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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필름으로 기록하다.

by 별빛바람

정신 없는 몇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찾을 즈음 다시 정신 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컨설턴트로서의 숙명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놀지 않고 정신 없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로 축복 아닌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글과 사진을 브런치에 올리며 늘 이야기 했던 주제는 바로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며 놓쳤던 그 모든 것들. 길을 걸으며 바라보던 그 모든 것들 중, 단지 놓치며 잊어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때론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 보았다.

과거와는 다르게 우리는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을 너무나 가깝께 느낄 수 있었다. 불과 십 몇년전만 하더라도, 일반 휴대폰에 담겨 있는 카메라의 화소수는 둘째로 하더라도 - 카메라가 달려있는 휴대폰 조차 가격이 감당 못할 수준이었다. 그나마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니콘 쿨픽스와 같은 모델)가 30만원대에 구입을 할 수 있었으니 약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하여 사진을 찍곤 했다.

물론, 그 당시의 감성은 현재와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요즘과 같이 선명하고 쩅한 느낌의 사진보다는 약간은 뿌옇게 느껴지는 사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걸까? 그런 기억 때문인지 카메라 자체의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적인 설정 때문에 느꼈던 그 감성이 요즘은 디지털 풍화작용과 함께 하나의 레트로 감성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당시에 찍었던 디지털 사진의 감성은 언제나 같은 느낌. 무언가 뿌연 느낌이면서 왠지 옛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 카메라의 감성은 불과 십 몇년전의 감성이다. 그 감성이 레트로의 감성으로 다가온다는 것 자체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 동안 길을 걸으며 항상 가방속에 카메라를 넣어두고 다녔다. 가뜩이나 노트북 두 대, 충전 케이블, 마우스와 키보드로 상당히 무거운 가방이었지만, 거기에 1kg이 넘는 카메라까지 넣어두었으니 한 여름에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지만, 언젠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늘 들고 다녔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의 얼굴이 안나오는 방향으로 -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그 감성을 사진으로 남기길 바라며 찍어왔던 사진은 하나의 "거리사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가고 있었으며, 4TB가 넘는 외장 하드를 꽉 채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5TB 외장 하드를 사서 사진들을 채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몇 년 안되 다시 한번 외장 하드가 꽉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찍어온 주제는 특별한 거리가 아니었다. 그저 길을 걸으며 바라보았던 간판들, 네온사인, 혹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 그것도 아니면 벽에 낙서가 되어있는 그 모습 마저도 하나의 소재가 되었다. 당연히 그 사진들은 늘 같은 거리를 걷는 나의 일상과 오버랩이 되니 같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떄론 디지털로 - 때론 아날로그 필름으로 기록이 되어 남겨지게 되었다.

물론 사진을 찍을 때 디지털 만큼 편한 소재가 없는게 사실이다. 디지털이 만들어낸 편리함과 신속함. 그리고 사진 파일안에 저장되어 있는 다양한 메타데이터의 정보로 편집도 너무나 손 쉽게 할 수 있으니 그 장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어느 순간부터 아날로그 필름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단지 불편함이 감성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빛의 순간적인 작업에 의해 만들어낸 결과물이 무시하기 힘들정도로 우연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그 거리를 걷는 순간 마음에 들었던 그 감성도 우연의 결과물이었으니 - 사진의 결과물 역시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의 감성이 담아낸다면 분명 더욱 어울릴꺼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가방안에 카메라가 한 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카메라의 셔터를 언제 누를까? 라는 고민을 하며 하루를 걷는다. 때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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