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10화)
대학 시절. 탈 식민주의(Post-colonialism) 수업을 들으며 초기 작품 중 하나였던 수잔 글래스펠의 "사소한 것들(Trifles)"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추리극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남편의 살해 혐의를 추리하면서 마지막에 "퀼트"와 "니트"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극을 마무리하였던 것 같다. 한 30분 정도의 짤막한 극이었을까? 단편이었지만, 마지막 부분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관심과 주목을 끌지 않는 그런 것들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며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을 했던 사항이었다. 내가 찍는 사진의 소재들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주목을 끌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누군가를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단지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한 사진?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눌러주길 바라는 사진? 어쩌면 내 사진은 그러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진이다. 수평 / 수직도 맞추질 못하고, 후보정 작업도 잘하지 않으니 색감도 불편하고, 해상도도 불편하고 살짝 기울어져 있으니, 모든 것들이 다 불편하게만 보일 수 있다.
그래도, 난 내 사진을 사랑한다. 별 의미가 있진 않다. 내가 길을 걷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장면이 분명 나에게는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때론 다른 렌즈로, 때론 다른 필름으로, 또 때론 다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내가 인상 깊었던 그 순간을 다르게 담기 위해 노력해본다. 당연히, 이 사진은 나를 위한 사진이지만, 그래도 내 사진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공감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 공감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내가 왜 이 사진을 사랑하는지, 왜 이 장면을 찍었는지 함께 고민해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작업이 아닐까 한다.
1. 창문 안에 벽
회사에 휴일이 있을 경우,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따로 목적지를 정하진 않지만 주로 거리사진을 찍어보려 한다. 이 날도, 회사의 반강제 연차 때문에 하루의 여유가 생긴 오전이었다. 오후에 첫째 딸 학교 행사에 참석을 해야 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2 ~ 3시간 정도. 멀리 나가긴 쉽지 않은 시간이라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고, 그날의 선택은 종로였다. 종로는 높은 마천루와 오래된 건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리고 재개발이 한창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오래된 건물들의 흔적이 있고, 특히 낙원상가 주위로는 재밌는 분위기들를 많이 경험할 수 있어 느낌 있는 사진들을 찍어 볼 수 있다. 물론, 낙원상가 주위는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며 막걸리 한 잔 마시는 모습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이 부분도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측면에서 사전 동의를 받은 뒤 찍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의 피사체는 주로 인물이 아닌 무생물인 경우가 많다.
이 날은, 오래전 걸었던 옛 피맛골길을 걸어가던 때였다. 당연히 그곳은 작은 골목만 남아 있고, 어지럽게 전선줄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찍을 수 있는 그림은 "원근법"을 처음 배워본 사람 마냥 X자 구도의 거리 사진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운데 소실점을 향해서 쭉 펼 펴지는 거리의 모습. 당연히, 이러 사진은 나 역시 일반적으로 찍는 사진이기 때문에 너무 재미나게 찍었고, 골목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재밌게 바라보곤 했다. 물론, 골목이 메인이다 보니 사진에 스토리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 날 만큼은 주위를 둘러보며 걷곤 하였다. 그리고 어지럽게 얽히고설킨 전깃줄들 사이로 낡은 창문 하나가 보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있었던 나무 창틀에 방범창이 있는 창문이었지만, 아마 이 건물도 몇 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창문 흔적만 남겨 놓은 채 벽으로 막아둔 듯했다. 그래서 창문을 열더라도 보이는 부분은 또 다른 벽이었다. 무언가 상쾌한 공기와 밝은 분위기를 받고 싶었지만, 창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벽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오랜 세입자 생활을 청산하고자 서울 변두리에 있는 구옥 집 한 채를 구입했다. 분명 그 집은 이전에 사전 전세보다 더 저렴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도 재래식이었고, 집이 오래되어 습기와 곰팡이 냄새도 나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집을 사랑했다. 집 앞에 어우러진 장미나무가 너무 아름다웠던 듯하다. 사실 장미나무 하나 때문에 덜컥 계약을 하셨다. 집 안에 어떤 방이 있고, 창문은 어떻고, 남향인지 북향인지 확인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이사를 간 순간. 안방이 많이 어두워 창문을 열었을 때, 눈앞엔 붉은 벽돌만 있었다. 그 당시엔 조망권도 없던 시절. 옆 건물이 창문의 위치도 무시하고 건물을 지었던 탓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집을 확인도 안 하고 사셨다. 그래서 늘 우리 집은 어두웠고, 환기도 안되었다.
저 창문은 그때와는 다른 목적에서 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새롭게 창문을 내면서, 불필요한 창문을 관리하기 어려워 막았을 수 있다. 혹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별도의 인테리어를 위해 벽돌을 쌓았을 수 있다. 목적은 어찌 되었건, 창문으로서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젠가 우리들에게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을 전달해주던 그 창문은, 이제는 사진으로 남아 피사체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을 뿐이다.
