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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Dec 30. 2020

글을 좀 쓰시네요. 근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1주 차에는 책의 목차를 짜고, 전에 작성해둔 글  꼭지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는 이미지를 캡처해서 제출했다.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첫 주차부터 쉽지 않았다. 우선 목차를 짜는 것도 처음이었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비교적 글을 제출하는 건 쉬웠다.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이었기에, 세이브 원고를 내는 느낌으로 한결 여유롭게 제출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가 되어 멘토 작가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1주 차에 처음 내는 과제였고, 멘토 작가님의 피드백도 처음 받아보는 순간이었기에 굉장히 긴장되고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코멘트를 남겨주셨을지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글을 좀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와. 멘토 작가님이 글을 좀 쓰신다고 칭찬을 해주시다니. 나의 글쓰기가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광대가 저절로 승천했다. 그렇게 엄마 미소로 작가님의 코멘트를 읽고 있었는데, '그런데'라는 접속사 뒤에 문장을 읽으며 나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이 글은 외적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내적으로 봤을 때 ‘뭘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즉 기획적인 부분에서 접근하여 주제를 탄탄하게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랬다. 나는 기획력이 약했다.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쓰는 건 할 수 있겠는데,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건 어려웠다. 그렇게 나의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님의 피드백을 100프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쓴 글이, 나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제출했는데 내 글을 읽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니. 어안이 벙벙했다고 할까. 머릿속이 멍해졌다.

 



나는 내가 쓴 글에 메시지를 잘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 피드백을 받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책의 방향을 잡았을 때 <역류성 식도염과 일상 이야기>로 생각했고, 첫 번째 글은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시작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면서, 앞으로 나아질 것이다’라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 충분히 글의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님은 주제가 너무 두루뭉술해서 글이 주는 쫀쫀한 재미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멘토 작가님이 주신 피드백을 반복해서 읽고 다시 내 글을 보며 열심히 고민한 끝에, 용기 내어 여쭤봤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방향으로 잡았고 충분히 글의 주제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했는데, 주제가 두루뭉술한 게 제 글에 여러 내용이 많아서 그런 건가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내게 작가님은 이해하기 쉽게 피드백을 주셨다. 하나의 글에 너무 많은 내용을 이것저것 쓰다 보니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중에 하나의 소재나 주제만 선택해서 자세하게 써보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셨다.


그 후에 다른 글쓰기 책이나 유튜브 영상에 글쓰기를 검색하면서 알게 되었다.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 게 좋다는 것. 내 글은 그동안 의식의 흐름대로 써왔다 보니, 횡설수설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넣으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말도 하고 싶다 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첫 피드백을 통해 소중한 자양분인 당근과 채찍을 얻었다. 당근과 채찍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먼저 글을 좀 쓴다는 멘토의 칭찬에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나보다 글을 잘 쓴 사람들을 보며 올라오는 열등감으로 마음이 무너질 때, 이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전문가가 나의 글 솜씨를 좋게 봐주셨다는 점에서 나의 글쓰기 실력을 갈고닦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은 글을 쓰면서, 혹은 쓰고 나서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의식의 흐름으로 글쓰기가 산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욕심부리고 있지 않은지, 이 말은 왜 하려고 하는지 등등 스스로 질문하면서 글쓰기를 했다.


원래 나는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것을 시작으로 글을 썼는데 피드백을 통해서 글을 쓰기 전에, 대충이라도 밑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글이 술술 읽히는 게 아니라 더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통해 생각의 근육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해치우듯이 글을 쓰고 끝내버리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도록 계속 머릿속에서 문장을 굴리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쓰고, 쓰면서 생각하는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더라도 ‘생각’과 ‘쓰기’는 당연히 상호작용을 이루지만, 좀 더 사고가 확장되었다고 할까. 내 감정에 함몰되어 글을 쓰기보다 거기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내 글을 더욱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들었다면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을 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멘토 작가님은 계속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씀과 나만의 감성을 더욱 담아내라는 피드백을 주셨다. 연달아 받는 지적에 나의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쓰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쓰면서 나의 글을 한 편씩 쌓았고 첫 브런치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첫 브런치북을 완성했을 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때론 쓴소리라고 여겨지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당연히 지금도 부족하다. 하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에 글을 쓰지 못한다면, 글쓰기는 멈춰버리고 말 것이다. 내 글이 부족하고 어설프게 느껴져도 일단 써야 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나의 첫 브런치북

https://brunch.co.kr/brunchbook/bri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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