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하기 전. 아버지는 "꼭 1등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꼴찌를 할 필요도 없지만 딱 중간만 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나 막상 군에 입대하고 보니 1등이 받는 혜택은 많았다. 교육사령관과 악수를 하며 찍는 사진, 그리고 주위의 박수갈채, 의미 없는 포상휴가와 포상 선물. 부대 코인 기념품 등등. 물론 난 1등을 해 본 적은 없다. 딱 중간만 했으면 좋았지만 중간보다 살짝 뒤에 있었으니 눈에 띄지 않는 군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사격도 무난히 욕 안 먹을 수준으로 했고, 여러 교육 훈련도 티 안 날 정도로 수료를 했다. 1등도 꼴찌도 아닌 삶이었다.
학창 시절도 비슷했다. 1등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꼴찌를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무난하게 반 평균에서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의 시험성적이 나왔으니,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친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도 아닌 그저 그런 티 안나는 존재감 없는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이 삶이 누구나 꿈꿔왔던 삶이었을까? 당연히 학교 선생님은 1등을 이뻐한다. 반에서 1등은 반장, 2등은 부반장이라는 암묵적 동의아래 요식행위인 반장 선거를 통해 합법적 반장으로 선출이 된다. 그리고 선생님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몰래 문제집 한 권, 좋은 시험 문제 정보 등을 살짝살짝 전달해 준다. 그리고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1등과 2등 그리고 몇몇 친구들을 모아 외고나 과학고에 갈 인재들이니 만큼 따로 불러들여 나머지 공부를 시킨다. 영어 공부를 시키고, 수학 공부를 시킨다. "앞으로 너희들은 서울대에 갈 친구들이니 지금부터 성공을 만끽하렴."이라는 말을 늘 던지곤 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있어 반의 최하위 학생들은 의미 없는 존재였다. 제자도 아니었다. 아니 내가 사랑하는 1등과 2등. 그리고 특목고를 갈 제자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른 과목 선생님에게 엄포를 놓는다.
"쟤네들은 딱히 수업시간에 앉아있을 필요 없으니, 출석 체크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따로 지도를 할게요."
그리고 선생님은 아침 조회가 끝난 뒤, 몇몇 친구들을 모아 조용히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있어야 할 곳은 교실이 아닌 창고였고, 선생님은 그 안에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 도시락도 여기서 먹고, 만화책을 보던, 공부를 하던, 웃고 떠들던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한다. 단 1등과 2등에게 방해만 안되게 하라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올 테니, 그때 다시 교실로 가서 청소하고 그리고 하교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들에게서 그곳은 천국이었다. 낡아 빠진 책들과 망가진 운동기구와 의자. 그리고 어두컴컴한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상태에 뽀얀 먼지도 함께 쌓이고 있었으니, 이제 대 놓고 담배를 피워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조용히 꽁초만 버리면 될 뿐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웃고, 떠들고, 놀면서 만화책이나 보고 수다나 떨다 조용히 교실로 나오면 된다. 어차피 청소는 찐따들이 해 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멤버들 중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물론 난 잘 나가는 친구가 아니었고, 찐따 멤버 중 하나였으니 매일 교실청소와 우리 반이 담당이었던 화장실 청소를 번걸아가며 해야 했다. 화장실 청소는 선생님의 욕심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공용 청소구역을 결정할 때 본인이 먼저 손을 들고, 3학년의 화장실은 우리 반이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솔선수범해서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이 청소할 거라 했다. 물론 그게 다였다. 선생님은 청소 당번을 반장과 부반장으로 했고, 친히 그 청소 당번에 대한 하청관계를 만들어주었다. 몇몇 친구들이 알아서 화장실 청소를 해라.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밥풀떼기 하나가 떨어져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이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연히 그 화장실 청소 담당은 다시 하청의 하청을 통해 나와 같은 찐따 멤버들에게 돌아갔다. 물론 아쉽게도 그 아래 또 다른 하청을 줄 사람들이 없었으니 난 자연스럽게 화장실 청소 담당이었고, 교실 청소 담당이었다. 물론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얻는 것도 있었다. 조용히 화장실 청소를 하며 학교에서 대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반장과 부반장의 생활기록부에 "솔선수범하여 3학년 공용 화장실을 청소하였음."이라는 한 줄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성적도 충분히 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친구였으나 혹시 모를 생활기록부 평가를 위해 선생님은 다방면으로 준비를 해 주었다. 선생님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주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 버린 책을 줍게 된다. GW-BASIC 1.0이라 적힌 검은색 책. 집에 컴퓨터가 없었지만 참 신기한 책이라 집어 들고 집에 가게 되었다. 항상 수업시간에 교실 대신 창고에 앉아 있으며 모여 있었던 그곳의 한편에 책이 있었다. 찢어지고 낡은 책이었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어두운 곳이고 딱히 책상이 없었기 때문에 연습장 뒤에 글을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내가 쓴 글은 저 멀리 먼지와 같이 날아갔으니 그걸 찾기도 쉽지 않았고, 새롭게 다시 쓰기에도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던 터였다. 