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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모임의 이유가 상실된 시대를 살며

by Simon de Cyrene

8살 어린 사촌동생이 내년 3월에 결혼을 한다. 그 사실이 추석에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알려졌다. 우리 가족은 친척들이 모였을 때 원래 티격태격하는 편이었고, 어제도 다른 때와 비슷했는데 어머니께선 유난히 예민해지셨고 결국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은 뒤집어졌다. 서로 아픈 상처를 건드렸고, 되돌이키기 힘들 정도의 강을 건너버렸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한 마디가 어제 그 난리가 난 이유를 설명해준다. '서른 살 짜리도 결혼을 하는데 너는 도대체 뭐를 하고 있는 거냐?' 그 사촌동생은 내 동생이나 나보다 학교도 덜 좋은 곳을 나왔고, 우리 어머니 시선에선 항상 뭔가 부족했는데 결혼을 우리 형제보다 먼저 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신 거다. 어머니께선 이것도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누가 봐도 어제 분위기는 그러한 사실관계들이 조합되어서 나온 것이었다.


익숙한 패턴이다. 친척들이 모이면 항상 그런 묘한 기류가 흘렀다. 삼촌과 이모들은 본인의 자녀, 즉 우리 사촌들의 근황에 따라 말이 많아지거나 적어졌다. 때로는 모임 자체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사촌이 대학에 삼수를 하거나 취업이 잘 안될 때는 말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잘 되면, 그 모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 대한 얘기만 계속 오갔다. 어제 모임은 사촌동생의 결혼이 주제였다.


이럴 거면 왜 모이는 걸까? 서로 모여서 진심으로 축하하거나 근황을 나누면서 함께 아파하지도 못할 것이라면 명절에 대체 왜 모이는 걸까? 서로 독립된 가정을 꾸린 후에 마치 경쟁을 하듯이 비교할 것이라면 대체 왜 모이는 걸까?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한 가족이 아니라 남남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생각해 보면, 형제가 독립한 후에 30년이 넘게 지났다면 그 형제들은 함께 산 시간보다 따로 산 시간이 훨씬 길지 않나?


그래도 가족이, 친척이, 혈연이 중요하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다면 모였을 때 왜 다들 지적질부터 시작을 하는 걸까? 어제 모였을 때 설 이후 처음 본 삼촌이, 목회를 하시는 삼촌이 내게 한 첫마디는 '너는 왜 그렇게 배가 나왔냐?'였다. 그게 기독교의 사랑이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끼리 할 말일까?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친척이니까, 친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럴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일 년에 10번도 보지 않는 친척끼리 그렇게 가깝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하고 싶다 하더라도 상대가 없어서 못할 수도 있는 것인데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것에 대해서 무슨 죄인 취급하듯이 취조하는 분위기는 대체... 아니 솔직히 일정 나이가 넘은 후에는 내 결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하나 가득 안고 있으면서 쿨하게 대하는 척하는 친척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이 모임에 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설은 그렇다고 치자. 한 해의 시작이니까 뭐 그 시작을 친척들끼리 한다고 치자. (사실 그에 대해서도 물음표는 있다. 아니, 많다.) 사실 농사를 짓는 지역이 아니면 추석은 이제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게 사실 아닌가? 그리고 인생은 짧은데 내가 한 시간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살고 싶다면 명절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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