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by Simon de Cyrene

오만한 사람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대놓고 오만한 사람이고, 두 번째는 본인이 오만하지 않다고 착각함으로 인해 오만 해지는 사람이다. 두 부류의 오만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자신이 오만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둘 중에 어느 부류가 더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난 후자라고 하겠다. 이는 전자의 경우 누구나 그 사람이 오만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오만함이 겉으로 드러나다 못해 철철 넘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인자하고 선할 수 있다. 이는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에 자신의 오만함을 치장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가리기 때문이다.


난 전자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알던 사람들은 '속이 그런 건 아닌데 그때는 너가 좀 재수 없었지'라고 웃으며 얘기해주기도 한다. 그 말을 직접 해준다는 건 간접적으로 '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오만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난 알고 있었다. 내 안에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사람 됐지'라는 생각과 함께 '난 진짜로 괜찮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알게 모르게 곳곳에서 나왔다. 고고하고 고결한 듯한, FM대로, 정석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내 시도들은 나에게 두 번째 부류의 오만함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출판]이란 글에서 내 스펙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사실은 그런 오만함이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리고 유튜브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사용하는 매체와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도. 마치 '난 대놓고 구독해 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스펙을 팔아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과 달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달까? 아 물론, 그런 생각을 대놓고 천박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깊게 파다 보니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고 난 나 자신을 그저 '정석대로 꼼수 쓰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노력파'라고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30대 초반 즈음에 페북에서 '학력은 공개하지 않습니다'라고 프로필에 써 놓은 사람들을 보고 '저건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오히려 학력을 의식한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아니, 본인이 다른 사람을 학력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본인이 학력을 밝히기 싫다면 그냥 공란으로 두면 되지 굳이 그런 걸 써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사실 '난 이렇게 학력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걸 내세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은 그런 마음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같은 현상도 다른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하든지 내 마음에 내가 확신이 있다면, 그 현상이 내 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되물을수록 확신이 서고 내가 내 마음을 지킬 자신이 있고 그 목적이 바르다면, 남들이 왈가왈부하더라도 그 길을 가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신에 대가 없는 자유로운 삶]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사실 그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어제 브런치에 유튜브를 한단 글을 쓰고, 나의 기준에서는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구독을 부탁한 것은 내가 어쩌면 소신에 대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려 한 것은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어왔던 것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답이다.


드라마가 뒤로 가면서 조금씩 무너지기는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느 정도 회차까지 이태원 클라쓰를 계속 본 것은 어쩌면 박새로이의 모습 (외관이 아니라 주관... 외관이라면 욕먹죠...)이 나와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틀을 깨기로 했다.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리고 어딘가는 필요한 길이라고 믿기에 그 과정에서 내가 갖고 있는 도구들은 최대한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그 도구들이 오롯이 내 힘만으로 갖게 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상기시키면서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그 도구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도구들을 사용하지도 않고 내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어쩌면 나의 가장 큰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 도구들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있었던, 어쩌면 아직도 있을지 모를 첫 번째 부류의 오만함이 나를 다시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도구들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 내가 믿는 신에게 당당할 수 있으면 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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