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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셰익스피어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내게 말했다 5화 / 셰익스피어와 영화)

by 별빛바람

지난 편 까지는 셰익스피어의 일대기 / 그리고 셰익스피어 시대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 중 "악평"에 대해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사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만약 원문을 읽고 싶다면, 인터넷 서핑을 조금만 한다면 각주가 없는 원문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번역본도 이미 여러 시리즈가 나왔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36 작품을 다 구해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부분 절판돼서 새 책은 구하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4 ~ 5만 원 정도 투자하면, 상태 좋은 전집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 전집을 구했던 적이 있었는데, 직장을 다니며 불필요하다 생각해서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는데, 4만 원 정도에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직접 읽어본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몇십 년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로미오 + 쥴리엣"정도가 잠깐 인기 있긴 하였지만, 개봉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 호평은 받을지라도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언어"의 문제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무운 시(Blank Verse)" 형식의 시 형식으로 집필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장은 운율에 맞추어 집필이 되었고, 그 운율을 맞추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조어도 탄생을 시켰습니다. 영어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화의 대사를 들어보신다면, 무언가 운율이 있음을 느껴지시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우리말도 번역하면, 그 맛을 살릴 수 없는 건 언어의 문제 / 단어 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 시절 유명했던 전집 번역본 3 가지중 두 개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한자를 사용하였지만, 한 전집은 산문 형식으로 번역을 하는 과오를 저지릅니다.(하지만, 번역 품질은 오히려 산문 형식이 더 뛰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어려운 단어를 쓰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시 한번 어렵게 번영을 하니 우리는 그 작품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자막을 번역하는 번역사들의 품질 문제도 있습니다. 어떠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는 원문 그대로 대사를 적용합니다. 하지만, 번역사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 번역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막을 읽으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문제가 이날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어를 잘 아는 사람이 당연히 번역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특수한 작품에 대해서는 그 작품을 아는 사람이 번역을 해야 관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가장 잘 표현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의 한 장면의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지 않더라도 누구나 아는 장면입니다. 바로 "To be, or not be..."로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로렌스 올리비에는 상당히 고뇌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햄릿"의 한 번역본에서 이 부분은 "죽느냐, 사느냐..."라는 내용이 아니라, "있음이냐 혹은 없음이냐..."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 주장을 하며, 각주에 몇 페이지에 넘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였습니다. 당연히 "be"라는 동사는 있다. 존재한다의 의미이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로는 저 내용이 맞겠지요. 하지만, 이 장면을 패러디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마지막 액션 히어로"의 한 장면에서 "죽느냐, 사느냐. 아니 죽어라..."라며 총을 쏘는 장면으로 패러디하였을 때, 이 작품의 원문을 읽는 사람들은 "있음이냐?"라고 받아들인 것일까요? 혹은 "살아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을까요? 셰익스피어 작품은 이미 정해진 내용이지만, 각 장면에 대해 연출가와 감독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큰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의 연출 방식에 대해서 확인해보고, 그 뒤 셰익스피어 당시의 스타일을,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머릿속의 방식으로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함께 공부해 보면서 셰익스피어와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 한 장면
"마지막 액션 히어로"의 햄릿 패러디 장면

그렇다면 간단한 교양 퀴즈 하나를 내 보겠습니다.


Q : 세계 최초로 영화를 찍은 사람은?

A : 뤼미에르 형제.


Q : 그렇다면 최초 영화의 제목은?

A : 열차의 도착(1896년)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 주소를 참고하세요 : https://youtu.be/-Wh5v-lYSpM)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그렇다면, 좀 더 어려운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한 감독은?


