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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Jan 27. 2021

완벽한 글은 없다

나는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다

출판사 대표님께 전화를 받고 큰 에너지를 얻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출간제의는 아니었으나 전문가에게 내 원고에 대한 소중한 피드백을 얻으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더 집중을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서둘러 짐을 챙겼다. 당장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발견해줬다는 기쁨에 마음이 벅차올라서 거의 뛰다시피 집에 왔다. 흥분한 상태로(누가 보면 출간제의 받은 줄...) 신나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도 “진짜?”하면서 같이 기뻐해 주셨다. 큰 동기부여를 얻었으니,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린 후, 원고에 대한 글은 전혀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고뇌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님의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내 글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내 글을 더욱 날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내 글에서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했지만 막막했다. 내가 쓴 원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내 글이 에세이가 아닌 일기 같다는 말씀에, 그날 브런치에 올리는 글도 일기처럼 보여서 괜히 올렸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글에 대한 의욕이 한 풀 꺾이고 만 것이다.


그전에 지인을 통해 처음 미팅을 했던 출판사에서도 내 글에는 메시지가 없다는 피드백을 전달받았다. 충격적이었지만 출판사에서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글에 메시지를 담았는데 왜 메시지가 없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슷하게 메시지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으니, 객관적으로 내 글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내 글을 발전시키고 완성도가 높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일이 하기 싫은 과제처럼 느껴졌다. 브런치에 첫 글을 게시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올린 글의 날짜를 쭉 살펴봤다. 4개월 동안 일주일에 적게는 2개의 글부터 많게는 10개의 글을 꾸준히 올렸다. (일주일에 10개라니, 세상에. 내가 보고 내가 놀랐다. 이땐 정말이지,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 주였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고작 글을 하나 올린 게 끝이었다. 보통 일주일에 2~3개의 글은 올리려고 하는데, 실적(?)이 저조한 한 주였다.

    

마치 내 앞에 거대한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이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쓴 걸 뒤집어엎어야 하나.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럼에도 아예 손을 놓을 수 없어서 뭐라도 끄적였다. 블로그에 수첩의 기록을 옮겨 적고, 한글에 써놓은 글을 복사해서 붙여 넣는 정도로 몇 개의 포스팅을 업로드했다. 글쓰기 모임을 위한 과제로 책을 읽으며 필사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손의 감각을 잊지 않도록 계속 써야만 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거대한 벽에 압도당해서 글쓰기를 영영 멈출 것 같았다.


그러다 프리랜서 관련 강의를 는데, 강사님이 하는 멘트에 ‘거대한 벽’의 정체를 발견했다.

“여러분,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춰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세요.”


그랬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어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고 하기 싫어졌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데, 대표님의 피드백을 받고서 당장이라도 완성도가 높은 글로 바꾸고 싶었다. 내가 느낀 거대한 벽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만든 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 나는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어 4등급을 받는 사람이 단기간에 1등급을 받으려는 욕심이라고 할까. 너무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 글을 어떻게 날렵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일기 같은 내 글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글쓰기 강의도 들었고 책도 읽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게 나의 한계고, 지금 내 수준임을 인정해야 했다. 글쓰기 앞에서는 요령을 부릴 수 없었다. 시간이 걸려도 그저 묵묵히 글을 쓰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원하는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제보다 오늘 쓰는 글이 더 나은 글이 된다면 좋겠지만, 정체기를 느끼거나 오히려 퇴화됐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때론 그 시간이 지겹게 느껴지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과정이 없다면 그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 애초에 완벽한 글을 없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치고 또 고쳐도 부족하다. 중간에 원고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우선 대충이라도 전체 원고를 끝내고 그다음에 수정하자고 마음먹었다. 세상은 내게 ‘열심히’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요구하지만 적어도 내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으련다. 나는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며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정도였다면 이젠 ‘나는 완벽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며 힘을 실어준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좌절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다고 인정하면 마음도 편해진다. 그리고 나에게 가능한 목표를 잡고 도전할 수 있게 된다. 한 번에 큰 성취를 이루려는 마음보다 차곡차곡 내 글을 쌓아가는 재미를 느껴야겠다. 그렇게 하나씩 쌓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벽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첫 이야기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i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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