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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May 21.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11부

11부. 예외는 없었다.

사실 기준도 없다. 목표도 없다. 회사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것도 아니다. 단지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기준이 중요하진 않았다. 그냥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이야기해도 별 다른 반발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만 선택하면 될 뿐이었다. 위에서 "몇 퍼센트"를 줄이라고 하는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지침만 전달될 뿐이었다. 저 성과자 혹은 조직 문화 저해자를 대상으로 정리하라는 지침은 없었다. 그저 몇 명 혹은 몇 퍼센트의 사람만 자르면 될 뿐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 일 잘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조직"에 순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싫은 내색 한 번 내지 못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우선순위였다. 단 한 명이라도 쉽게 자를 수 있는 사람이니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 사람은 어디든 잘 가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알아서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니 죄책감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난 괜찮아." 그 친구는 그래도 나가서도 잘 살 거야. 하지만, 난 아직 애들도 어리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등등 여러 핑계를 댄다. 이제 애들이 막 중학교에 입학해서 혹은 몇 년만 지나면 대학을 졸업할 상황이니 네가 대신 떠나라는 말을 전한다. 막상 그 대상자도 비슷한 상황이란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내"가 괜찮은지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야 하는 대상만 선택할 뿐이었다.

A의 이야기를 해 보자. A는 40대 초반에 잘 나가는 여사원이었다. 우리 회사로 이직을 하자마자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으며, 그 누구보다 똑 소리 나는 일 처리로 인정을 받던 때였다. 다소 통통하고 딱 40대 중년의 이미지를 풍기는 외모였지만, 누구보다 활기차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는 딱 그런 이미지였다. 물론, 그건 실제 이미지는 아니었다. 본인이 만든 이미지였다. 그런 A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나머지 징계가 두려워 무려 3개월 동안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력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가 A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덮어졌고, A는 이 회사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A는 한 가지 숨기는 것이 있었으니, 인사담당과 친구였단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동년배였던 인사담당도 똑같은 여사원이었고, 둘이 같은 대학 동문이며 친한 동기였단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왜 3개월 동안 무단결근을 해도 징계를 받지 않았는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알려지게 된 사실이었다. 당연히 인맥이었으니, A는 이 폭풍의 현장에서 피해나갈 수 있었다. 당연히 권고사직을 당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으면서 "우리 다음에 꼭 일 잔 해요!"라는 천진난만한 작별인사를 할 정도의 사람이니, 너무나 순수해서 그런 건지? 혹은 사람들에게 엔도르핀과 같은 존재라서 그랬던 것인지 회사는 A가 계속 회사의 구성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사실 A는 무단결근 3개월 직후 나의 파트원으로 막 배치를  받아 왔던 터였다.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나와 동갑이라 하니 맘 편하게 업무를 지시하고 일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큰 아들은 중학생이고, 작은 딸은 초등학교 2학년이라 하니 학부모로서 공감대도 있을 듯했다. 남편은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이라 했으며, 시아버지는 남부권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여유로운 말년을 보낸다 했다. 사실, 그 보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포르셰 카이엔을 몰고 다니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카이엔의 시트의 가죽 감촉이나 대시보드의 기능들을 바라보며, 평생의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차를 몰고 다니던 A가 내심 부럽기도 했다.

물론, A는 내 자리가 탐이 났는지 나와 팀장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줄타기를 하며 우리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내가 추진하던 모든 업무들이 A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나는 조금씩 업무를 빼 가던 그 시점에 난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팀장은 나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고, 담당 상무도 나에게 지금부터 알아보라 이야길 했다. 참으로 답답한 나머지 난 나와 동갑이며 - 친구라 생각했던 A에게 차 한 잔 하자 했다. A는 항상 깔깔거리던 모습을 보이다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날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요?"


그리고 A는 날 필한다.


그리고 A는 내가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길 한다.

난 사실 권고사직이 아니고, 아직 "대기발령"일 뿐인데 말이다.


A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내 주위의 사람들은 한 명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내며 마무리를 하곤 했다. 아직 회사에 남아있는 나에게 이별을 고하곤 했다. 그리고 난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이 이젠 큰이 되어갈 때쯤. A가 울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어떡해요.... 저 보고 이제 회사를 그만두래요."


남편이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이지만 박봉이라 자신도 일을 해야 한단다. 시아버지가 개인 사업을 하지만, 외동아들인 남편에게 상속을 언제 해 줄지도 의문이란다. 첫 째 아들을 외고로 보내고 싶은데 지금도 한 참 돈이 들어갈 시점이라 자신은 권고사직을 당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았다. 자신은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야근을 했는데, 왜 회사는 자신에게 이런 폭력을 휘두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A가 나에게 휘두른 폭력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나 보다.

B는 경영관리팀에서 잘 나가는 인재였다. 경영관리팀에만 5년 넘게 근무를 했으니, 구조조 저으이 파도에 절대 휩쓸리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다. 인사담당과 친하고, CFO와도 개인적으로 독대를 할 정도로 잘 나가던 그 친구도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렇다. 일 잘하는 이 친구는 잘 나가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분명 갈 길이 있기 때문이었다. A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이었으니, 그 죄책감이 덜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두 가지 상황 어느 것도 아니었으니, 단지 팀장이 날 마음에 안 들어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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