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가지 케이스를 더 설명하고자 한다.
Case 1
모 장교는 군 생활 이후 "단 한 번도" 휘발유차를 사 본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군인의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디젤차를 타고, SUV를 타고 다니는 것이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좀 더 먼 상황이었다. 실제 디젤차를 탄 이유는 군부대에 남아도는 디젤차량용 엔진오일이나 그런 물품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암묵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물론 이 Case는 소수의 일이다.
Case 2
한 부사관은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차량을 구입했다. 물론, 디젤차량은 항시 움직이는 차량이기 때문에 경유에 대한 수불 관리는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 차량의 경우는 치장 장비나 일부 차량만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휘발유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 그걸 알았는지, 그 부사관은 밤늦은 시간 치장차량의 기름을 뽑아 사용하곤 했다.
위 두 가지 case는 정말 극단적인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 두 가지 case는 나중에 꼬리가 밟히게 되었고 징계를 받았으며, 불명예 전역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 군대에서 돌아가는 모든 물건들은 철저하게 관리가 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철저하게 관리가 안 되기도 한다. 아무리 사격 훈련을 철저하게 하며 - 탄피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하더라도 분명 탄피 분실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그 탄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사격장을 찾아 헤매겠지만, 그때 살짝 웃으며 핸드폰으로 한 통화면 해결된다. 탄피는 분명 철저하게 관리가 된다. 하지만, 그 탄피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몇 개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몇 개 가지고 있는 탄피를 활용하면 분실된 탄피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
경유나 휘발유는 더 복잡한 논리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측을 하여 측정을 한다 하더라도, 기름의 특성상 자연 증발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군 차량은 생각보다 철저하게 관리가 된다. 그러니 매일 아침 시동 점검이란 명목으로 약 5분 정도 공회전을 한다. 그때 사라지는 양이 얼마큼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차량을 운전할 때 어느 정도가 사용이 되고, 얼마큼이 사용이 되는지도 측정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류계를 확인하여 그 수량을 "추정"할 뿐이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간부 독신자 숙소가 존재했지만, 단 한 번도 보일러를 땐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항상 추울 수밖에 없었고, 보일러가 어차피 틀어지지 않으니 전기장판을 사서 버티곤 했다. 하지만 간부 독신자 숙소 사용료는 분명 납부를 했다. 월 몇 만 원씩 납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찌 되었건 일주일 중 4일은 당직으로 퇴근을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며칠은 사용하긴 했어도 보일러를 켜 본 적은 없다. 그나마 사무실의 온풍기로 버티며 생활했을 뿐이다. 겨우 난방유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 때문에 불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이 보다 더 황당한 일들은 더 많이 있었다. 난 그나마 장교였기 때문에 그 순간이 적었을 뿐이다.
한 사병은 군 입대 직전, 부모님이 걱정하는 마음에 돈 몇만 원을 쥐어주었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굶지는 않을지 걱정 때문에 또 돈 몇만 원을 쥐어준다. 그리고 교통카드도 주고 상품권도 몇 장 준다. 혹시라도 휴가를 갔을 때 전우들하고 밥 한 끼라도 편하게 먹으라는 부모님의 배려였다. 처음 훈련소에 있을 땐 그 돈은 그대로 있었다. 당연하지만, 지갑이나 그런 물품들은 잘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으며, "훈련소"에서는 전혀 현금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돈은 그대로 보관이 되었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는 순간, 그 부대의 부소대장이었단 간부가 그 사병의 소지품들을 점검했다. 아무래도 군대의 암묵적 룰이 있었으니, 샤워젤이나 샴푸와 같은 물품들은 당연히 압수가 되었다.(문제는 압수가 된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보는 순간 현금이 20만 원 정도 있었고, 교통카드가 있었고 상품권이 있었다.
그 간부는 그 금액을 보더니, 군대에서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분명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 그 돈을 선임들이 강탈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아무리 군대의 문화가 "선진화"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군대의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이유라 했다. 그러며 친한 형과 같은 얼굴로 그 돈과 교통카드, 상품권을 자기가 보관해 주겠다 이야기한다. 휴가 때 혹은 전역할 때 꼭 챙겨주겠다고 이야기한다. 흔쾌히 돈을 준다. 분명 간부가 잘 보관해 줄 거라 했다. 그럼 그 돈은 언제 돌려받았을까? 휴가 때였을까? 아니면 전역할 때였을까?
사실 그 사병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부대에 배치받았던 신병들은 자연스럽게 그 간부와 면담을 받아야 했고, 그 간부에게 돈을 맡겼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그 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일부는 군 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못 받은 돈을 달라고 하지 못하기도 했다. 일부는 사람을 믿어서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도 그 돈은 그 간부가 받아간 것은 맞다. 그리고 별도 통장을 개설해 주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개인 생활비로 사용을 했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몇 달만 버티면 그 사병도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가게 되고 "그 돈"에 대한 집착이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를 때 돈을 받아갔단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돈을 간부에게 전달할 때 "단 한 번도" 보관증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돈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간부는 사병들을 바라볼 때마다,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앞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군 생활의 처음은 임관을 한 뒤 "돈"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은 어느 때보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마침 중대장은 신임 소대장을 부르며 이야길 했다.
"예전 우리 부대 전 작전장교님이 이 부대에 방문하실 예정이다. 너희들이 이제 막 신임 소대장 생활을 하고, 아직 사회생활이 부족하겠지만, 그리고 군 생활에 대한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작전장교님께서 친히 너희 BOQ로 방문할 예정이니 궁금한 사항 있으면 잘 이야기하고, 그 선배가 하라는 대로 해라."
