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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Feb 02. 2021

글쓰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출판사 대표님의 피드백을 시작으로 사고의 확장을 조금씩 넓혀갔다. 설렘으로 시작했던 그 과정은 아프고 힘들었다.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답답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엄한 사람에게 불똥이 튀기도 했다. 여기서 엄한 사람은 내 남자친구다. 반성하고 다행히 잘 풀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유명한 문장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어떤 주제를 잡고 글을 써야 할지는 내가 정해야 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일단 시작한 원고를 어설프게라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는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에 원고를 갈아엎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주제를 다시 잡으려니까 뭘 써야 할지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마인드맵을 그리고 내가 잡은 주제로 다양한 책을 검색하면서 목차를 대충 짜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글로 어떻게 채워야 하나 라는 생각에 막막함이 밀려왔고 머리를 쥐어짰다. 아무리 나를 탈탈 털어내도 나올 얘기가 없어 보였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원고가 형편없어도 마무리 짓는 게 맞는 건지,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주제를 잡아서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 내 안에 있는 세계에서 열심히 투쟁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내 원고가 형편없어도 마무리 짓자고 마음먹었다. 돌고 돌아 방황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방향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전의 글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을 망각하고 있었다. 책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어느 순간 나의 목표는 책 쓰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책만이 가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동이고 그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은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이미 가치 있었다.


출판사를 통해 내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에 잘 팔리는 책이 가치 있는 책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잘 팔리는 책을 쓰려니까 당연히 어려웠다. 나의 경험도, 지식도, 내공도, 모든 것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그 간격을 채우려고 하니까 조급해졌다. 지금 나는 어설프더라도 배우고 익히고 깨지기도 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부족한 나를 인정했다.




나는 처음부터 잘 쓴 책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책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든 한 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다시 한번 읽게 된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문장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이것은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멋진 이유가 된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퍼붓는 노력이 있고, 더디지만 더 나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에 충실한 나 자신이 먼저 안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글쓰기를 즐겨야겠다. 때론 글이 써지지 않아서 머리에 쥐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글을 써야겠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독자의 반응이 목적이 되면 글쓰기를 오래도록 이어가는 게 힘들 것이다. ‘읽히고 화제 되는 일에만 혈안이 되지 않아야 휩쓸리지 않는 글을 계속 써갈 수 있다’고 위에 언급한 책의 저자도 강조했다.


남이 내 글을 읽어주는 기쁨 이전에, 내가 내 글을 쓰고 읽는 기쁨을 충분히 만끽해야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스스로 노력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말이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나의 첫 이야기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i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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