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어느 날. 난 과감하게 재수 학원을 그만뒀다. 고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벽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너무 답답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난 이미 학원에서 정해진 중하위권 학생이었고, 운이 좋으면 서울의 하위권 4년제 대학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마저 과감하게 포기한다면, 난 삼수생이라는 신분으로 다시 학원을 선택해야 했다. 이미 같은 재수반 친구들 중에는 삼수생도 몇 명 있었고, 일찌감치 삼수를 선택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들에게 삼수는 중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하나의 동아줄이었으며, 생명줄이었다.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학원은 나의 출신 성분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넌 시작이 중하위권이었으니, 그 반에 있는 게 당연해. 네가 최상위권반에 들어가서 어쩌려는 거야? 잠깐 모의고사 성적 잘 나왔다고 그 점수가 계속 유지된다고 장담할 수 있어? 아니, 그 이상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 그냥 네가 그 점수를 받은 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아니 커닝을 했을 수도 있겠지... 넌 그냥 중하위권반에 남아 있으면서 그 반에서 니 분수대로 살아."
내가 다니던 재수학원은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모의고사 점수가 현저하게 올라가거나, 등수가 현저하게 올라가면 학원비 1달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있었지만, 난 그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모의고사 점수가 발표된 뒤 항상 학원 벽면에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붙여두었지만, 내 이름은 어디를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등수와 점수 그리고 이름으로 확인이 가능한 석차였지만, 내 이름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도시락 선생을 찾아 내가 이렇게 점수를 받았는데 왜 내 이름이 없냐고 이야길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평범했다. "실수했나 보네."
난 다시 내 이름을 넣어달라고 했지만, 그 많은 인원이 있는 명단을 어떻게 다시 뽑냐며, 그런 비효율적인 일은 할 수 없다고 단 칼에 잘라 이야기해 버렸다. 그리고 네가 점수를 잘 받으면 너 기분이 좋은 거지, 학원이 좋을 일은 없다고 했다. 단지 동기들이 축하해 주면 될 뿐이라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이미 등록금 감면 대상자 명단에서 빠져있는 걸 알았을 때, 그것도 역시 당연한 듯 이야기했을 뿐이다. "명단에 빠져있으니, 학원 서무직원이 당연히 빠뜨리지 않았겠어?"라는 평범한 대답을 도시락 선생은 했다.
이후 내 점수가 상위권 학생들과 큰 차이 없는 걸 알게 되어 전반을 요청했을 때 도시락 선생은 너무나 당연한 듯 나의 분수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던 것이다. 이제 논리는 너의 점수를 믿지 못하겠으며, 다른 반 선생들과 협의를 한 끝에 나의 분반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그 결론을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선생들이 고민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재수학원의 원장선생마저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민감한 사항이었다고 이야길 했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상위권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특목고 출신들이었고, 그들의 부모들 역시 고등학교때와 동일하게 자녀들을 케어하며 재수학원 생활을 유지했었다. 당연히 그들은 재수생이 아닌 고등학교 4학년 학생이었고, 그들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서울대를 가야 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하고, 고위직 공무원이 되어야 하며, 가문의 이름을 알려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부모와 집안이 만들어준 결말을 향해, 정확히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배우들일뿐이었다. 그 연극 무대에 나라는 존재가 낄 틈은 없었다. 난 특목고 학생도 아니었고, 내 미래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후광을 등에 업고 같이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난 나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1년뿐인 경험이고, 그 경험을 뛰어넘을 필요는 없다. 그냥 고민할 필요 없이 내 방식대로 나아갈 뿐이다. 이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트랙을 아무 의미 없이 뛸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험한 자갈밭이라 하더라도 한번 달려본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해 7월은 내가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었다.
재수학원을 그만둔다 했을 때 가장 크게 놀란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래도 착실하게 공부를 하고 잘 다닐 거라 생각했던 아들이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격려보다는 비난 일색으로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바리 같은 새끼. 니 놈이 그러면 그렇지. 학원 때려치웠으면 주유소 알바라도 해서 니 놈 밥벌이나 해라."