2. 반사
비 온 뒤 하늘은 항상 맑다. 꼭 하와이의 하늘의 풍경과 같이 푸른 하늘에 펼쳐진 새하얀 구름은 마치 솜털과 같았다. 그날도, 전날까지 비가 내렸다. 마침 회사 동료들과 술도 많이 마신 터라 집에 일찍 들어가고자 했다. 나이가 드니, 술을 한 잔 하고 나면 그다음 날 숙취가 가시질 않았던 탓도 있었고, 비가 개인 오후에 사진 한 컷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내 백팩에는 카메라가 한 대 들어있었다.
마침 오후쯤이었나? 오랜 친구의 연락이 왔다. 소주 한잔을 하자고 한다. 장소는 우리가 살던 예전 동네가 어떠냐 한다. 별 다른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오랜 친구와의 만남이 간절했었다. 전 날 마셨던 술이 덜 깨 부담스럽긴 했지만, 오늘 만나지 않는다면 다시 몇 년 동안 만나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다.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회기역 주변. 벌써 30여 년 가까이 전에 놀던 지역이었지만, 크게 변한 곳은 없었다. 아니, 늘 지나가던 곳이니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약속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역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군대군대 물이 고여 있었다. 마침 여기에 고인물이 참 넓게 펼쳐져 있어,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셔터를 눌렀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필름을 현상하기 전 까지는 모른다. 우리가 볼 땐 지저분한 물이었지만, 이 고인물에 비친 이미지는 너무나 아름답게 비쳤다. 담배꽁초 몇 개가 떠 있는 그건 물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위를 몇 군데 돌아보고 사진 몇 장을 찍다 친구를 만난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 날이 너무 덥기 때문에 육회에 소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 당연히 그 시절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즐겁게 웃고 떠들던 시기도 있고, 친구들과 싸우고 맞던 때도 있었다. 그땐 참 힘들었지라도,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소주 한잔씩 돌리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길 한다. 분명 우리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그때의 이야기들이 다시 내 머릿속에 비친 반사의 환영을 뿐이다. 실제는 그러지 않았을 수 있지만, 비친 사실이다.
하지만, 친구가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조금씩 달랐던 거 같다. 내가 기억을 잘못한 것인지, 혹은 너무 오래되어 서로의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그 부분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나도 확실하지 않았다. 소주가 몇 병이 되니, 친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미안하다. 사실 이 이야를 너한테 하고 싶었는데, 나 알츠하이머 초기래."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에 내 머리를 때리는 듯했다.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40대 초반인데, 많은 기억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했다.
내가 바라본 고인물의 반사된 풍경은 과연 실제의 모습일까? 아니면 실제가 아닌 몇 차례 각색된 모습일까? 그리고 그 모습을 다시 필름으로 보았을 땐 그것도 실체라 할 수 있을까? 친구도 늘 혼란스러워한다. 내 기억이 진정 옳은 것인지 조차 모른다 한다. 물론, 내 사진도 마찬가지다. 프레임의 틀 안에 내 시각의 기준으로 사진을 남긴 결과이다. 그 사진이 참 아름다웠다. 물론, 내 기억과 함께 각색이 되지만 말이다.
3. 탄 사진
필름 사진은 순전히 빛의 통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 빛의 결과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보정하기도 쉽지 않다. 단지 조금 밝게 혹은 조금 더 어둡게 찍을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방법도 노출의 계념을 잘 이해할 때 이야기다. 내 사진은 진한 흑백의 색감을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한 스탑 낮게 사진을 찍곤 했다.
그리고 필름 사진은 한계와의 싸움이다. 늘 그렇지만 필름은 27장 혹은 36장이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이 얼마나 필름을 잘 끼워 넣느냐에 따라 2 ~ 3장 더 찍을 수 있다. 하지만, 50%의 확률로 꼭 탄 사진 한 장이 나온다. 필름을 넣을 때 빛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하얗게 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탄 사진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날은 이문동 일대 거리를 돌며 담벼락에 놓여있는 한 대의 리어카 사진을 찍었을 때다. 물론, 첫 컷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탔을 거란 가정 아래 사진 찍어야 한다. 1/3이 탔을지? 혹은 1/2이 탔을지 모른다. 그 부분을 감안하고 프레임을 옮기고 사진을 시도한다. 한 롤에 단 한 장만 나올 뿐이다. 만약 일부 놓치게 된다면, 아쉬운 컷을 낭비하는 결과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필름이 장전되며 탄 부분을 밀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100% 프레임이 틀어진 사진이 나온다.
위 사진은 정말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이다. 얼마큼 탔을지도 예측이 안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되지 않은 순간에서 만들어낸 결과다. 당연히 우연의 결과이기 때문에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당연히 위 사진은 B컷이 아닌 C컷이지만, 필름 컷 하나의 사소함이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도 참 아름답게 만들어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