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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전후 “리얼리즘”을 통한 현실의 표현

유현목 감독의 1960년대 작품 "오발탄"을 중심으로

by 별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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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은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역사는 당연히 진보한다는 믿음은 파멸의 길로 이끌었으며, 전쟁의 결과는 끝 없는 폐허 뿐이었다. 이에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Italian Neorealism) 작가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에서 세트가 아닌 실제 거리와 비전문 배우를 활용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제작된 “자전거 도둑”과 “무방비 도시”와 같은 사실주의적 접근은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누벨바그(French Nouvelle Vague)와 같이 스튜디오 촬영에서 벗어나 핸드헬드 카메라와 즉흥적인 연출을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감성과 일상을 담아내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한반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의 상흔이 가신 지 얼마 안된 시점에 한반도에서는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상처와 재건의 과정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였다. 전쟁 직후 한국 영화계는 폐허 속에서도 전쟁의 상흔과 급격한 사회 변화라는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시 시작하였는데, 주로 도시화와 근대적 욕망의 표출을 주된 주제로 삼았다.

물론, 시대의 분위기 상 1960 ~ 70년대에 들어서며 계몽 영화 위주의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리얼리즘 작품을 통해 전쟁의 상흔과 그 극복 과정을 어떻게 어떻게 다루었는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1961)”은 전쟁 직후의 상처를 사실적으로 집중함으로서 충분히 의미있게 다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 글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중심으로 전후 “리얼리즘”을 활용한 현실의 표현을 중심으로 글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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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현목 감독에 대하여

유현목 감독(1925.7.2. ~ 2009.6.28.)은 김기영, 신상옥 감독과 더불어 1950 ~ 6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거장이다. 특히 그는 전쟁 후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전쟁의 상흔, 분단의 비극, 근대화의 그늘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특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뛰어넘어, 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 문제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리얼리즘”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현목 감독은 1950 ~ 60년대 작품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사회의 부조리와 절망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그 대표작이 “오발탄”(1961년), ”김약국의 딸들“(1963년), ”순교자“(1965년), ”카인의 후예“(1968년)”이 대표적이다. 특히 “오발탄”은 전쟁 직후 전쟁의 상흔과 함께 인물 내면의 고뇌를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표현하였으며,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 토지 개혁을 배경으로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는 지를 묘사하였다.

유현목의 작품은 단순히 현실을 배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문학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과 인간 실존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는데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 1950 ~ 60년대 작품은 문학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표현을 하였으며, 한국 사회의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였다.


2. 영화 오발탄에 대하여

유현목 감독의 리얼리즘 대표작 중 한 편인 “오발탄”은 전후 전쟁의 상흔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 중 한 편이다. 특히, 본 작품은 소설가 이범선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한국 전쟁 이후 1960년대 초반 서울의 절망적인 현실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담아낸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으로, 한국 리얼리즘의 정점이자 한국 영화 역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공 철호는 가난한 계리사이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지옥과 같다. 그의 집에는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채 “가자!”라고만 외치는 어머니가 누워있으며, 상이군인인 남동생 영호, 미군을 상대로 양공주가 된 명숙과 함께 만삭이나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이러한 가난 뿐만 아니라, 원인 모를 치통 또한 그를 괴롭히는 것들 중 하나다. 이 모든 것들이 주인공 철호를 중심으로 절망적인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은 흑백 필름을 통해 전후 한국을 미화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의 비극을 뛰어넘어,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 속에서 파멸해가는 개인의 고뇌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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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쟁 상흔과 트라우마에 대한 표현

영화 속 정신을 놓은 어머니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가자”를 외친다. 이는 단순히 정신 나간 노인의 잠꼬대가 아닌,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은 실향민의 모습임과 동시에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후세대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상징하였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한국전쟁이 남긴 물리적 폐허를 넘어, 그 상흔이 한 개인과 가족의 내면을 어떻게 파고들어 일상을 지배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화에서 전쟁의 트라우마는 과거의 기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증상으로 끊임없이 보여주며 현재를 잠식하는 살아있는 실체로 그려진다. 이는 크게 집단적 트라우마의 발현과 개인에게 내재화된 고통의 신체화, 그리고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통해 구체화된다.