아버지는 어차피 내가 재수하는 것을 가장 반대했으니, 오히려 재수학원을 그만두겠다 한 것에 너무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 어떠한 직장도 선택하지 않고 남은 수능 기간 동안 혼자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했을 때, 밥벌이도 못할 놈이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결단력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그 이야기는 수능을 응시하러 간 날까지 계속되었다.
"니 놈이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물론 나도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모의고사를 응시할 수도 없다. 학원을 그만두며 들고 나온 문제집 몇 권과 참고서가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교과서일 뿐이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옥탑방에 올라가 공부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차피 남은 기간 동안 선택할 다른 대안도 없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너덜너덜해진 문제집을 다시 읽고, 다시 풀며, 참고서를 다시 읽고 다시 푸는 방법 말고는 없었으니 여러 번 읽다 보니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어차피 다 읽어본 내용이니 새로울 것은 없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내 나름대로 룰을 정한 것은 수능 시간과 동일하게 일과를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가 되기 전까지 미리 요약해 둔 내용을 한 번에 읽어둔다. 그리고 각 과목이 시작되는 순간에 맞춰 해당 과목을 공부한다는 방식을 고수했다. 어차피 저녁 늦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게 이동할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 되도록이면 공부는 10시 이전에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4개월 정도 공부를 마무리할 때였다.
11월 초가 다가오자 이제 새로운 것을 다시 찾아볼 여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쌓여있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문제집을 읽고, 아직 버리지 못한 고등학생 시절 교과서를 소설책 읽듯이 읽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까르푸에 방문했던 날이었다.
그곳은 대부분 식품매장이었지만, 한 구석에 음악 CD나 DVD를 파는 곳이 있었다. 가끔은 게임 CD도 팔기도 했는데, 담당 MD가 물건을 납품받으면 채워두곤 하였으니 상시적으로 물건들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있던 물건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었다. 늘 새로운 것들을 구경해 볼 수 있는 공간이라 까르푸에 들르는 날이면 꼭 30분이고 1시간이고 그곳을 구경하곤 했다. 어린 시절 머릿속을 맴돌던 것들을 만지작 거리며, 노트 뒷장에 늘 적던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던 그것들. 때론 우주의 지배자와 힘껏 싸우던 영웅이 되기도 하고, 때론 판타지의 공간에서 큰 칼을 들고 힘껏 싸우던 전사의 모습이 되기도 했던 나의 상상 속의 친구들. 물론, 그 게임을 직접 해 볼 수는 없으니 만지작 거리며 뒤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날은 수능 시험을 2주 정도 앞둔 시간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그 매대를 지나가게 되었고, 게임 CD며 음악 CD를 정신없이 구경할 때였다. 그때 마침 십여 년 전에 잡지에서 보았던 게임을 보게 되었다.
"이스 2 이터널"
빨간 머리 영웅이 마왕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는 가상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었지만, 막상 그 게임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잡지에 올라온 기사를 읽어보고, 이런 내용이 있을 거라 머릿속 상상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그 게임을 해 본 적은 없으나 까르푸 매대에 올라와 있는 걸 보니 그날따라 30분 넘게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물론 집에는 CD를 실행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날만큼은 그걸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39,800원 정도 했던 거 같은데 10% 할인을 해서 판매한다고 하니 선뜻 하나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건 나도 이제 이걸 해 볼 수 있겠단 상상 아닌 상상과 희망이 함께 교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는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온 내가 이걸 사고 싶어 만지작 거리는 걸 보시더니 선뜻 하나 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어떻게 실행할 방법이 없었으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큰 장바구니에 고기며 야채며 라면 등을 사가지고 들고 갔을 때, 한 손에는 게임 박스도 함께 들고 갔으니 마치 수능 2주 앞으로 다가온 수험생 아니 재수생이란 모습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명품 가방을 열어보는 듯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박스에는 매뉴얼 한 권과 게임 CD, 그리고 게임의 OST가 있었다. 게임을 실행할 방법은 없으니 조심스럽게 음악 CD를 꺼내 중학생 시절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사 주셨던 파나소닉 CD플레이어에 조심히 끼워 넣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마치 카라얀의 오케스트라가 협업을 하는 듯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흥얼거리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난 조심스럽게 노트뒷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연필을 조심스럽게 깎아서 그 음악을 따라 다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년 넘게 쓰지 않았던 글. 주인공의 이름과 대략적인 줄거리만 가지고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난 그 순간 대 평원의 괴물들과 힘껏 싸우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공부보다 행복했던 글을 써 내려가며 남은 2주를 보내게 된다.
