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바람 Jul 17. 2024

잠시 쉬어가기) 사진이 이야기 하는 것들

2011년 3월 처음으로 내가 모은 돈으로 산 카메라를 꼭 껴안고 잔 기억이 난다.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어떠한 카메라가 좋은지? 카메라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 여기 저기를 뒤져가며 Leica X1이라는 카메라를 알게 되었고, 네비게이션을 켜 가며 충무로 반도카메라를 방문해서 구입한 기억이 난다.

Raw data가 무엇인지? JPG와 차이가 무엇인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그나마 요즘은 Adobe Lightroom으로 사진의 평형이나 색감을 조금씩 조정하는 수준으로 나 만의 느낌을 만들어보곤 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벌써 5tb가 넘어섰다.

처음 샀던 Leica X1 그리고 결혼 생활과 함께 첫째 아이가 태어난 그 날,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난 그 날을 기록했단 Canon EOS 60D와 EOS 200D. 심지어 EOS 60D는 셔터 박스를 두 번이나 망가뜨려서 부득이하게 200D로 바꾸었다. 물론 이 글은 내가 어떤 카메라를 샀고, 어떤 카메라르 가지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자랑하려는 글은 아니다. 항상 가족들과 겪었던 사소한 행복의 순간에도 나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는 남들보다 군 입대를 늦게 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입대를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보통 남자라면 20 ~ 21살 사이에 입대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26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입대를 했다. 그리고, 이왕 입대를 하는거 재밌는 군 생활을 해보자는 생각에 해병대 학사장교, 즉 간부후보생 과정에 지원을 하였고 약 3년 6개월의 기간 동안 군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전역을 하니 이제 막 30살. 친구들은 이미 회사에 입사를 하여 대리 직급을 막 얻던 시기였는데 난 취업준비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아버지는 30년간 다니셨던 일을 은퇴하셨다. 은퇴하신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대학 시절 쓰던 카메라를 선물로 드렸다.


“아버지.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위 사진도 찍으시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해요.”


하지만 아버지는 사진을 찍지 못하셨다. 처음에는 은퇴한 뒤, 일정한 수입이 없었으나 여행을 다니며 지출하게 될 비용도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남인 내가 이제 막 군대를 전역해 취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그 부분도 많이 부담이 되셨는지도 모른다. 그런 부담감 속에 아버지는 점점 마음이 지치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들보다 빨리 경도 인지장애가 오셨고, 그동안 가족들의 보살피셧던 분이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나도 어찌 보면 그 순간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접고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결정한 결과 입사를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올림푸스 자동 필름 카메라를 하나 들고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주시곤 했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산 카메라는 조리개값이 너무 작어(3.5 수준이었다.) 사진은 항상 어둡게 나오거나 흔들리게 나오곤 했다. 그 시절 사진관에서는 조금이라도 흔들린 사진을 현상해주지 않았으니, 한 롤을 찍었을 때 나온 결과물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우리 가족의 추억이었고 기억이었다.

그리고 나도 직장인이 되고, 가장이 된 순간부터 어느 때 부터인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인지력이 떨어지시는 아버지를 모시며 여러곳을 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때론 큰 딸 스텔라보다 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붕어빵 하나가 너무 맛있어 몰래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셨으니, 나는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 없이 사진으로 남겼다. 그 사진은 나와 아버지가 기억하는 그 모든 것들의 마지막 증거와도 같았다.


그때는 마침 Canon 60D와 렌즈 하나를 들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경주 여행을 떠날 때 였다. 그 때 찍은 사진은 3,000컷이 넘었다. 아버지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경주 불국사를 돌며 근처 포항으로 가 바닷가를 구경하며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아버지는 솜사탕을 마치 어린 아이 처럼 드셨으며, 물회는 처음 드시는 것 처럼 드셨다. 대게를 어떻게 발라 먹어야 할지 몰라 하나씩 발라드렸을 때 정말 게눈 감추듯 드시던 모습. 국밥이 너무 뜨거워 입이 홀라당 디었다고 화를 내시던 모습. 그 모습을 전부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날이 있은지 며칠 후 아버지는 거짓말 처럼 걷는 것을 잊어버리셨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배변을 보시는 것을 잊어버리셨다. 손녀 스텔라는 이제 막 기저귀를 졸업하였지만, 할아버지는 다시 기저귀를 입학하셔야 했다.


그 날의 사진이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 마지막 사진이었다. 해외 여행이라 할 수 없는 고작 경주라는 곳이었고, 한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하신 분이었지만, 그 날 아버지의 모습을 찍은 3,000여 컷의 사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인지와 움직임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카메라는 그 날의 순간을 전무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Canon 60D는 거짓말 처럼 셔터 박스가 또 한번 망가진다. 아니 더 이상 카메라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을 상실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을 남긴 카메라는 그렇게 거짓말 처럼 떠나갔다.


사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찍었던 그 사진은 분명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을 남기는 도구였을 것 같다.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거동을 하실 수 없고, 기능식을 드시며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다. 그나마 어쩌다 한 번씩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당연히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의 마지막 경주 여행이 그 날의 추억이고 기억이었던 순간이다.


사진은 정말 거짓말 같다. 단지 찰나의 한 순간을 찍는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사진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추억하게 만든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진을 통해 우리는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사진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찍는 사진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진이길 기원하며 셔터를 누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