당연히 책의 내용은 별 내용이 없었다. GW-BASIC는 무엇이고, 어떻게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지? 그런 내용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GW-BASIC으로는 음악도 만들 수 있었고,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숫자 계산도 할 수 있었으니 상당히 재밌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연습해 볼 수는 없었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들고 갔다. 가방 속에 넣었다. 누군가 아니면 학교 공용 책이었을지 모르지만, 몇 년의 시간 동안 창고 속에 처박혀 있었을 테니, 잠시 내가 본다 해서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책에 나와있는 명령어들과 내용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Input 문구를 활용해서 노트에 적어보기도 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름을 적으면 "몇 살인가요?"라고 사직하는 문구.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반갑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 당신을 부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세계에는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도움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의 세계는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우리의 세계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간단히 Print 명령어와 Input 명령어 그리고 IF 명령어를 사용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노트로 써 보기 시작했다.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재미있는 방법 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다. 그리고 우연히 기술시간에 컴퓨터 실습이 있었고, GW-BASIC 프로그램은 따로 구하기가 힘들었으나, DOS 폴더에 QBASIC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GW-BASIC와 비슷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기술 선생님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고 학생들에게는 한매 타자연습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라고 시켰다. 2인당 컴퓨터 한 대씩이었지만, 나와 같이 짝을 이루던 친구는 학교 컴퓨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 친구의 컴퓨터는 486 DX4에 16mb ram을 가지고, 하드 용량 480mb의 고용량을 가지고 있었으니 학교 컴퓨터에 큰 흥미를 가지진 않았다. 그 컴퓨터로 "윙코맨더3"도 된다고 했다. 그 게임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포스터만 봤을 뿐이지만, 마크해밀의 굳은 의지가 포스터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386? 아니 286 AT 수준의 CPU에 120mb 하드디스크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컴퓨터의 절반도 안 되는 성능이었으니 굳이 컴퓨터를 만질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6개월에 한 번씩 최신 CPU와 하드디스크, RAM을 추가하는 게 일과라고 했다. 함께 용산 전자상가를 가며 최신 게임 타이틀을 구입하는 게 일이라고 했다. 어떤 게임이든 게임잡지에 나와있는 게임은 그 친구의 차지였으니 난 그저 그 친구가 이야기하는 화려한 그래픽에 영화와 같은 모션을 귀로 들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286 AT 컴퓨터는 정말 환상의 컴퓨터였으며 꿈과 환상을 만들어주는 컴퓨터였다. 그리고 내 노트에 조용히 적어두었던 이야기를 한번 실행시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30여분의 시간 동안 더듬거리며 타이핑을 했고, F5키를 눌러 실행을 해 보았다. 당연히 Error 메시지가 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몰래 숨겨둔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해 두고 다음 기술 시간에 수정해 봐야겠다 다짐했다. 지금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Error의 원인은 명확했다. 오타 때문이었으니, Error를 잡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500 라인의 문구를 입력해 볼 수 있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았지만, 컴퓨터는 먼 미래의 이야기일 테니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기회를 가지고 만들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침 짝은 학교 컴퓨터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 40분이라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500라인에서 600라인으로 점점 늘어나면서, 그 이후 이야기가 잠시 막히게 되자 GW-BASIC 책에 있는 여러 명령어들을 찾아서 입력을 해 보았다. 오뚝이의 눈이 커지는 것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삼각형과 사각형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간단한 숫자 게산도 해보기도 했다. 맨 뒤에 있던 게임을 쳐 보기에는 너무 양이 많기 때문에 조금씩 해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어쩔 땐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선생님은 교내 컴퓨터 경진대회가 있다고 이야길 했다. 다행히 전 학생이 다 참가하는 것은 아니고 참가 신청을 받아서 진행을 하는 거였으니, 나도 한번 재미 삼아 신청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표정을 찡그리며 이야길 했다.