어머니는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셨을 듯했다. 재수 생활을 이어가던 아들이 어느 순간 학원을 그만두고, 시험이 2주 정도 남았는데 공부가 아니라 공부가 아닌 다른 걸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걱정을 하셨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나마 아버지가 나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더니 "그럼 그렇지..."라고 하며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실 뿐이었다.
이미 정해진 트랙에서 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가고 싶어 난 학원을 그만뒀고, 내 방식대로 공부했다. 그리고 남은 2주의 시간 동안 그 남은 시간마저 내 방식대로 생활했으니 부모님은 당연히 걱정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재수도 힘들게 준비시켜 주었는데, 다시 아들이 삼수를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버지의 머릿속을 맴돌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난 자신이 있었다. 작년보단 더 잘 볼 수 있으리란 마음은 갖고 있었다.
수능 하루 전. 통상적인 절차에 때라 운동장에 수능 응시생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진행하였다. 내가 응시할 시험장의 위치며, 흡연은 어디서 해야 하며 입실은 몇 시까지 해야 한다는 간단한 절차를 1시간 동안 이야기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재수학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혹은 최상위권 반에 있었던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였지만 그 친구들은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내일 긴장하는 자리인데, 이렇게 반갑다고 아는 척하고 그러면 시험에 방해되니까 조용히 시험 치르고 가라."
최상위권 반에 있던 삼수생 형은 조용히 나를 불러 이야기했다. 난 알았다고 했다. 어차피 그 친구들과 같은 트랙을 돌 마음은 없었고, 난 내 방식대로 내가 걸어갈 길이 있으니 그 길을 향해 달려갈 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수능 당일.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 주셨다. 아무래도 아들이 시험을 보느라 긴장할 수 있다고 새벽부터 볶음밥을 만들어주셨고, 추운 날씨에 시험을 치르게 되니 따뜻한 물도 보온병에 싸 주셨다. 내 가방에는 그동안 공부를 했던 문제집이며 참고서도 한 아름 들어가 있었다. 가방과 도시락 그리고 보온병을 들고 가려니 한 짐이었다.
힘겹게 짐을 한 아름 들고 대문밖을 나설 때, 저 멀리서 클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하셨는데, 수능 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이 추운 날 힘겹게 걸어가는 게 걱정이 되었는지 회사차를 끌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차에 타라고 했고, 난 조용히 차에 올랐다. 수험장까지 가는 동안 아무 말 없으셨던 아버지는 수험장 앞에 도착하자 힘겹게 입을 여셨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다. 어차피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 삼수를 해도 되고, 아니면 네가 생각하는 다른 일이 있다면 그걸 해도 상관없다. 대신에 후회하지 않고 공부했다면 그걸로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내려주신 뒤 다시 일터로 떠났다.
그날은 평소보다 많이 추웠다. 수험장에 도착해 난 조용히 문제집을 쭉 훑어보았다. 이미 몇 십 번 읽었던 것들이니 어떤 내용이 나올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연필로 여러 번 밑줄을 그었고, 그 연필로 더 이상 밑줄을 긋지 못하면 형광펜으로 그어갔던 문제집이다. 그걸 다시 바라보며 1년간 공부했던 결과가 오늘 결정된다고 하니 다소 떨리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아니 허무하기도 했다.
