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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Oct 15. 2023

흑과 백이 색을 만났을 때

https://brunch.co.kr/@pilgrim6/232


촬영 카메라 : Leica MP, Elmar-M 50/2.8, Fujifilme Superia 400, Adobe Lightroom 보정


이사 온 후 약 3개월 남직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걸은 적이 있다. 

그때 필름 카메라도 함께 휴대를 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그러고 나서 두어 달이 지난 시점에 현상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었고, 사진을 자주 찍지 못하는 탓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사진"에 집중하긴 하지만, "사진"에 집중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미 찍어둔 필름은 계속 쌓여만 가게 되고, 언젠가는 현상해야지 라는 마음이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사진을 올리게 되었다.

이 당시 의도하지 않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흑백에 맞추어 세팅을 해 두었고, 필름 카메라는 컬러 필름을 한 롤 넣어두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보통은 둘 다 흑백 / 아니면 둘 다 컬러를 넣어두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미 컬러필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세팅을 "흑백"으로 바꾼 건, 언젠가 현상하였을 때의 그 색감과 빛의 조화가 기대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거리에서 보인 색은 빛바랜 색들이 대부분이다. 햇빛에 노출되고, 시간에 의해 노후화가 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색들은 점점 옅어지게 된다. 마치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듯, 빛도 점점 연해지는 모습으로 다다가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흑백"이란 선택이 있다. 흑백 사진은 나이 들어가고, 옅어지는 색의 모습보다는 명과 암이라는 두 존재만 남겨두고, 형태만 남겨두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이 아무래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니 본래 가지고 있었던 모습과 형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사진이 되었지만, "컬러"사진은 그 색이 점점 옅어져 가는 시간성까지 함께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에, 2차원 평면 사진 안에서 시간의 흐름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단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단점은 다시 한번 장점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걸어가는 그 시간.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는 그 모습조차도 시간의 미세한 변화에 대한 인지 덕분에 지금 보는 것과 사진으로 남겨진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바라보는 것 그 자체의 미세한 변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내일과 다른 그다음 날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거리사진에 대한 매력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거리 사진은 모든 것이 모델이 되고, 모든 것이 주제가 되며, 모든 것이 사진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 멋진 모델이나 배우의 아름다운 포즈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위에서 펼쳐지는 흔한 물건들과 소품들이 때론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스토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 속에 찍히는 그 순간만큼은 내 삶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된다. 마찬가지로 흑백의 사진은 색을 만나는 그 순간부터 그 색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점점 채워져 나가기 시작하니 때론 아무 스토리가 없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재밌는 이야기들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난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걸어간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 이야기가 때론 시시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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