"너네 집에 컴퓨터가 있니? 컴퓨터를 배우기라도 했니?"
아니라고 이야길 하니, 선생님은 출석부 모서리로 내 정수리를 때리는 것으로 화답을 했다. 그리고 네까짓 게 왜 경진대회에 나가야 하는지 이야길 해보라고 했고, 난 고개를 푹 숙이며 한 번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그래. 나가서 한 문제도 못 풀 거니까, 그래도 나가봐라. 지금부터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그리고 반장과 부반장은 손을 들지도 않았음에도 경진대회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참가를 하게 되었다. 일부 참가를 안 한 반도 있었으니 대략 10명 정도 참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컴퓨터 경진대회는 복잡한 코딩을 요구하진 않았다. 그 시절은 코딩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으니, 간단히 GW-BASIC을 통해 문제 몇 개를 푸는 것으로 답을 구하면 되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은 각자 준비를 해야 하고, GW-BASIC으로 짠 프로그램을 각자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해 제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시험지에 있는 정답에 답을 써넣어야 했다.
5개의 문제는 생각보다 쉬운 문제였다. 첫 번째 문제는 IF와 Input 구문을 사용해서 남자일 때는 숫자 1, 여자일 때는 숫자 2, 오류일 때는 0이라고 출력하라는 문제였다. 마침 혼자 노트에 쓱쓱 적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문제를 10분도 안되어 풀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간단한 수학계산이었다. Input 구문으로 숫자를 넣은 뒤, 곱하기라고 입력을 하면 두 숫자를 곱하는 결과를, 더하기라고 입력하면 더하기가 나오게 하는 문제였다. 이것도 10분도 안되어 다 풀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원을 그리는 것. 이건 너무 쉬워서 금방 풀었다. 가로 640 / 세로 480이라는 숫자를 좌표로 해서 원을 그렸다. 네 번째는 간단한 "학교종"을 플레이하는 것. 솔솔 라라 솔솔 미. 이렇게 비프음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니 금방 풀었던 문제였다. 마지막 문제는 네모 표 안에 글씨를 입력하여 출력을 할 수 있게 하는 문제였으니 그 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었다.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난 50분 정도 시간을 들여 답을 썼고 플로피디스켓에 정답을 저장했다. 그리고 답지에 정답을 썼다. 이후 남은 1시간 동안은 컴퓨터로 이것저것 실행을 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났다. 화난 얼굴로 선생님은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40대 여선생님은 초등학생 외동딸을 케어하느라 더욱 억세게 되셨는지, 나를 보자마자 손바닥으로 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누가 커닝하래?"
학교 시험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도무지 무엇을 커닝했다는 것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후 말을 계속 이었다.
"컴퓨터도 없는 새끼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 풀었어?"
