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 목적한 바를 이룸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뜻. 혹은 영어로 success.
하지만 다른 뜻이 있다면???
동음이의어로서 의미가 아닌 다음에야, 분명 "성공"이란 단어의 뜻은 명확하다.
목적한 바를 이룸.
그 목적한 바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직업적 성공?
혹은 학문적 성공?
아니면 많은 인맥?
어쩌면... 금전적인 수입?
그 모든 건 다 비껴나갔다. 그렇다. 딱히 성공했다 말하기 어렵다. 아니, 늘 실패만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두렵단 생각이 들지 않는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않은 삶. 그렇다고 불행하거나 우울하지 않은 삶이니 그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공유해 보고자 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오히려 이런 삶에 대해 이야길 하면 누군가는 좀 더 쉽게 읽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글은 성공하지 못했다 해서 세상에 불만이 섞인 이야길 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가끔씩은 세상에 불만이 생기긴 했지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공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진 실패하지 않은 삶. 그리고 성공은 아니더라도 - 넘어지더라도 또 한 번 도전을 해보고자 일어서는 삶. 그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창 시절 내 꿈은 국문학도였다. 그리고 소설가였고, 글 쓰는 작가였다. 아니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늘 노트 뒤편에 내 이야길 적곤 했다. 연필 혹은 샤프로 꾹꾹 눌러쓴 이야기 들. 때론 영어노트에, 때론 음악 노트에, 어떨 땐 무지 노트에 쓰던 이야기 들. 그 이야기 속에는 이 세상을 정복하려는 마왕의 손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용사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악당을 물리치러 악의 소굴로 들어갔으니 악당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반전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때론 저 먼 우주의 머나먼 은하계에서 벌어진 외계인과의 전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랬다. 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
혹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잠시 숨어 있던 그런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긴 노트 뒤편에 수줍게 숨어 있었던 그런 이야기.
중학생 시절, 내 글은 누군가에게 보이질 못했으나 우연찮게 전교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2학년 시절 부반장이 내 노트를 우연찮게 읽어본 게 첫 번째 독자였다. 물론, 그 독자는 어떠한 평도 이야길 해 주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푹 빠졌던 게임의 줄거리를 조금씩 뒤틀어가며 만들었던 첫 이야기였지만, 그 독자는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어느 부분이 좀 더 보완이 되어야 할지 이야기 조차 하지 않은 채 3학년으로 올라간다. 그때는 친구들과 모여 만화책을 읽으며, 열악한 화질의 "에반게리온"이나 "나디아"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머릿속 꿈을 키워 나간다. 한 친구는 그림으로, 그리고 난 글로 그 이야기를 채워나가던 그 시점...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 세상의 빛도 보질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글을 끄적이던 내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손으로 내 노트를 낚아챈다. 그리고 그 글을 주욱 훑어보더니 동그랗게 말아 내 머리를 강하게 한 대 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한다.
"이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해!"
그리고 그 선생님은 그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나의 두 번째 독자는 내 글을 향해 너무나 능동적인 평을 해 주었기 때문에 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흩날리는 꽃가루를 바라보며, 잠시간의 격한 평가를 들은 뒤 교실 뒤편에 보관해 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묵묵히 나의 작품 - 혹은 나의 아이들을 잘 담아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독자는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독자는 너무나 열열한 평가를 해 준 나머지 그날을 머릿속에서 잊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독자의 날카로운 평가를 잠시 뒤로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공부는 개나 줘버려."라는 중2병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조심히 글을 계속 쓰기 시작한다. 하이텔에도 글을 써서 올려보고, 나우누리에도 글을 써본다. 물론, 내 글에 평을 해 주는 독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어떤 독자들은 나와 만담을 나누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했다.
"그 이야기는 모난 세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세상에서 퍼져나갔다. 마치 공이 튀듯, 팝콘이 터지듯. 저 멀리 퍼져나간 이야기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당시 팝콘이란 음식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이 세상에 제일 잘 나가는 용사가 누구였는지 말싸움을 하던 두 아이의 천진난만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때론 역사로 - 때론 전설로, 때론 믿지 못할 그런 이야기였는지 모를 그 이야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하루가 지난 시점. 몇 안 되는 나의 독자는 내 글에 대해 짧은 평을 해 주었다.
귀하의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귀하의 글은 너무나 모순 투성이라 글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모난 세상, 울퉁불퉁한 세상이라 하였는데, 지구는 분명 구체입니다. 이 구체는 인공위성으로 관측을 하였더라도... (중략)... 그리고 팝콘은 남미의 옥수수가 기원이 되어 전 세계로 퍼진 음식입니다만, 귀하의 글은 시대와 지역이 불분명한 가운데 역사적 고증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분명 팝콘이란 소재를 쓰려한다면, 정확히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그 이후의 이야기...(생략)...
