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쉽지 않을 겁니다. 커다란 DSLR 카메라가 될 수 있고, 작은 똑딱이 카메라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선생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무언가 좀 거추장스럽단 생각 때문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큰맘 먹고 산 카메라가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할까 걱정 때문에 쉽게 들고 다니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 보세요. 새 제품을 사셨다면 A/S를 받는다 생각하시고, 중고로 사셨다면 까짓 거 신나게 들고 다녔다 생각하시고 사진을 찍어 보면 됩니다. 사실 카메라는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흠집이 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전 영광의 훈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많은 것들을 나의 눈에서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 그리고 뷰파인더에서 사진으로 더 자주 이어졌다는 뜻이 되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면 어떨까요? 담배 한 갑 사러 갈 때, 혹은 라면 한 봉지 사러 갈 때 돌아다니던 산책을 조금 더 멀리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아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가보는 겁니다.
"하지만... 전 운전을 잘 못해요. 사실 전 남편에 대한 상처 때문에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어요. 전 남편은 제가 차를 운전하려 할 때마다 '어이구.... 저 년. 차 끌고 가면서 가족들 줄초상 내려고 하네. 얘들아. 오늘 혹시 돌아가신 할머니 보게 되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니 엄마가 운전하는 차 타면 큰 사고 난다.'라고 하는데 그게 한 두 번이어야 지요. 한번, 두 번, 세 번 그러고 나니 제 애들이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려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부터는 차 시동 거는 것도 무서워졌어요. 그래서 제가 사는 곳을 벗어나 보질 못했어요.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러 다니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전 그럴 용기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아주 조금만 멀리 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목적지는 따로 정하지 말고 여행을 떠나보는 겁니다. 저도 종종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갈 땐 차를 가지고 가지 않는 편이에요. 결국 중요한 건 "장소" 보다는 저의 "느낌"이거든요. 기분 좋을 때 걸어갈 때 기분과 기분이 불편할 때 걸어가는 기분이 분명 다르겠지요. 마찬가지로 저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과 느낌은 충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눈에 보이는 대중교통을 먼저 타고 몇 정거장 정도 간 이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곤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청량리나 종로에서 시작을 하곤 하는데, 종로에서 신촌 방향으로 걸어갈 때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청량리 까지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대로를 향해 걸어갈 때도 있지만, 어쩔 땐 저 자신이 숨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땐 골목을 찾아가면서 걸어갑니다. 그래서 전 이런 여행을 "1달러짜리 여행"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어떻게 걸어갈 것이고,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고민을 하는 겁니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새롭게 바라보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될 겁니다. 어린 시절 판박이 스티커를 동네 담벼락에 긁는 경우 많았지요? 그 판박이 스티커도 유심히 바라보지 않는 다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골목을 걷다 보면, 매번 놓치던 그림이나 낙서, 혹은 스티커나 광고 전단지 등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걸어가는 그 순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지만 주위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다 보면 분명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지요. 저는 종종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할 때면 충무로에서 신설동 혹은 제기동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대략 2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골목을 찾아서 들어가면 그 떼의 기분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집 밖에서 멀어져 보는 겁니다. 분명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바쁘게 다니는 동안 절대 바라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목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런 전단지가 붙어있고, 이런 간판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될 겁니다. 저도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는 잘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카메라"를 들고 가는 순간은 무엇이든 유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앞만 보며 달려가던 저 자신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고 할까요?
제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된 계기는 어쩌면 와이프의 배려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전에도 카메라가 있긴 하였지만 그리 좋은 카메라는 아니었습니다. 캐논의 크롭 센서 카메라였고 시그마 줌 렌즈 하나가 달려 있는 카메라였지요. 아이들과 놀러 갈 때 찍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갈 때 사진을 찍는 정도였지요. 저도 출퇴근할 때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게 일상이었고, 쉬는 날에는 집에 빨리 돌아가서 TV 보는 게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저에게 카메라가 딱 하니 다가오게 된 것이지요.
그 계기는 어찌 보면 정말 힘들었던 순간에 찾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했고 이제 막 과장 직함을 받고, 파트장 직함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이 공허하단 생각이 들었지요. 아마도 회사 생활의 갈림길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앞으로 달려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데 저는 여기서 더 올라갈 목표가 없게 되었을 때부터 좌절감이 느껴지게 되더군요. 아침에 출근을 할 때, 퇴근을 할 때, 혹은 주말에 누워 있을 때조차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과는 다른 고민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올라갈 목표가 없다는 것. 어찌 보면 이미 정해진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더 큰 날개를 펼치고 싶은데 더 이상 펼치지 못하는 심정.