저녁 8시쯤 되었을까? 그날은 눈이 내려 쉽게 걸어가기도 힘든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이라 다음날 근무 준비도 해야 하고 정신없을 시간이었는데, 8시가 되어 악센트 한대가 부대 안으로 들어왔다. 단정하게 이발을 했지만, "군인"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모습으로 머리를 자르고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40대 후반의 남성이 BOQ로 들어왔다.
"아이코... 여긴 아직도 이러네. 그렇게 내가 공사해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군 생활 힘들죠?"
그분은 사관학교를 임관한 후, 주욱 군 생활을 20여 년 정도 하였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내가 배치받은 부대의 작전장교로 근무를 한 뒤 직업보도교육 상태라고 이야길 했다. 군 생활을 주욱 하고 싶긴 하였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 더 많은 것들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쉽게 전역을 해야 했다고 했다. 아직 군 복무 기간이 1년 남아 있으나, 지금은 이것저것 교육을 받는다고 이야길 하며 첫 이야길 시작했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있었던 시장 피자 한 판을 들고 보여준다. 아마 다 식은 피자였던 것 같은데, 그 당시 한 판에 8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피자를 나눠 먹으며,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 -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 결혼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신임 소대장의 손을 꼭 잡는다.
"사회생활이 처음이고, 월급도 처음인데, 그래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면서 구구절절한 이야길 한다. 부모님이 아프셨는데, 큰 목돈을 구하지 못해 고생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들. 그 속에, 미래를 위한 준비는 꼭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선배는 신임 소대장들에게 보험을 계약하기 위해 왔었고, 그 당시 "효과"조차 검증되지 않았던 변액 유니버셜을 가입시키려 했다. 월 50만 원 납부. 한 달 90만 원 남짓 월급이지만 그 선배는 월 50만 원씩 20년간 납부를 하면 분명 무언가 미래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는 이야기 혹은 "다음에 해 보겠습니다."라는 이야기로 대충 얼버무리곤 했다. 그 선배는 실망한 듯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다음 날 중대장은 우리를 부르고 열심히 깨기 시작한다. 왜 선배가 부탁을 했는데 그것 하나 가입하지 못하냐, 오늘 중으로 전부 다 가입하란 이야길 한다. 돈이 없단 이야길 하니 한참 뒤 대대장이 찾아와서 "니들은 저축도 안 하고 뭐 하는 거냐?"라는 말로 우리를 괴롭혔다. 결국은 신임 소대장 4명은 어쩔 수 없이 월 50만 원짜리 변액 유니버셜을 가입한다. 문제는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나, 그 선배는 "응. 너희들 바쁠 텐데, 내가 알아서 적을게. 너네 인적사항은 중대장한테 물어볼게."라는 이야길 하며 그 부분을 확인한다.
약 3년의 복무기간 동안 그 선배를 통해 가입한 보엄으로 2천만 원 가까운 돈을 납입했다. 그리고 일부는 전역 직전에 - 일부는 전역 직후 - 일부는 그래도 10년 이상 버티곤 하였으나, 결론은 3 부류 다 돈을 환급받은 금액은 다 비슷했다. 난 전역 직전에 난리를 치고 해지를 했을 때, 부대 헌병대장까지 전화를 와서 혼났다.(정확하겐 협박이었다.) 일부는 전역 직후 뒤도 안 돌아보고 해지했지만, 다들 5백만 원 남짓 돈을 받았다. 당연하지만, 관리 구조는 보험 모집인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었고, 투자 상품의 변경이 있을 때마다 그 선배가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물론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 나쁜 모집인 때문에 크게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보험을 모집한 선배는 "현역 군인"신분이었고, 중대장이나 대대장 혹은 헌병대장의 회유와 압박으로 대부분의 신임 장교들이 가입을 하는 case가 많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첫 부대를 배치받은 직후뿐만 아니라 훈련소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외박 후 부대로 복귀하는 시점에 터미널 인근에는 보험사 직원들이 항상 차를 대기하며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다."는 명목으로 편하게 차를 타라고 하며,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 주며 자연스럽게 보험을 가입시키곤 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합법적인 계약"에 의해, 당사자가 전부 다 책임지겠다는 항목에 대해 서명을 유도하며 진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임 소위 한 명에 대한 투입 비용은 충분히 많았다. 하지만, 그 신입 소위에 대한 돈에 대한 효과도 충분히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임 소위에 대한 돈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었다. 신임 소위의 자대 배치 순간에 회식자리가 있었고, 열심히 대대장이며 중대장이며 술을 따라주지만, 그 술 값의 대부분은 신임 소위가 내야 했다. 심지어 도우미를 부르고 싶지 않았음에도 임석상관의 니즈에 따라 그 돈을 내야 하는 건 신임 소위의 몫이었다. 나와 같은 단기 장교들의 역할이었다. 약 3년 동안 밥 먹여주고, 옷도 입혀주고, 월급도 주는데 당연히 단기 장교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고 이야길 하곤 했다. 단기 부사관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내가 군 복무를 할 무렵에 단기 하사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은 선배 하사들의 억압 와 폭언을 견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독신자 숙소에서 선배 하사의 게임 레벨업과 아이템을 찾기 위한 소모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분명 장교가 되면 "리더십"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잃는 것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