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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ul 08. 2023

필름으로 바라본 팬데믹이 지나간 뒤의 풍경

https://brunch.co.kr/@pilgrim6/199


이사를 갔다는 핑계 아닌 핑계 때문인가? 거의 몇 달 가까이 찍어두었던 필름을 현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일반적으로 보통 필름은 촬영을 하고 난 뒤 3개월 이내 현상을 해야 한다 하는데, 마침 이 필름이 거의 3개월 가까이 방치가 되었으니 급하게 사진관을 가서 현상을 하게 되었다. 마침 Ilford XP2로 찍은 필름이다 보니 컬러 현상액인 C-41으로 현상을 해도 문제가 없어 흑백 사진만의 매력과 컬러 현상액의 간편함이라는 장점이 함께 공존하니 마침 다행이었다. 물론, 흑백 현상 프로세스가 좀 더 단순하지만, 요즘은 그나마 필름 사진을 찍지 않고 - 그나마 찍는 필름도 컬러가 대부분이다 보니 대부분의 현상소가 C-41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 그러니 흑백 필름을 주면 당연히 기존의 현상액을 비우고 해야 해서 금액도 더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집에서 자가 현상을 할 경우는 흑백이 좀 더 편하니 예외로 하자.) 하지만 Ilford XP2는 C-41으로 현상을 하니 필름을 맡긴 뒤 1 ~ 2시간이면 바로 현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자주 애용하는 필름이 되었다. 물론, 그 명도도 마음에 들었다.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었던 것 같다. 그날은 마침 카메라 두 대를 들고 갔었다. 막 더위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목이 타 들어가는 듯하여 편의점을 들릴 때마다 시원한 생수 한 병이 간절해지던 그 시점. 종로에서부터 청량리 까지 정처 없이 걸으며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바라보며 셔터를 눌러대던 그 순간. 물론, 우리에겐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지만, 그 일상 속에서 사진으로 남게 되면 그만큼의 의미를 얻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분명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순간"으로서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 종로의 뒷골목은 소주 한 잔 기울이기 좋은 선술집이 많던 곳이었다. 포장마차와 어우러져 어르신들께서 저렴하게 소주 한 잔에 국밥 한 그릇을 들이키며 잠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장기를 두던 그곳. 하지만 이제는 이곳도 개발이 되었고, 다양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낙원상가 뒤편부터 시작하던 그곳은 이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변화가 되어간다. 당연히 그 변화는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결과일지 모른다.

나 같이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변화가 있으니 또 한 장의 사진을 담기 위한 공간으로서 변화를 반갑게 맞이하긴 하지만, 그 변화의 순간에 기존 종로의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게 되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생 시절, 없는 돈 모아가며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두 병을 마시던 그 시장. 혹은 막걸리 한잔에 기본 안주를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때우던 그 시절. 물론, 그 당시의 종로 뒷골목은 냄새나고, 습했으며, 지저분했던 기억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추억이 서려있던 그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무언가 깔끔해진 기분이다. 거기에 팬데믹이 끝난 그 시점에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 더 많은 변화를 원하다 보니 종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곳에서 구식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나와 내 필름 카메라뿐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수동 카메라에 수동 렌즈, 노출계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뷰파인더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변해가는 종로와는 어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남아있는 그곳을 위해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다소 의미가 있길 바라며 셔터를 다시 한번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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