선생님은 컴퓨터 없고, 가난했던 나를 바라보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욕설을 다 퍼부으며 내 뺨을 때렸다. 이실직고하라 했지만, 사실 쉬운 문제였으니 고민하지 않고 풀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길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본인의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날 거짓말쟁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으며, 개새끼라는 칭호를 부여했고, 씨발새끼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열심히 뺨을 때려가며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반장도 4개밖에 못 풀고, 부반장도 3개밖에 못 풀었는데, 너 때문에 반장이 1등을 하지 못했다며 도둑놈 새끼라는 칭호까지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 나에게 이야기했다.
"여기다 반장한테 잘못했다고 써. 그리고 네가 커닝했다고 써."
난 쓸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난 그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뺨을 때리며 그 내용을 쓰라고 했다. 난 더 무지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오늘 방과 후에 다시 나 혼자만 테스트를 하겠다고 했다. 나 혼자만 다른 문제를 내서 테스트를 할 건데 그 문제를 한 문제라도 못 풀면 각오하라고 했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따끔거렸지만 내 목에는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질 않았다. 단지 눈물과 콧물만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내 귀를 잡아 당기며 컴퓨터실로 인도했다. 마침 이번주는 기술 시간 외에도 컴퓨터를 쓸 수 있으니 조금 행복하단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지난번 테스트에 냈던 문제를 다시 주며 고대로 풀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반 선생님도 함께 나를 구경했다. 처음에는 50분 만에 풀었지만, 이미 한 번 해보았기 때문에 30분도 안되어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칠판에 문제 두 개를 더 적었다. 풀어보라고 했다. 몇 분 고민 하긴 헀지만, 대략 30분 만에 다 풀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칭찬의 이야기보다는 뺨을 한 대 더 때리며 이야길 했다.
"니 까짓게 1등 해서 뭐 하려고? 반장이 받을 상을 네가 받으니까 시원하냐?"
그리고 교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난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내가 해야 할 화장실 청소와 교실 청소를 하며 교실로 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선생님은 오늘 컴퓨터 경진대회 상장을 수여한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5문제를 다 풀었으니 1등일 거라 기대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1등은 반장의 몫이었다. 외고를 진학하려면 상장도 필요하다고 했다. 2등은 부반장이 받아갔다. 그리고 선생님은 상장을 휙 던지며 네가 받을 상장이라 했다. 그 상장에는 "입선"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1등도 아니고 꼴찌도 아닌 "입선" 그것이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고를 갈 성적도 아니어 쏙, 반장도 아니었으니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딱 그뿐이었다.
물론, 반장이나 부반장은 단지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의 총애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승의 날 때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어머니가 찾아뵈었으며, 학교에 필요한 어항이나 학급 문고를 거리낌 없이 채워주셨고, 커튼 빨래나 교탁보도 늘 새 걸로 바꿔주었다. 가끔 선생님이 좋아하는 총각김치나 고기와 같은 것들을 퇴근길에 챙겨주기도 했다. 어쩔 땐 저녁에 엄마들과 선생님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도 있었다. 반장과 부반장은 단지 공부만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만큼 헌신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보상 중에는 외고를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전폭적인 지지아래 외고를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난 선생님이 부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 넌 컴퓨터 좀 하는 거 같은데 상고 가는 게 어때?"
마침 그 당시 상고는 컴퓨터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컴퓨터를 좋아하면 컴퓨터 하는 학교에나 가서 일찍 취직이나 하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난 싫다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네까짓 게 인문계 나와서 대학을 가지도 못할 거면 아무것도 못하고 놈팡이처럼 지낼 거란 조언을 해주었지만, 난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반항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지원 원서를 구겨 버리며, 난 도장을 찍어줄 수 없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마음이 약했는지 몇 번을 조르고 나니 도장을 찍어주며 미친놈이니 개새끼니 하는 칭호를 더 주며 "내가 지 생각해서 상고 가라 했는데,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라." 라며 또 한 번의 인생의 조언을 해 주었다. 그 이후 선생님은 나의 졸업 앨범에 또 한 번의 조언을 적어주었다.
"고집이나 피우지 말고, 지금이라도 1년 유급하고 상고나 가라. - 담임이."
하지만 난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