조금 나아지면 다시 먹고 조절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또 먹고 다시 마음잡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병이 낫지 않고 이렇게 오래가는 것 같다.


더 이상 이렇게 오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달 중순에는 한 달이라도 밀가루를 끊자고 굳게 다짐하며 생식 가루도 샀다. 한 끼는 야채나 과일과 함께 생식 가루를 두유나 물에 타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혼자 결심한 것으로는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 처음으로 카톡 프사 배경화면에 디데이도 설정해 놨다. 비장하게 ‘밀가루 끊기’라고. 디데이를 보니 오늘이 벌써 35일째인데, 밀가루 끊기는 개뿔. 일주일에 몇 번 먹긴 했어도 연속으로 먹지는 않으려고 어떻게든 마음을 잡고 있었는데, 하나둘씩 나사가 풀린 것처럼 점점 풀어지더니 나중에는 과자를 먹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됐다. 내일부터 하면 지 뭐. 그리고 또 내일이 되면 다음날부터 하면 돼, 괜찮아. 그렇게 나 자신과 타협을 하면서 ‘밀가루 끊기’가 아니라 ‘연속 밀가루 먹기’를 하는 사람 같았다. 1월부터 꾸준히 썼던 식단일기도 3월 초가 지나면서 뜸해졌다. 식단일기를 써도 관리가 안 되고 있는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점심에 약속이 있어서 알밥 정식 세트를 먹었는데, 돈가스와 메밀이 있었다. 알고 골랐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 남기려고 했을 텐데 배부르게 다 먹었다. 먹고 바로 카페로 이동해서 딸기 주스를 먹었다. 따뜻한 차를 고르는 게 나았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려 쓰레기통을 사면서 오레오 초코크림 과자를 사 먹었다. 소화가 전혀 안 됐는데, 또 좋다고 다 먹어버렸다. 역시나 내 위장은 정직했고 트림은 계속 올라왔다. 할 수없이 저녁을 굶었다. 먹을 때 입은 한없이 즐겁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위장은 괴롭다.


밀가루 끊기 30일을 성공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너무 맛있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어느 날, 먹는 즐거움은 사라졌다고 글을 썼지만 정정하겠다. 먹는 즐거움은 여전하다. 즐겁다 못해 매일 식욕이 넘쳐서 괴롭다. 체질적으로 마른 편이라 다이어트를 해본 적 없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 잘 알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식단관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할까. 어쩌면 건강관리는 평생의 숙제일 듯싶다. 그래도 이왕 해야 한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 먹느냐, 마느냐. 늘 두 가지로 고민하다가 먹었다면 이제는 내 위장 건강을 위해서 입이 즐거운 선택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일부터 다시 1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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