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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Nov 13. 2022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라운드 제로 희생자 명단(더 퍼스트 미디어 인용)


뉴욕 9.11 테러의 흔적은 상처로 남아있었지만, 미국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의 이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었고, 기억해두었다. 심지어, 건물의 잔해조차 잊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우리는 이름을 부르게 됨으로써 그 사람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그의 삶을 기리게 되는 것이다. 그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그의 삶에서는 분명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자를 언급하며 약 1분 정도 말을 잊지 못했다. 때론 침묵이 확실한 추모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말보다, 희생자의 삶을 기리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행위라 생각했다. 오바마 집권 2기의 첫 국정연설은 총기사고로 숨진 여고생에 대한 추모연설이었다. 이날 연설을 통해서 희생자의 삶을 기렸으며, 참석자들은 가슴에 녹색 리본을 달고 그 삶에 대해 추모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https://m.sedaily.com/NewsView/1HQ8ZLZLV6#cb


이명박 대통령도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천안함 희생자 45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언급하며 그 희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희생자에 대한 예의는 적어도 정치권에서 분명 언급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한다. 


https://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54


하다못해 역사이래 어이없는 참사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에서도 언론은 희생자의 이름을 계속해서 띄워주며 그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분명 그들의 삶은 거창하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명과는 다른 어이없는 죽음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기억하고 - 되새겨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행해야 할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가 애도를 하난 방법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 기억해 주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의 장례식에서 늘 언급하는 부분은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다. 당연히 관직 하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의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의 기억을 나누는 관습은 분명 우리나라의 것만이 아니라 서양의 장례식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얼마 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장례식 때,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의 삶을 농담으로 승화해가며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그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고, 남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의 뜻을 함께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름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저승사자조차 그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망자의 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다 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아무것도 없다.

당연히 어이없는 참사에 대해 기억을 해야 하는 부분은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적으로 잘못되었든, 혹은 여당 혹은 야당의 문제점에 대해서 파고들든 중요한 사항은 분명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고 - 추모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그 사람의 삶은 어이없는 삶일지 모르더라도,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우리 옆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이없는 상황 속에 사망한 것이다. 어떠한 이념의 희생자도 아닌, 어이없는 행정 절차의 실패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부터 고인에 대한 모욕은 시작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영정이나 위패조차 볼 수 없게 했다. 객사로 사망한 무연고자의 사망도 "무연고자"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가적 애도기간이라 명명하였지만, 실제의 모습은 "무연고자"보다 못한 위로를 하며 조용히 덮으려 한다. 심지어 국감장에서 누군가의 메모. 이 상황이 정말 우습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웃기는 상황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 축제 때문에 인파가 몰렸는데 무려 150명이나 되는 사람이 압사로 사망하게 되었고, 그 들의 시신이 마치 짐짝이 펼쳐지듯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상황인가? 그들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못하고, 고인의 삶에 대해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정녕 말이 되는 상황인가? 당연히 웃기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분노하지 않는 이 상황도 웃기는 상황이다. 세월호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고인을 모욕하는 웃기는 상황이다. 정녕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대해 울고 - 분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진실에 대해 추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있는가? 불과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는 팽목항에 기자를 파견해, 스타 기자를 만들었던 그 상황. 이제는 어느 누가 이태원에서 이 현실을 파악하고, 중환자실에서 희생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인가? TV에 나오는 방송은 여전히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뿐이었다. 이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 들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적어도, 

그게 진정한 장례식이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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