집단적 트라우마는 어머니의 절규 "가자!"를 통해 청각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이 외침은 단순히 노인의 정신 착란적 잠꼬대가 아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어버린 실향민 전체의 비원이자,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갈망이 응축된 소리다. 어머니가 갇혀 있는 어두운 방은 전쟁의 기억이 박제된 공간이며,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절규는 끝없이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즉, 어머니의 목소리는 전쟁을 겪은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발현이며, 이성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원초적 형태를 상징한다. 이 소리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전쟁의 상처를 상기시키며, 그들이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증명한다.

그와 함께 개인에게 내재된 고통은 주인공 철호의 ‘치통’을 통해 신체화(Somatization)된다. 철호를 괴롭히는 원인 불명의 치통은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해소되지 못한 채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육체를 잠식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영화적 장치다. 철호는 이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며, 의사 역시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는 그의 고통이 개인의 병리적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시대적 질병임을 암시한다. 결국 그가 사랑니 두 개를 뽑아내는 극단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결말은, 표면적인 증상의 제거만으로는 트라우마의 근원을 치유할 수 없다는 비극적 인식을 드러낸다. 치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의 아픔이 한 개인의 몸을 통해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이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은 전쟁이 야기한 가치관의 붕괴와 사회 해체의 증상 그 자체다.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는 "양심도 소모품"이라며 은행 강도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는 전쟁을 겪으며 기존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세대의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대변한다. 여동생 명숙이 양공주가 된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인 동시에 전쟁 이후 변화된 사회 구조(미군의 주둔)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처럼 철호의 가족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전쟁 트라우마가 낳은 각기 다른 증상들(정신 착란, 신체적 고통, 도덕적 타락)이 한데 모여 갈등하는 축소된 사회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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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치통을 통해 표현된 내면화된 시대의 고통과 실존적 증상

주인공 철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치통은 영화의 핵심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의사조차 원인을 찾지 못하는 이 고통은 가난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부조리와 절망을 개인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곪은 상태를 의미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뽑아내고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보여준다.

영화 “오발탄”에서 주인공 송철호의 ‘치통’은 단순한 육체적 질병을 넘어, 1960년대 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실존적 고통이 내면화되어 발현된 핵심적인 상징이다. 이 통증은 원인을 알 수 없고, 쉽게 치유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개인을 괴롭힌다는 점에서 시대 전체의 병리적 상태가 한 개인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신체화(Somatization) 현상의 완벽한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치통은 사회적 압박이 낳은 실존적 통증이다. 철호는 양심을 지키려는 성실한 가장이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전쟁 트라우마로 "가자!"만 외치는 어머니, 상이군인이 되어 범죄를 꿈꾸는 동생, 양공주가 된 여동생,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 이 모든 가족의 무게는 오롯이 철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는 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묵묵히 모든 책임을 감내한다. 바로 이 억압되고 표현되지 못한 고통과 분노가 ‘치통’이라는 신체적 증상으로 전이된 것이다. 즉, 그의 치통은 곪아 터진 사회가 개인의 신경을 끊임없이 쑤시고 자극하는 것과 같다. 사회가 가하는 구조적 폭력에 신음하는 개인의 내면이 바로 그의 썩은 치아인 셈이다.

치통의 불확실성은 시대의 무력감을 반영한다. 치과 의사는 철호의 아픈 치아를 들여다보고도 명확한 원인을 진단하지 못하고, 일단 진통제로 버텨보라고 말한다. 이는 당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시스템을 상징한다. 의사의 처방처럼, 사회는 임시방편적인 위로나 미봉책을 제시할 뿐, 개인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주지 못한다. 결국 철호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건강한 사랑니 두 개를 모두 뽑아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문제의 근원을 도려내고 싶은 절박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발치 후에도 피는 멎지 않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만으로는 사회 구조가 야기한 근원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적 현실을 암시한다.

치통은 양심의 무게를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양심을 버리라고 유혹하는 동생 영호와 달리, 철호는 끝까지 양심을 지키려 한다. 그의 치통은 바로 이 '양심의 무게'이기도 하다. 비양심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삶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그는 가난을 감수해야 하고, 가족의 비난을 견뎌야 한다. 따라서 그의 치통은 부패한 세상 속에서 올곧게 살아가려는 자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내면의 갈등과 고뇌가 육체로 발현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오발탄”의 치통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상흔, 가난, 책임감, 그리고 붕괴된 가치관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한 인간의 실존적 절망이 응축된 증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의 아픔과 사회의 병폐가 송철호라는 개인의 몸을 숙주 삼아 가장 원초적인 감각인 ‘통증’으로 현현한 것이다. 이로써 영화는 한 시대의 비극을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실존적 문제로 심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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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발탄”의 의미 : 방향을 잃어버린 시대

영화와 소설의 제목인 “오발탄”은 총구에서 발사되었으나 목표 없이 날아가는 ‘잘못 된 총알’을 의미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치아를 뽑고 택시를 타며 이곳 저곳을 방황하는 주인공 철호의 모습을 통해 목표 없이 움직임을 통해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을 해도 사회는 그들에게 어떠한 희망이나 방향도 제시해주지 못하고, 결국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절망 속을 해매게 만들고 있음을 표현하였다.

