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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30.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7부

7부. 모든 것을 내려놓다.

젊은 시절 나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

 

30대의 나의 모든 것을 불태웠던 회사......


이제 40대가 된 나를 회사에선 떠나라 한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고 이야길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대기발령을 할 것인가? 아니면 몇 푼 안 되는 퇴직위로금을 받고 떠날 것인가 선택을 하라 했다. 테이블에 마주 않은 그의 얼굴은 불과 며칠 전에 나와 함께 소주 마시자며 이야기하던 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부러 기선을 제압하려고 수염도 깍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긴 했지만, 사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사돈으로 골프 치며 그늘집에서 맥주를 부어라 마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며칠 전에는 소주에 노래방에 단란주점을 행차하며 사람들 앞에서 형님 형님 하며 굽신거리던 모습을 소문으로 들었다. 즉, 그가 초췌해진  모습을 보여준 것은 단지 말하기 어려운 이야길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도 밤늦게까지 마셨던 술이 아직 덜 깼기 때문이었다.

신 차장의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잠시 바라본다. 와이프와 딸이 서로 손을 꼭 잡으며 단란하게 찍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다음 페이지는 와이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윽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다음은 어린 딸아이를 목마 태워주고 신나게 웃고 있는 사진. 평범하며 가정적인 신 차장은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땐 야수가 되었고, 술을 마실 땐 짐승이 되었으며, 유흥을 즐길 땐 그 누구보다 더 비굴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바라본 모습은 테이블 앞에서의 야수였으니, 그는 어찌 보면 하이에나와 같이 썩은 고기를 찾아 떠나다 우연히 나라는 썩은 고기를 바라보자 미소를 띠었는지도 모른다. 담배 한 대를 마저 피고 나는 신 차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3년을 몸 바친 회사입니다. 그러니 이 회사에 고작 몇 푼의 퇴직 위로금을 받고 떠난다는 건 말이 안 되네요. 좀 더 기다려보고 기회를 찾아보겠습니다."


신 차장이 제시한 3개월의 급여와 약 1달간의 유급 휴가. 금전적으로는 4개월 남짓의 위로금이었으니 그 위로금도 퇴직 급여 형태가 아닌 일반 급여 형태로 처리해 주겠다 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회사 사정에 의한 권고사직"으로 신고를 해 줄 테니, 실업급여도 몇 달 동안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 했다. 물론, 회사에서 그렇게 진행을 하게 되면 나의 앞으로 구직 활동에 어려움이 많을 테니 "일신상의 사유에 의한 퇴직"이라고 적어주면 더욱 고마울 것 같다고 했다. 신 차장은 특별히 나에게 조건을 먼저 제시해 주는 것이고, 선배니까 이 조건을 듣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조건을 듣는 즉시 사인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 내 조건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아무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단지, 나는 그 자리에서 신 차장과 나 단 둘이 있었으니 누구와도 상의를 할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신 차장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았으니, 난 누구와도 상의를 할 수 없었다. 만약 잘 풀린다면 상관이 없으나, 만약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이 그나마 몇 달 안 되는 퇴직 위로금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이 상황을 전해 듣기만 하더라도 내 조건은 사라지게 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신 차장은 분명 학창 시절 암기과목에 뛰어난 친구였을 것이다. 그러니 토씨 하나, 표정 하나 바뀌지 않으며 이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술술 풀어나가니 말이다. 하지만, 난 암기과목도 - 상황 대처능력도 떨어졌었는지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아니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며칠 아니 몇 시간의 시간을 달라 했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속 시원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담배 한 대를 더 태웠다. 아니 두 대였는지? 세 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연거푸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다 보니, 신선한 공기와 담배연기가 한대 어우러져 무슨 맛을 만들어내는지 조차 몰랐다. 멘솔의 알싸한 향이 살짝 섞여 나오니 동남아에서 막 착륙했을 때 느꼈던 습하고 알싸했던 공기와 비슷한 느낌이 든 다는 것은 내 예전의 추억과 함께 어우러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맞다. "착각"이다. 이건 어쩌면 회사에서 내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일지 모른다. 아니, 이건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정말 몇 년 아니 십여 년 만에 처음 담배를 입에 물고 있으니, 그 담배는 평소 겪지 못했던 그 기억, 오랜 기간 동안 금연 기간 동안 내 마음속에서 간절히 원했던 흡연에 대한 욕구가 악몽과 섞여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며칠 전에 보았던 드라마의 악몽이 함께 뒤섞여서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닌가? 요 며칠 반주로 마셨던 소주가 너무 과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마신 소주는 공업용 알코올처럼 뱃속에서 부터 코 끝까지 소독용 알코올의 향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이 소주를 왜 마시는지도 몰랐다. 쓰기만 하고 아무 맛도 없는 소주.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처음 마시던 소주를 억지로 집어삼키고 닭똥집이며 어묵 국물을 연거푸 들이켰으니, 그 악몽이 나에게 돌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몸에 좋지 않은 소독용 알코올 맛의 소주를 그렇게 마셔댔으니, 이제는 씁쓸하고 쓰라리던 소주의 향이 달콤하게만 느껴졌으니, 맛도 잘못 느껴진 만큼 머리도 이상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 이 모든 것은 악몽일 것이다. 금연 때문이 든, 반주로 마신 소주 때문이든 그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심각하게 때린 게 아닌가 싶었다.


지이이익!


마저 담배를 물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 핸드폰에는 신 차장의 이름이 있었다. 악몽이 아닌 거 같았다. 핸드폰의 진동음과 떨리는 그 느낌이 저 멀리에서부터 천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허벅지에서부터 시작한 진동음은 머리털 하나하나에 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진동음은 거짓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동음은 나를 찾았고,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였다. 

갑자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입에 문 담배를 비벼 그려 손으로 잡았으나 그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불붙은 담뱃대에 매달려 있던 담뱃재가 저 하늘 멀리 날아가지 않고, 내 티셔츠에 그리고 바지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핸드폰의 잠금화면을 열려고 했으나 손이 너무 떨려 어떠한 메시지도 확인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잠금화면을 열려고 하는 그 손가락이 흔들리지 않았다. 분명 신 차장은 나에게 "형님. 장난이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것만 같았다. "형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면 소주나 한 잔 하시죠."라는 메시지였을 것 같았다. 그래. 오랜만에 신 차장과 함께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건 꿈이고, 나 혼자만 상상하는 거야. 소주 한 잔 하자는 이야기겠지. 


"금일 협상은 수용할 의지가 없으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금일 이 시간부로 대기발령으로 조치될 예정이며, 부서는 교육과정으로 배치될 예정입니다. 근무지는 추후 통보할 예정이니 현 근무지에서 정위치 하여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기발령.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내가 앉아있던 그 순간.


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사에서는 내 모든 일을 그만 내려놓으라 지시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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