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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Sep 07. 2022

[짧은 생각] 실수인지  깨닫는 순간

사람들의 고집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하였다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믿음을 보여주려 하는 성향이 있다. 분명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에도,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한 비난을 듣기도 싫고, 그렇다고 잘못을 시인하기도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편으론,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좀 멀리 돌아가 보자. 소크라테스는 분명 사람들을 붙잡고 "왜?"라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결론으로 "당신은 잘못되었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할 뿐이야"라는 말로 비수를 찔렀다. 사실 정답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권위를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당한다.

어차피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잘못된 믿음으로, 잘못된 선택으로 옳지 못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히틀러는 자신이 러시아의 겨울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양만 점령한다면 분명 조선은 자신의 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은 타인의 지식이 아닌 "자신의 짧은 견해" 때문에 내린 결론이다. 분명 히틀러는 잘 훈련되고 조직화된 독일군을 가지고 있었으니 스탈린의 소련쯤은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초반에 그랬다. 하지만 히틀러는 스탈린을 알지 못했다. 스탈린은 분명 수십 개의 사단이 전멸하였다면, 수백 개의 사단이 다시 창설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틀러가 생각했던 상식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마찬가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군주만 잡고, 수도만 점령하면 자연스럽게 조선 땅은 다 항복할 거라 생각했다. 설며 의병들이 들고 일어설 줄 누가 알았겠는가?

히틀러는 분명 겨울 전에 러시아 대륙을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는 역사의 "실수"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분명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면 역사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며, 우리는 그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이겨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역사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우리가 배우는 역사 속에서는 성공의 역사도 있지만 실패의 역사도 있을 것이고, 그 실패들 속에서 다시 한번 교훈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최악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로 끊임없이 배우지만 그 역사에 대한 교훈은 단 몇 분도 되지 않아 잊어버린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필리핀의 최악의 독재자였던 마르코스와 사치의 상징이었던 이멜다 여사에 대한 과거는 분명 잊어버린 지 오래다. 사치의 여왕이며 최악의 독재자의 부인이었던 이멜다 여사의 93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마닐라 시내 도처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마르코스의 후손은 다시 한번 필리핀의 정권을 얻게 된다. 분명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으로 추축 된 독재자 마르코스는 사라지고, 젊은 후손들은 어느 순간 마르코스의 실책을 잃어버린 지 오래가 되었다.

이멜다 여사는 여전히 퍼스트레이디인가?

이런 모습은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타임지 전면에 나온 The Strongman's Daughter는 어느 한편에서는 "실세"라는 의미로 적었다는 말로, 어느 한편에서는 사전적 의미로 "독재자"라는 의미로 의미 없는 영어 단어 논쟁만 벌일 뿐이다. 분명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은 독재자를 향해 시위를 했고, 독재자가 물러나라고 소리를 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민주화 운동가들이 서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우리가 그들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을 땐, 정말 그 사람이 맞는가?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만든다.

타임지의 표지는 여전히 "단어"에 대해서 논쟁을 일으킬 뿐이다.

어느 순간 20대가 우경화가 되었다 한다. 그들이 충분한 재산이 있는지, 부동산 시세를 걱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치솟아 오르는 부동산 시세의 실책 때문이라고, 경제 지표의 하락 때문이라고 했다. 또 어느 한편에서는 너무나도 "도덕적인" 정권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정권이 나라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이야길 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정확하지만은 않다. 어느 평론가가 이야길 했듯 정치가 "유희"가 되고 그 유희 속에서 평론가들을 관리하는 기획사가 존재하는 사회. 우리는 그들의 유희를 즐기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대체해서 셀럽 정치인들과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떠든다. 그리고 유명한 유튜브 독립 언론매체가 하나의 셀럽으로 떠오른다. 1시간 넘는 기사에 별 내용 없는 거 같지만 사람들은 내용에 열광하고 열심히 슈퍼 챗에 돈을 기부한다. 어느 물론 한 진영만 그런 것일까? 반대 진영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칸 지하방에 사는 사람들마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열심히 있는 돈 없는 돈 털어가며 돈을 쏟아 붙는다. 그게 나라를 위한 길이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실수를 깨닫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런 이야길 하기 시작한다. 두 진영의 모습을 보자. 두 곴다 똑같은 상황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일 뿐이다. 덧글 몇 개를 살펴봐도 어차피 뻔한 모습. 우리는 순간 깨닫는다. 그리고 실수를 했다고 생각을 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만, 분명 우리는 "What if..."라는 전재를 두고 움직여야 한다. 분명 누군가는 하늘 높은 듯 오르는 부동산 시세를 잡아줄 거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현 경제상황을 해결해 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어떠한가? 그리고 실수라고 깨닫는 순간 현실을 부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내가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독재자를 비판했다면, 그 독재자와 함께 숨 쉬며 살아온 자신의 젊은 날이 부정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이야길 한다. 그래서 더 우경화되어야 한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의 실수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리고 더욱 부정한다. 난 잘못하지 않았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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