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4화
엄마 손을 잡고 경동시장을 갔던 그 어린 시절. 그곳에는 정육 도매상이 많았다. 아마 식당에 납품하는 고기였을 것 같지만, 냉장고가 아닌 고리에 걸려있는 통돼지를 큰 칼로 썰어서 "관"으로 팔던 그곳은 냉장고 한편에 부속고기들이 있었다. 돼지 허파, 심장, 창자, 소 천엽, 수구레 등등. 수구레는 그 당시에도 꽤 고급 음식이었고, 엄마도 지갑에 돈이 넉넉했을 때 수구레 두 근을 사서 고춧가루를 팍팍 넣고, 양파와 무를 넣어 바싹 졸이도록 볶아 주시곤 했다. 물론, 그 수구레는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다.
우리 식구가 자주 먹던 고기는 오돌뼈였다. 삼겹살을 발라내고, 돼지갈비를 발라내고 남은 뼈에 붙은 고기 찌꺼기들을 모아둔 고기. 당연히 핏물이 고여있기도 하고, 오래돼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오도독 씹히는 오돌뼈 뿐만 아니라, 돼지의 잡뼈도 함께 섞여 있었다. 이 오돌뼈는 그냥 먹으면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냄비에 오돌뼈를 넣고, 소주를 한두 잔 넣어 삼는다. 그리고 그 고기를 꺼내, 고추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팍팍 넣어서 졸아들때까지 볶아낸다. 이 오돌뼈는 우리 가족들의 간식거리도 되었고, 밥반찬도 되었고, 아버지의 술안주도 되었다. 오돌뼈 볶음 한 숟가락을 뜨거운 밥 위에 얹어놓고 착착 비벼먹어도 맛있고, 오돌뼈만 골라서 하나씩 씹어먹으면 마치 별사탕을 씹듯 재밌게 먹었다.
돼지고기 삼겹살 한 근에 3천 원 하던 그 시절. 오돌뼈는 1Kg에 500원도 안 했다. 돼지고기 한 근으론 4 식구 실컷 먹을 수 없으나, 오돌뼈는 그 돈으로 몇 키로를 사서 몇 날 며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 한 번 볶고, 두 번 볶고, 세 번째 볶으면 돼지고기의 기름이 냄비에 배고, 고기는 새까맣게 말라비틀어졌지만, 오돌뼈의 식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엄마가 무슨 야채를 넣으셨던 듯한데, 양파였을까? 아니면 양배추였을까? 아니면 마늘 몇 개를 다져서 넣었을까? 며칠이 지나고 나면 다 뭉개지고 뼈만 남는다. 그래도 그걸 밥에 비벼먹어도 맛있고, 간식으로 먹어도 맛있었다. 문방구에서 팔던 밭두렁이 50원 하던 그 시절. 밭두렁 10번 안 먹으면, 우리 식구는 오돌뼈를 배 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
늦은 야근을 하고, 근처 실내 포장마차로 방문한다. 후배들은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한다. 이곳은 산낙지가 맛있다고 이야길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생물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핀잔을 준다. 비가 와서 뭐든지 상하기 때문에 익힌 걸 먹어야 한다는 후배들. 조개탕을 하나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키니, 무언가 씹히는 걸 먹고 싶다며 고기 종류를 고른다 한다. 닭발은 어때? 돼지불고기는? 아니면 돼지껍질은? 그러자 후배가 선택한 메뉴는 오돌뼈. 새빨갛게 볶아낸 오돌뼈는 무쇠 접시에 올려져 나온다. 우리 식구 실컷 먹던 커다란 프라이팬이 아닌 어린 시절 밥 한 공기 비벼먹던 양 밖에 안 되는 오돌뼈가 무려 1만 5천 원이라 한다. 고기는 몇 점 안 들어가 있는데, 양파와 함께 올려져 있는 모습이 참 부족해 보였다. 오돌뼈 한 점에 소주 한잔. 어린 시절 별사탕처럼 먹던 그 오돌뼈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먹을 게 없어 미안하다 하던 엄마의 모습. 변변찮은 과자 하나 못 사줘서 미안하다 하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다, 소주 한잔에 들이키는 오돌뼈 한 점은 그 시절 나를 보며 미안해하고, 누나를 보며 미안해하던 그 오돌뼈와는 분명 다른 맛이다. 그때처럼 돼지고기 냄새도 나지 않고, 강한 양념을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때보다 싱겁다고 느껴질 그 맛. 후배들은 맛있다고 열심히 먹지만, 어린 시절 숟가락으로 퍼 먹던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매콤하던 그 양념 맛이 아닌, 씁쓸한 소주 한잔이 들어간다는 점.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그땐 심심해서 먹고, 배고파서 먹었다면, 오늘 먹는 오돌뼈는 허전해서 먹는다. 왜 이리 일이 풀리지 않고, 왜 이리 힘든 건지?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저녁 늦게까지 밥도 못 먹고 노트북 전원을 간신히 끈 채 퇴근하는 나의 모습. 그런 나를 쳐다보며, 법인카드 있는 선배와 함께 저녁 한 끼 먹겠다고 쫓아오는 병아리와 같은 후배들. 엄마는 배고픈 나와 누나를 위해 1Kg에 500원짜리 오돌뼈를 볶아 주셨다면, 나는 그 오돌뼈보단 비싸지만 씁쓸한 소주 한잔을 채워 넣으며 함께 이야길 듣는다.
이젠 나도 내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후배들의 불만을 듣는다. 그 후배들의 아쉬움을 듣고, 오돌뼈 한 점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소주 한잔을 마신다. 어떤 이는 꺾어서 마시고, 어떤 이는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우물 거리며 넣는 오돌뼈 한 점. 조개탕 한 수저. 그리고 오이 한 조각. 그것들과 어우러져, 다시 이야기는 진행된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회사의 돌아가는 이야기. 팀장 이야기, 팀 이야기, 옆 팀이야기 등등. 그날 있었던 아쉬움, 불만들이 하늘을 찌른다.
말 한마디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주 한잔 뱃속에 들어간다면,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어린 시절 먹던 오돌뼈 한 점은 과자를 사주지 못했던 엄마가 반찬으로 만들었던 과자 대신 주셨던 그 한 접시였다. 지금도 저녁을 걸러 배고픈 후배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무언가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넣어주는 그런 오돌뼈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일들이 오늘 하루도 펼쳐져 간다. 그 일들이 때론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그래도 우린 잊어버리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노력한다. 소주 한잔 마시며 잠시 고민을 한다. 이 오돌뼈 한 점과 소주 한 점이 내일의 고민을, 그리고 오늘의 고민을 다 잊게 해 달라고.
고민 많은 하루를 잘 견뎌낸, 우리 모두. 오늘도 하루도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