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사라진 세상. 그리고 욕심이 사라진 세상. 단지 그들이 꿈꾸는 것은 안정된 직장과 워라벨뿐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과거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래 왔지만 우리 선배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젊은이들의 삶은 안 그래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순간은 잠깐이나마 꿈을 꿀 수 있는 그 순간뿐.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나약하다고 비난할 뿐이다.
과거에도 그래 왔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숨을 건다. 아니, 모든 것의 목표가 "공무원"이 된 것처럼 올인을 하는 세상. 하지만 막상 들어간 공무원의 세상은 어떠한가? 워라벨을 꿈꾸며 정년까지 안정적인 포지션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은 잠시뿐인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가? 막상 들어가 본 세상의 문턱은 "시보 떡"이라는 악습과 진상 민원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허위 야근을 하지 않으면 박봉에 숨쉬기조차 힘든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잠시 시각을 노량진으로 돌려보자. 그곳은 젊은이들이 컵밥 한 그릇에 의존하며 미래의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의 메카가 된 지 오래다. 아니, 일부 언론에서는 "공무원"의 열기는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 ~ 2년도 안된 초임 공무원들의 이탈, "시보 떡"이라는 악습 때문에 고민하는 초임 공무원들의 눈물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이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많으니, 그 일을 한 번 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래. 공무원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준 사람은 몇 명이나 될지? 막상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상황 속에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면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 그래서, 그거 해서 밥은 먹고살 수 있는 거니? 그리고 저축은 가능하고? 그리고 그 돈 벌어서 어떻게 살려고?
이제 와서 지열한 경쟁에서 잠시 한 숨 쉬어가라고 이야길 한다. 적어도 중학교 2학년까지는 경쟁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 달콤한 말에 잠깐 취해있는 순간, 중학교 1학년의 한 순간의 늪에 따라 각자의 삶과 미래는 결정이 된다. 넌 그 성적으로 대학은 갈 수 없고, 겨우 그 성적으로 인 서울 대학을 꿈꾸는 것도 사치가 아니겠니?
이미 태어날 때부터 순서가 결정이 되는 세상.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택하려면, 태어나자마자 순번을 결정해야 한다. 그 순번에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첫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하물며 유치원조차 선착순 아닌 선착순이라는 굴레에 갇혀 태어나자마자 경험한 탈락의 순간을 또 한 번 경험하게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사립 초등학교를 선발하는 그 순간. 학부모들은 어느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합격 확률이 높아지는지, 어느 프린터로 지원서를 작성해야 합격에 유리한지를 송유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이미 젊은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서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의 삶에서 "공무원"이라는 환경은 한평생 안정적이고, 순서에 고통받지 않을 그런 안락한 공간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시험에 몇 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으며, 합격 혹은 불합격이란 임용시험 앞에 모두들 집중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결국은 어린 시절부터 고통받으며 각인되어온 "순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발버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순위"의 굴레에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이미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다. 아니, 그 누구도 그 순간의 선택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찾기도 쉽지 않다. 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미래의 역사학자, 미래의 철학자, 미래의 소설가를 꿈꾸기보다 미래의 주사보와 사무관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멀리 돌아보자. 책 한 권 마음 편하게 읽기보다는 우리는 "속독"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짧은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기 위해 읽는 독서의 능력. 외국어도 마찬가지로 토익의 지문을 풀기 위한 스킬로, 듣기의 스킬은 빠른 순간에 답을 찍기 위한 스킬로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이란 것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몇 번이나 주어졌을까? 때론 시원한 그늘에 앉아 책 한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그런 순간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 순간을 지나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순간은 축축하고 습한 음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