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카메라를 사고 싶었어

by 별빛바람

"정 이사는 취미가 뭐예요?"


대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이야기는 "취미" 혹은 "관심사"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 "관심사"를 통해서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대화를 엮어 나갈 단서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만약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한다면, 어떤 종족을 자주 하는지 이야기를 하며 좋아하는 프로게이머의 플레이 스타일로 확장을 해 나갈 겁니다. 만약 스포츠를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좋아하는 팀과 서로 좋아하는 팀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겠지요. 하지만 전 게임을 좋아하지도,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이야기를 할 땐 이야기 꽃을 피우긴 하지만, 요즘 들어 TV드라마나 최신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다 보니 그것도 쉽지가 않지요. 하지만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길 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진"과 "카메라"이야기입니다.


"전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주제를 확장하고자 어떤 기종의 카메라를 사용하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렌즈는 몇 개를 가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 렌즈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이야길 하곤 하지요. 아마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에서 "카메라"를 주제로 혹은 "사진"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곳을 방문해 보면 렌즈에 대한 특징이나 색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이 렌즈는 선예도가 높고, 색감이 진득하다고 하는데, 사실 전 그걸 전혀 모르고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F 조리개 값이 어떤 의미를 하는지, S 셔터 속도의 의미는 뭔지? ISO의 값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시작을 하였지요.

그렇습니다. 전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고,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좋은지? 어떤 렌즈가 좋은지? 선예도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MTF 차트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순간 말이 막힙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을 바라보고, 특정 렌즈로 찍은 사진의 느낌을 보면서 "아... 이게 딱 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 스타일이구나."라는 것을 찾으면 그때부터 돈을 모으고 사진을 찍어보곤 하니 남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정 이사는 인물 사진을 주로 찍나요? 풍경 사진을 찍나요?"


이렇게 이야길 하는 순간이 되면 저도 순간 말 문이 막힙니다. 인물 사진을 찍어본 건 가족사진뿐이니, 그걸 인물 사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 멋진 산이나 들판을 걸어가며 광각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냥 이것저것 찍어요."


그냥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합니다만, 무언가 주제를 가지고 찍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보려 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억지로 찾아다니려다 보니 꼭 "일"을 하는 것 같아서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제 주위에 보이는 공중전화들 사진을 찍어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것이지만, 생각보다 이야기를 엮어내기가 쉽지 않아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카메라를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어가는 그때가 더 재밌게 사진을 찍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들고 가야 하니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정년 퇴임을 하신 뒤, 작은 카메라 하나를 선물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30년 넘게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 많으셨으니, 이젠 카메라 하나 들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을 드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기 시작했지요.


"속도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사진 찍는 게 공짜로 찍는 거니?"


분명 아버지에게 선물해 드린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였으니, 마음먹고 사진을 찍으면 충분히 멋진 사진이 나올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사진을 찍으며 필름을 사고, 인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돈 걱정 하지 않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에 아버지에게 추천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돈"이야기부터 하셨습니다.


"사진 찍으러 가려면 차비도 들고 말이야... 그리고 밥은 누가 공짜로 먹여주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동네 뒷 산을 오르는 그 순간, 자전거를 타는 그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으시라 말씀드렸지만,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무언가 특별한 공간" 혹은 "새로운 공간"의 사진을 찍는 것이 사진이라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아버지께 선물해 드린 카메라는 예전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선배 카메라의 운명과 동일하게 장롱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그 카메라를 꺼내 보았을 때 배터리는 방전되어 전원이 켜지지도 않는 무용지물 카메라가 되어 있었지요.

비슷하게 저의 이모는 여장부 스타일이라 그런지 항상 니콘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녔습니다. 번들 렌즈긴 하지만 35mm 단렌즈과 18-56mm 줌 렌즈 두 개를 들고 다니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기 바빴지요. 그 당시에 카메라를 사는데 300만 원 넘게 주었으니 분명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 위한 그 첫걸음은 충분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간 이모의 카메라도 장롱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너무 커서, 혹은 새로운 사진을 찍질 못해서 장롱 속에 들어간 카메라들이 너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 난다 생각할 땐 옆으로 매는 커다란 가방 혹은 백팩을 짊어진 상태에서 커다란 DSLR 카메라에 대형 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긴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방에는 왠지 낡아 보이는 삼각대를 들고 있으니, 사진 하나 찍기 위해 큰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생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커다란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어본 적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출퇴근 시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이나 백팩에 작은 카메라 하나 넣고 다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어찌 보면 제가 가진 카메라의 운명은 장롱이 아니라 제 가방 속에서 조용히 숨어있는 게 아닌지 모릅니다.

항상 가방 속에 들어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느 "특별한 순간"이 아닌 달이 참 이쁜 순간. 혹은 커다란 건물의 유리창에 빛이 반사되었을 때의 멋진 풍경 등 어려 순간의 모습을 포착해 사진을 찍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멀리 가기보다는 제가 일하는 회사 근처 혹은 동네 근처의 사진들을 조합해 사진을 찍곤 하였지요. 그리고 찍는 시간도 한정된 게 사실입니다. 아침 출근시간 / 혹은 퇴근 시간. 어쩌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점심을 거르고 사진을 찍으러 산책 가는 게 일상 아닌 일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 모릅니다.


"네. 그냥 이것저것 찍어요. 제 사진 한 번 보실래요?"


브런치에 글을 쓰며 사진을 올린다고 이야길 하였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첫 이미지는 멋진 모델의 몽환적인 미소 혹은 아름다운 포즈를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여주는 사진은 흑백 혹은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 그림자, 혹은 녹슨 철조망 그런 것들이니 그냥 훑어보며 조용히 저의 스마트폰을 다시 건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재미없는 사진들 뿐이지요.

마침 그날도 집 근처 시장에 방문해 사진을 찍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시장 입구 식당 입구에 연탄을 켠켠히 쌓아두었다 보니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저씨 한 분이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지요.


"뭐 찍으세요?"


저는 웃으며 연탄이 쌓여있는 장면이 신기하고 멋있어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하였지만, 그분은 저를 보며 인상을 쓰며 그다음 말을 거듭니다.


"쓸데없는 짓이구만. 멋있는 것도 아니고, 이쁜 것도 아니고, 재밌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사진 찍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그래? 젊은 사람이 참 할 일이 없구먼..."



분명 누군가에게는 "연탄"이란 소재는 특별하고 신기한 것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그런 소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고깃집에서 맛있는 고기를 굽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난방의 수단이 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의 소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그 순간. 그 순간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모여가며 한 장 - 한 장 사진첩을 채워가는 그 순간 속에서 때론 이해하지 못할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분명 제가 찍는 사진은 재미없고, 특별하지도 않으며, 감동도 없는 그런 사진들이니까요.

그래도 항상 모든 것들이 특별할 수만은 없습니다. 모두가 세상을 구하고, 커다란 업적을 세운 주인공이 될 수만은 없듯, 사진도 항상 멋지고 - 아름다운 것만 찾아다닐 수는 없지 않을까요? 단지,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의미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연탄이 생존의 수단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연탄을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찍은 연탄은 시장 한편에 쌓여있는, 언젠가는 불이 붙어 고기를 구울 운명이 될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물론 그 순간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를 사야겠지요. 하지만 이 이야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 순간에

이야기지요.


특별하지 않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

특별하지 않은 그 순간의 이야기.


누군가는 분명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


그 평범한 이야기 곁에 항상 사진이 함께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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