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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04. 2023

잊힐 권리가 주어진 거리

청량리 일대 재개발을 꿈꾸는 구역

올해 2월 중순쯤.


그땐 분명 책을 충분히 읽고, 필름 카메라 하나 들고 발길 닿는 곳까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눈에 띄는 곳을 주목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게 최종 목표였다. 그래서 다시 예스 24의 북클럽을 가입했고, 큰맘 먹고 산 신발을 신고, 작고 아담한 카메라 가방을 메고 열심히 걸어 다녔다. 물론, 마찬가지로 큰맘 먹고 구입한 노이즈 캔슬링이 지원되는 젠하이저 해드폰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들을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할 것만 같은 휴가였다.

그리고 많은 곳을 걸어 다니며 사진도 찍고, 머릿속으로 글에 대한 구상도 해 보았으니 나에겐 분명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남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하겠으나, 휴식 이상으로 걸어 다니며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만큼 의미가 있는 시간이 있어 너무나 소중했다. 이때 길을 걸으며 "공중전화"에 대한 사진을 찍기 위한 스토리를 구상하였고, 그것과 짝을 이루는 오래된 나무 전봇대(역시 이건 정말 찾기 어려운 것이지만,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와 우체통의 강렬한 빨간색의 조화를 사진으로 남기며 어떻게 글을 풀어가야 하나 고민 중에 있었다. 당연히 내가 살고 있는 이문동 일대에는 공중전화도 있었지만, 오래된 나무 전봇대와 낡은 빨간 우체통이 함께 있는 곳이니 사진의 소재는 충분히 모여있는 곳이었다.

사실, 거리 사진을 찍기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 멀리 우뚝 솟아오른 마천루와 깔끔한 거리의 풍경보다는 언제나 내 발걸음은 좁은 골목길로 향했는데, 그곳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려오는 느낌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도 - 다시 편집을 할 수도 없었다. 어찌 보면 빨리 그곳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 사진도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있었으니 아마도 나 자신이 여유를 가지며 충분히 생각하며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자책 아닌 자책도 있었다. 그냥 그곳을 찍기가 두려웠단 핑계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살던 그곳. 그곳의 사진이 아련한 추억인 듯 포장되는 것도 두려웠고, 그곳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기에도 나 자신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거리의 사진일 찍으며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그곳을 사는 사람과 인터뷰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아마, 나 자신도 그곳에서 살았던 기억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거리 사진을 한 동안 잠시 멀리하며, 사진 한 장 - 한 장에 대한 생각만을 남기고자 했다.

그러나, 그날은 어린 시절 살았던 청량리 까지 걸어가 보잔 생각으로, 엄마 손을 잡고 함께 쫓아가던 시장의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오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절 엄마가 사주던 시장의 떡볶이와 돼지 껍질은 아직도 팔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늘 얼큰한 술국에 소주 한 잔을 하시며 취하시던 그 술국도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유치원 졸업식 때 함께 짜장면을 먹었던 오백 냥 하우스라는 중국집이 아직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길을 걷던 차였다.

청량리 시장 현대 코아를 지나 막 길을 지나 술국집의 흔적도 여전히 있었으나, 선뜻 술국 한 그릇을 시키지 못한 것은 아직 낮술을 마실 만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골목 옆의 작은 슈퍼를 지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살던 골목을 들어가 보는 순간 폐허로 남아있는 골목의 모습에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곳. 술에 취해 머리가 헝클어져 간신히 깨어난 친구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주며 밖에서 나가 놀라고 하였던 기억이 있었으니 마침 그 동네 옆에 있던 오락실과 함께 즐겁게 뛰놀던 추억이 선뜻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당시 30년도 더 넘은 오랜 시간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은 떠난 지 오래이니 친구가 살았을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의 흔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단지 폐허만 남은 흔적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 날은 마침 필름이 부족하여 간신히 흑백 필름을 장전하고 사진을 찍던 때였다. 발걸음을 옮기며 맘에 드는 공간의 사진을 찍으며 그 사진에 대한 생각을 남기고 싶었을 때였다. 하지만, 청량리의 높은 마천루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그 공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만 남아있으니, 그곳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또래의 노인들 뿐이었다. 간신히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의 흔적과 쓰레기봉투의 흔적, 세워져 있는 자전거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분명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인데, 우리는 그 거리에 대해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질 60층 규모의 아파트와 그 옆의 대단지 아파트만이 청량리를 상징한다고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곳은 잊힐 권리가 주어진. 아니, 잊힐 의무가 주어진 거리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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