시간이 다 되고, 언어영역 듣기 평가가 시작되었다. 첫 문제부터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시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문제집에서 보던 문제와는 다른 문제들 때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문제를 풀어야 하기에 조심스럽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그날 언어영역 문제는 영화 "오발탄"의 한 대본이 꼭지로 나왔던 것 같다.
수리 영역은 첫 문제부터 막혔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풀어갔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그리고 외국어 영역을 거쳐 시험을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아는 문제와 모르는 문제, 그리고 찍을 수 있는 문제들이 있었으니 내가 채워야 할 OMR카드의 마킹 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점심시간에 억지로 구겨 넣은 볶음밥이 소화되고 있는지 살짝 졸리긴 했지만 이제 1 ~ 2시간만 지나면 내 미래는 결정이 될 판이었다.
시험이 끝나기 직전 OMR카드에 마킹한 답안을 미리 수험표에 적어두었다. 일종의 관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능이 끝난 뒤 1 ~ 2시간 후면 정답이 공개가 되니, 홀수형인지? 짝수형인지? 만 잘 기억해 두면 바로 당일 날 나의 운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연히 선택지는 있었다. 다시 한번 1년을 걸어보고 삼수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었다. 아니면 다 포기하고 점수대에 맞는 대학을 고르는 방법도 있었다. 사실 그 두 가지는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트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이지만, 난 그 정해진 트랙에서 뛰고 싶지는 않았다. 대각선으로 뛰어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좀 더 멀리 뛰어볼 수도 있었다. 꼭 트랙을 정해놓고 뛸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군입대라는 선택지였다. 학업도 포기하고, 그냥 군대에 들어가서 멍청하게 2년을 소비한 후, 내 운명이 허락하는 대로 그대로 진행하면 될 뿐이었다. 그 선택의 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를 갈 생각도 없었으니 난 그저 트랙을 벗어날 궁리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패배자로는 살기 싫었다. 그러니 3개의 선택지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선택지였으니, 나를 위한 네 번째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수능을 마치고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까지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30년은 더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셨고, 그저 말없이 나를 바라보실 뿐이었다. 수능이 끝났으니 같이 밥이나 먹자 하시며 선지해장국에 소주 한 잔을 따라주셨다. 그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으시다가 "네가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후회 없이 선택해라. 꼭 대학이 답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나도 말없이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소주 한 병이 알딸딸하게 만들었지만, 조심스럽게 인터넷에 올라온 정답표를 검색했다. 수험표에 조그맣게 쓴 답을 하나씩 대조해 가며 그 해 점수는 330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랬다. 작년보다 30점 정도 오른 성적이다. 목표는 380~90점까지 생각했지만 30점이란 숫자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도 그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담배 한 갑과 소주 한 병을 사서 내가 공부하던 옥탑방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적은 있는 것일까? 다음 날 신문은 작년의 쉬운 수능에서 어려운 수능으로 바뀌게 되어 점수가 대거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평균 50 ~ 60점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며, 만점자는 당연히 없을 거라 했다. 그렇다면 나도 희망은 있을 것이란 생각에 1달이란 시간 동안 논술 준비를 했다. 어차피 글 쓰는 건 내가 행복한 일이었으니 그 기간 동안 준비과정이 너무나 행복했다.
1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모교에 방문에 수능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성적표에는 전 과목 "1등급"이라는 숫자를 확인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우스웠다. 최상위권 친구들이 이 점수를 받기 위해 그렇게 고생했는데, 나도 그 점수를 받았다는 것 자체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한번 SKY대학이라는 진학 목표를 설정해 볼 수 있었다. 성적표를 받은 뒤 진로 상담 교사를 찾아갔다. 그 당시는 대입원서를 작성하려면, 모교 담임선생님이나 진로 상담 교사의 직인이 필요했다. 깐깐하게 생긴 진로 상담 교사는 자신이 서울대를 나온 자부심과 1년에 서울대를 몇 명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난 진로 상담 교사에게 내 뜻을 전했다.