세 번째 독자 덕분에 나름 머릿속에 이야기를 주욱 그려나갔던, 나의 첫 번째 연재는 그 끝을 향해 달려가지 못했다. 사실 그 이야기가 그리 재밌는 이야기가 될는지 모른 이야기였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 재미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시작부터 독자들의 열열한 환호 때문에 난 너무나 부끄러워 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글은 이제 더 이상 문자로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수줍어졌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이후 고2가 된 시절.
그 시절의 난 책도 잘 안 읽고, 글도 잘 안 쓰던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그리 잘하지 않던 학생이었지만,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 과목 중 "작문"이란 수업이 있었다. 한 페이지의 글을 쓰며 제출을 하던 그 시절. 시험 문제로 글을 쓰던 시절. 그 수업은 지루한 학창 시절의 수업 중 가장 재밌고 맘 편하게 하던 수업이었다. 정말 맘 편하게 연필로 꾹꾹 눌러쓰면 글을 쓸 수 있었고, 갱지의 앞 뒤면에 내 생각을 채워 나가던 그 글들은 30대 중분의 앳된 작문 선생님의 눈에도 들어오게 된다. 마침 4번째 독자를 만나게 된 시점이다.
그 당시 기억이 나던 어린 왕자와의 추억. 마치 어린 왕자가 유성을 타고 이곳, 저곳 날아다 미녀 어느 순간 떨어지게 된 담양에서의 하룻밤. 그 담양은 대나무가 우거져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하였을 때 자신의 고향별의 바오밥나무와 다른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하던 그 순간, 메타쉐콰이어 숲의 길을 걸으며 관방천의 천둥오리를 보며 다시 한번 친구였던 여우와 새침데기 장미를 그리워하며 다시 저 하늘로 날아가던 그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 어린 왕자는 우연히 들린 곳이지만, 바오밥나무도 결국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었다는 걸 깨닫고, 여우의 가르침과 새침데기 장미조차 가르침이 있었다는 내용. 쓸데없는 헛소리 같아 보였지만 그 글은 작문 선생님의 눈에 참 재밌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불러 한 마디 거든다. 차라리 예고를 갔으면 어땠을까? 문예를 전공하거나, 지금이라도 문예 동아리를 해 볼 생각이 없는지 이야길 해 보았다. 하지만, 이 글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고등학교 1학년때 한번 썼던 글이었고,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헛소리 같은 글"이라 하며 내 키 만한 각목으로 엉덩이 찜질을 해 주며 평가를 해 주던 그 순간이었다. 기존의 독자들과 다른 반응이 보여왔으니 참 어리둥절하며, 예고를 가지 못한 이유. 그리고, 처음으로 내 글에 대한 평가를 해주었단 이야길 하던 그 순간.
그 이후 내 글은 나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아니 주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글은 전교 3등을 하던 친구의 이름이 되었다. 조금 수정이 되었지만, 나와 어린 왕자와의 추억은 다른 친구의 추억이 되었고 난 더 이상 그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K대 법대를 수시로 합격하였고, 부모님과 큰 형이 이미 명문대인 S대를 나왔기 때문에 자신이 합격한 K 대는 너무나 부족한 학교였기 때문에 재수를 할 거라고 이야길 하였다. 참 아쉬웠다. K대 법대를 합격하기 위해 주인을 떠났던 나와 어린 왕자와의 추억은 어느 한순간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앳된 작문 선생님은 어느 순간 내 눈에 키메라처럼 보였다. 30대 중반이지만 마치 이상형과 같았던 모습은 마치 마귀할멈 같았고, 짙은 눈 화장에 분을 덕지덕지 바른 모습. 그 화장품의 향수 냄새는 땀냄새와 어우러져 역겨운 냄새 같이 풍겼다. 그 시절 나의 4번째 독자는 나의 소중한 친구를 저 멀리 떠나게 했으니, 글을 쓰기 위해 - 이야기 꾼으로서 그 시작은 아름답질 못했다.
그런데 세상은 참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미워했다.
난 노트를 덮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글을 썼다. 하이텔과 나우누리에 내 글을 열심히 올렸다. 이야기도 올렸고, 내 생각도 올렸다. 하루는 조회수 1이었다가 하루는 조회수가 20이 될 때도 있었으니 끊임없이 독자는 조금씩 늘어만 가고 있었다. 물론,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하던 "퇴마록"이나 "드래건 라자"에 비할바는 못되었지만, 난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로 대학을 갔다.
그리고 그 글로 지금도 먹고살고 있다. 때로는 PPT를 통해, 때로는 Word를 통해 내 글을 써 내려간다. 아직 내 글은 죽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글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긴 아니다.
늘 실패한 사람이 실패한 여러 경험을 무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던 멍청했던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때론 하이틴물 같은 이야기로 - 때론 판타지 소설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땐 암투와 배신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년 남성은 단 한 번도 세상의 외침에 무릎 꿇어본 적 없다. 한 번 소리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던 그 사람의 이야기다.
이건 실화였지만, 마치 농담 같았다.
마치 농담 같았지만,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설마 하는 그 순간...
이 이야기는 다시 한번 글이 돼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