오발탄의 의미는 목표를 잃고 허공을 떠도는 “잘못 쏜 총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삶의 방향성과 목적을 상실한 채 부유하던 당대 민중 전체의 실존적 상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핵심 상징이다. 이 ‘오발탄’의 이미지는 주인공 송철호 개인의 삶, 그의 가족, 그리고 시대 전체의 모습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구체화된다.

주인공 철호는 시대에 의해 잘못 발사된 ‘오발탄’ 그 자체다. 그는 양심을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전후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그의 양심과 성실함은 생존을 위한 아무런 동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그를 더욱 가난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한다. 그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가정은 파괴되고, 양심을 지키려 하지만 사회는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택시에 올라탄 그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삶의 좌표를 완전히 상실한 ‘오발탄’의 비극적 초상을 완성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라는 총구에 의해 발사되었지만,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고통 속을 헤매는 존재인 것이다.

철호의 가족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표류하는 ‘오발탄’들이다. 전쟁의 충격으로 현실 감각을 잃고 "가자!"는 외침 속에 과거의 기억만을 맴도는 어머니, 양심을 버리고 범죄를 통해 현실을 돌파하려다 파멸하는 동생 영호, 생존을 위해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 이들은 모두 전쟁과 가난이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존재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거나 더 깊은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해체된 가족의 모습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방향을 잃고 상처 입은 채 떠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축소판과 같다.

영화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 1960년대 초 한국 사회 전체가 ‘오발탄’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국가는 국민들에게 명확한 비전이나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다. 전통적 가치관은 붕괴되었고 새로운 질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으며, 모두가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 앞에 내던져졌다. 영화의 마지막, 목적지 없이 서울의 밤거리를 질주하는 택시의 이미지는 이러한 시대적 방황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명장면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은 비단 철호 개인만이 아니다. 그것은 길 잃은 시대 전체의 암울한 자화상이었으며, “오발탄”은 그 시대의 한복판에 던져진 모든 이들의 근원적인 불안과 허무를 고스란히 담아낸 가장 정직한 보고서다.


3. 결론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단순히 전후 한국 사회를 그린 리얼리즘 영화를 넘어, 시대 전체가 앓고 있던 깊은 내상을 해부하고 그 상처를 스크린 위에 새긴 하나의 증언과 같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 폐허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고자 했다면, “오발탄“은 한국전쟁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비극을 겪은 한반도에서 그 상처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잠식하고 파괴하는지를 냉철하게 응시했다. 이 작품은 당대의 현실을 미화하거나 계몽하려 하지 않고, 그저 고통의 본질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상징적 장치를 통해 시대의 비극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첫째, 어머니의 ‘가자!’라는 절규는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청각적 현현이다. 이는 과거에 붙들린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전후 세대의 무의식적 비명을 대변한다. 둘째, 이러한 집단적 상흔은 주인공 철호의 ‘치통’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신체적인 고통으로 내재화된다. 사회 구조의 모순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낳은 이 실존적 통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의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몸을 숙주 삼아 비명을 지르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결국, 해소되지 않는 외부의 압력과 내면의 고통은 개인을 목표 없이 떠도는 ‘오발탄’으로 전락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매는 택시의 이미지는 철호 한 개인의 방황을 넘어,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던 1950 ~ 60년대 한국 사회 전체의 암울한 자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현목 감독은 이처럼 집단적 상흔, 개인의 실존적 고뇌, 그리고 사회 전체의 방향 상실이라는 세 가지 층위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당대 현실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도 아픈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따라서 ”오발탄“은 단순한 문학 작품의 영화화를 뛰어넘어, 서구의 리얼리즘을 한국적 상황 속에서 독창적으로 소화해 낸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실존적 질문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모순과 그 속을 헤매게 만드는 개인의 고통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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