"선생님. 전 가군은 연세대나 고려대, 나군은 서울대를 쓰려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내가 재학생이라 생각했는지, 당구대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이야기했다.
"네가 뭔데? 니 성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본인이 갈 수 있는 학교를 골라주겠다고 하며 리스트를 뽑아주었으나 전부 지방 사립대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로 상담 교사는 내가 어떤 학교를 쓰더라도 직인을 찍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소리에 난 화가 나서 의자를 발로 차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제가 커닝을 하던, 실력으로 하던 어찌 되었건 1등급을 받지 않았습니까? 근데 왜 전 그 학교를 갈 수 없는 겁니까?"
선생은 노기를 참지 못하며 이야기했다.
"야이 개새끼야! 너 같이 굴러 먹다 온 놈이 그 학교를 가게 되면, 그 학교에 평생 목숨을 건 애들은 뭐가 되냐? 내가 그 학교 보내기 위해 상담해 줬던 걔네들은 뭐가 되는데? 넌 어차피 대학만 가면 되는 거 아냐? 너 같은 새끼가 어차피 등록금도 못 낼 거면 그냥 적당한 데 가서 장학금이나 받고 다녀. 어차피 내가 싸인 안 해주면 넌 원서 넣지도 못한다."
난 그날 처음으로 선생에게 화를 냈다. 아니...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부르기는 싫었으나, 그래도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 나보다 좀 더 오래 살고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잠깐 담배나 한 대 피는 게 어떨까?"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 수위실 뒤편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이야길 했다.
"정군. 너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만, 지금 진로 상담 선생한테 아무리 때 써봐야 원하는 학교 못 갈 거야. 어차피 너 담임 선생님은 전근을 가셨으니, 내가 서명을 해 주는 게 어떨까 해. 개인적으론 정군은 외대 영어과에 가서 장학금 받고 다녔으면 좋겠어. 어차피 집에서 등록금 부담도 있을 거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선생님은 담배 한 개비를 다시 꺼내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정군이... 처음 등록금은 부모님께 부탁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 이 학교는 조기졸업 제도도 있어서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굳이 SKY가 아니더라도 미래를 생각해선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조심히 성균관대학교라는 학교를 설명해 주셨다. 자율학부이니 학교를 다니며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고, 충분히 나의 집념만 있으면 학기 중 장학금은 문제없을 거라 했다. 가군 한 곳만 그 학교를 쓰고 나머지는 원하는 학교를 쓰리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죠?"
선생님은 웃으며, "나중에 성공하면 닭발에 소주 한잔만 사줘. 나도 제자한테 소주나 얻어먹게. 그때 되면 난 영감님 되겠지. 대신에 나 살아있을 적에 연락 줘야 해."라고 이야기했다.
선생님 덕분에 난 3곳의 학교를 응시할 수 있었고, 3 고았다 합격을 했다. 합격증을 들고 다시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반에 나를 불러 주고 이야기했다.
"얘들아. 종례 시간에 미안하다. 웬 거지 같은 놈이 왔지? 너네 1년 선배다. 학교 다닐 땐 꼴통 같은 놈이었는데, 이 놈이 1년 동안 뭐 빠지게 공부했더니 성균관대에 합격했단다. 니들도 딱 1년이다. 1년 동안 멋지게 살아봐라."
그리고 난 선생님과 소주에 닭발을 먹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 전 꼭 작가가 될 겁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이 새끼. 여전히 꼴통이구만. 학교 다닐 땐 맨날 처 자더니만... 작가 되면 누가 먹여 살릴 건데? 일단 장교가 돼라. 그리고 회사 취업을 하고,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그때 생각해라. 돈 좀 벌고 나서 작가 돼도 늦지 않는다."
그날 밤 선생님과 소주 한잔을 마신 뒤, 아버지와 나는 밤새도록 소주를 마셨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미안하다..."라는 말씀만 하셨다. 하지만 난 이미 그 트랙을 벗어났으니 상관없었다. 이제 앞으로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