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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06. 2020

학교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14화

학교에서의 대화는 크게 학생들 간의 대화와 선생님과 학생 간의 대화로 구분할 수 있다. 선생님들 간의 대화는 직장에서의 대화와 비슷한 성격이기에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단 한 번도 남자만 있는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남자 중고등학교나 여자 중고등학교가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이 시리즈에서 내가 쓴 남자들 간의 대화와 여자들 간의 대화가 더 압축적이고 적나라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남녀공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미묘하게 섞여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이 학생들이 이성을 의식하면서 일어난다. 남자들은 본인들끼리 있으면 극단으로 갔을 폭력성을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호감이 있는 이성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제하고, 여자들도 남자들이 있기 때문에 상호 간의 기싸움을 겉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 안에 있는 타고난 기질들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나가게 된다.


나는 사실 그래서 모든 학교가 남녀공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에서 남혐과 여혐의 시작점은 남자와 여자를 동성끼리 몰아넣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남자만 또는 여자만 있는 공간에 있다 보니 그들은 이성에 대한 이미지를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생각하게 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이성과의 경험은 자신에게 호르몬 작용을 일으키는 이성과의 관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성]에 대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일부 영역에서 형성된 것 같고, 그러한 대상으로 취급되는 사람들은 폭력에 취약하게 된다. 그리고 이성과 함께 공존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폭력을 중심으로 이성에 대한 이미지를 확고하게 형성하게 된다.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남혐]과 [여혐]이 된다.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단순히 사귈 대상이나 성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고 남녀 간의 '다름'을 익히고 이를 존중할 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육'과정이자 사회화 과정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그런 과정이 상당수 학교에서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이라는데 있다.  


우리나라 학교들의 또 다른 문제는 모든 것이 경쟁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는 데 있다. 선생님들은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에 따른 말을 하고 그에 따라 학생들은 한 줄로 줄 세워진다. 심지어 수능은 등급으로 나눠서 사람이 등급으로 구분된다. 마치 고기를 분류하는 것처럼. 그리고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와 말은 적지 않은 경우에 그 등급에 따라 달라지고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기대되느냐에 따라 대우도 달라진다. 우열반이라는 신분제 같은 폭력적인 제도는 여전히 적지 않은 학교에 존재한다.


그런 학교의 문화는 학생들 간의 관계에서도 만들어진다. 아래 등급으로 분류된 학생들은 일탈을 하거나 우울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학생들의 대화도 그런 배경에서 형성된다. 윗등급으로 분류된 학생들은 또 그들대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우리나라의 교육 및 평가방법의 특성상 공부에만 매몰되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고 등수에 집착하도록 만들어진다.


아래 등급으로 분류되는 학생들 중에 건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은 그나마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어서 괜찮겠지만 이전 글들에서 썼듯이 우리나라는 군대문화와 가부장제가 가정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가정에서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성적이, 대학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 학교생활에서는.


그렇다 보니 아래 등급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은 그에 대한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거나 스스로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폭력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 약한 자들을 향하거나 자신이 차별받게 만든 [윗등급] 학생이나 자신을 차별하는 선생을 향한다. 그들은 들을 줄 모른다. 아니, 그들이 듣는 귀를 갖는 건 불가능하다. 그들의 분노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니까.


그들이 그렇게 분노하게 되는 데는 가정의 영향도 있지만 사실 결정적인 건 선생님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라는 식의 표현, 누가 몇 등을 했다는 식의 칭찬과 판단과 평가. 우리나라에서 선생님들에게 그런 말을 공개석상에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를 1등이라고 칭찬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1등을 못한 학생들을 다 아래로 뭉개는 것이다. 그게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을까?


난 사춘기를 중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보냈다. 직장 때문에 해외에 나와서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은 보통 자국에서 어느 정도 이상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 학교는 미국에서 공립학교보다는 수준이 높고, 사립명문보다는 낮은 정도의 교육 수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난 그 안에서 단 한 번도 선생님들이 공개적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다. Honor roll이라고 해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을 3등급으로 나눠서 평가하지만 그건 과목별이 아니라 그 학기 전체 과목 평점일 뿐 아니라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절반 정도가 그 3등급 안에는 들어갔기 때문에 그거로 인간으로서 개인의 우열이 정해지진 않았다. 물론, 한국 사람들끼리는 그 안에서도 예외였지만.


우리나라 학교들은 이처럼 분류하고, 차별하고 경쟁하는 문화가 만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체계에서는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교육하지 않고, 공교육이 미성년자들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입시와 줄 세우기가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화가 어떻게 이뤄진단 말인가?


전쟁터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다운 대화가 자리 잡을 틈은 거의 없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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