순간 긴장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하며 복잡한 비평과 서지학적 정보를 공부할 때 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화에 대해 공부할 때가 가장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자주 내어 본 연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여러분들과 자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준비를 하다 가장 의미 있는 내용으로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인터넷에서 충분히 보실 수 있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공부를 하기 전,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께 고민하면서 보신다면 셰익스피어를 좀 더 의미 있게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답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 한 사람은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엔지니어였던 "허버트 비어봄 트리(Herbert Beerbohm Tree, 1852.12,17 ~ 1917.7.2)"이 연출한 "존 왕(King John)"입니다. 우선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간략하게 영화를 한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영시간은 당시의 촬영 기술의 한계로 약 1분 정도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 https://youtu.be/HQ3sgMsDTM0)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중 "존 왕(King John)"은 영국의 역사상 가장 무능하며, 평판이 나쁜 왕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연히 "존"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성인 요한을 지칭하기 때문에 영국의 왕 중 수많은 사람이 "존"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존 왕"이후로 영국의 역사에서 왕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존 왕"도 "존 1세" 혹은 "존 2세"가 아닌 그냥 "존 왕"이 되는 것이지요. 존 왕은 그의 형 사자왕 리처드의 무용담과는 다르게 상당히 지질하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존 왕"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는 리들리 스콧의 "로빈후드"가 있겠지요. 러셀 크로우가 출연한 로빈후드는 영국 역사상 유명한 폭군이며 프랑스에게 수많은 땅을 빼앗긴 왕과 싸움을 통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을 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그 이전의 영화인 케빈 코스트너의 "의적 로빈후드"는 판타지 작품답게 사자왕 리처드가 존 왕을 밀어내고 주인공 로빈후드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는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전사 로빈후드
당시 여학생들을 설레게 했던 케빈 코스트너의 꽃미남 로빈후드

물론, 로빈후드는 영국의 의적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민담이자 전설이긴 하지만, 이 전설에 함께 등장하는 "존 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지질하고, 무능한 왕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유명한 사실 중 하나는 노르망디 땅을 다 잃은 왕, 그리고 교황에게 파문을 당해 평민들에게도 신임을 잃은 왕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썼을까요?

원래 존 왕의 아버지인 헨리 2세는 자신의 아들 중 존 왕을 가장 좋아하여 후계자로 밀려하였지만 실패합니다. 형인 리처드가 왕이 되었지만, 존 왕은 왕위에 대한 욕심이 하늘을 찔렀는지, 형을 배신하기도 하지요.(이 내용은 케빈 코스트너의 "의적 로빈후드"에서 자세히 나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왕위에 오르지만 그 왕위 계승권은 정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 지지하는 조카 아서와의 갈등. 교회와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존 왕은 조카인 아서를 암살하며 왕위를 공고히 합니다. 하지만, 이후 셰익스피어는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존 왕이 조카를 암살한 직후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을 표현합니다. 그 뒤 정적과의 대립 속에 독살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되지요.

허버트 비어봄 트리는 "존 왕"의 여러 장면 중 단 한 장면인 마지막 독살을 당한 뒤 사망하는 장면을 1분 정도로 촬영을 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여러 작품 중 셰익스피어의 "존 왕"에 대해 가장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에서도 보셨겠지만, 당시의 촬영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1분 이상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무성 필름이었기 때문에 대사를 녹음하여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단 한 장면. 단 한컷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을 허버트 비어봄 트리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영국의 역사에서 "존 왕"은 가장 무능한 왕이고, 비극의 왕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과식으로 사망을 하였지만, 만약 셰익스피어가 과식으로 사망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정 코미디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 역사는 진정 코미디입니다. 존 왕은 대식가로 유명하였는데, 배탈이 나자 이에 대한 처방으로 익힌 고기와 포도주를 많이 마시도록 처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대식가였던 존 왕은 기쁘게 그 처방을 받아들였지요. 그 뒤 과식으로 사망을 하였다는 것은 영국 역사를 진정 코미디로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셰익스피어는 적어도 영국의 시민으로서 선 왕을 코미디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듯, 과식이 아닌 독살로 사망한 것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합니다. 비극적 삶으로 마무리하는 왕의 모습을 허버트 비어봄 트리는 이 작품의 핵심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볍게 짧은 작품으로 진행하며 워밍업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유튜브의 위 주소를 한번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DVD로도 출시되었고, 저도 본가에 방문을 하면 예전에 구입한 DVD가 창고에 있을 것 같네요. 당연히 최초 작품을 통해 즐겁게 접해보는 것도 시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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