그땐 정말 하루하루가 짜증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미 결정된 미래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고민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마침 와이프와 소주 한 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때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지요. 저보다 더 멀리 날아가는 동기들과 후배들의 모습. 저는 그 이상 날아가지 못하고 이제 멈춰야 하는 현실. 그 현실에 대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펼쳐지자 저는 와이프에게 이렇게 이야길 했어요.
"회사 그만두고, 좋은 카메라 한 대 사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글이나 쓰고 싶어..."
와이프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이전과는 다른 이야길 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싼 카메라를 꼭 사야 하냐고 이야기를 했지만, 제 마음을 이해했던 거 같아요.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겠지만, 카메라를 한 대 들고 걸어 다니는 저는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였겠지요. 그래서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와이프는 카메라 사는 걸 허락했습니다. 그때 산 카메라가 Leica M-E(typ240)이었어요. 최신 카메라보단 가격은 싸지만, 그렇다고 다른 카메라보다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요. 그 가격으로 카메라를 구입하고 50mm 단렌즈 하나를 사고 나니 세상 행복했습니다. 마치 카메라 박스를 끌어안고 잠든 모습은, 어린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 받았을 때의 행복감과 같았지요.
하지만 저는 막상 카메라를 바로 밖으로 들고 나아가진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몇 백만 원짜리 카메라라고 생각을 하니 혹시나 망가지지 않을까? 아니 정확하게는 흠집이 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그래서 늘 가방 속에 꼭꼭 숨겨두고 꺼내지도 못하곤 했어요. 그러다 한번 고민을 했지요. 저 같은 경우는 사실 돈을 좀 썼습니다. 평소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 가방"을 한 개 샀어요. 좀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카메라를 한 대 넣고 마음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하나 사서 출근할 때도 혹은 퇴근할 때도 아니면 동네를 다닐 때도 항상 그 카메라를 들고 다녔습니다. 마치 제 몸과 하나가 된 느낌이었지요.
처음에는 회사 근처 한 바퀴를 돌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니 제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조금 더 멀리 바라보았을 때, 혹은 평소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걸었을 때의 느낌. 그 느낌은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느낌과 함께 섞이게 되니 무언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투박한 사진들이었지만, 하루에 한 장, 두 장 찍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느낌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바로 용기였습니다.
까짓 거 카메라 좀 흠집 나고 떨어지면 어떠냐? 내가 좋아하는 사진 한 장 찍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뜨려 흠집이 나게 된다면 그것도 훈장이라 생각했지요. 마치 종군기자가 거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찍은 사진에 대한 훈장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사진을 가지고 한 장씩 모아두면서 저의 "자산"이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혹시라도 제 날개가 더 펼쳐지기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제 한편에는 그동안 모아둔 사진들이 있으니 그걸로 무언가를 해 보자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순간이 다가오자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되면 항상 발걸음을 띠곤 합니다. 좀 더 멀리 걸어가 보고, 좀 더 일찍 퇴근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보는 거죠.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어요. 하지만... 전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래도 행복한 가족이 있고, 인생의 목표가 있었으니 그런 용기를 갖는 건 쉽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전 잘 모르겠어요... 저를 무시하던 전 남편... 그리고 전 남편이 세뇌를 했는지 아이들도...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뒤죽박죽 섞인 거 같아요..."
선생님. 조금만 더 용기를 가지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존재들이에요. 당연히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렇지요. 왠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생각을 조금만 더 떨쳐버리고 넓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세상은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무언가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길 바라곤 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불안감. 우울함. 그 모든 것들이 아마 특별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겠지만 대부분이 다 그런 거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전 좋아하는 스포츠가 없어요. 골프도 못 치고, 아무것도 못하지요. 그러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전 새로운 목표를 잡곤 합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 보는 거죠.
선생님. 오늘 밤이 늦은 거 같은데, 다음 주에 다시 통화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카메라를 한 번 사 보셨으면 해요. 나를 위해 100만 원이란 돈을 투자해서 밖으로 한 번 나가보면 무언가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이번 주도 항상 행복하시길 바라요.
"네... 선생님... 즐거운 밤 보내세요. 그리고 즐거운 주말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