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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30. 2020

연인 간의 대화

대화의 원리. 13화

앞에서 남자들 간의 대화, 그리고 여자들 간의 대화에 대한 글은 어쩌면 이 글을 쓰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이 동성 간의 관계에서 충족받지 못하는 부분을 연인에게서 충족받고 싶어 하고, 연인 간의 다툼은 대부분 그 부분을 상대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범주 밖에 있는 자들에 대하여

남자들 간의 대화에 대한 글에서 설명했듯이 남자들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도 경쟁하고 서로 기싸움을 한다. 서로 공감을 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러한 경향성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고, 어릴수록 그런 경향이 보통 더 강한 듯하다.


하지만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 그런 승부는 제대로, 적나라하게 나지 않는다. 이는 사회성이 부족을 넘어 결여되어 있지 않은 이상 남자들도 서로 어느 정도 '척'을 하고 예의를 지키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보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고 서로 다 티를 내고 있겠지만, 남자들도 자신들 나름대로 그런 노력을 하며 대화를 한다. 그렇다 보니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지는 않는다.


그런 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들을 연인 간의 관계에서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린 '마초'라고 한다.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 본인이 뭔가 열등감을 느끼거나 열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연인관계에서, 또는 본인보다 육체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확인하고자 할 때가 있다. 그게 극단적으로 가면 n번방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조금 약하게 드러나면 관계에서 모든 것을 본인이 주도하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화'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없다. 이는 그들은 '듣는 척'도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연인과의 대화

그런 사람들은 열외로 놓고 연인 간의 대화 또는 남녀 간의 대화에서 남자들의 대화 패턴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자존감이 낮은 남자 또는 아직 본인으로 내면이 가득 찬 남자들도 극단적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상대에게 잘 맞춰준다. 그런 단계에서 남자들은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공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반응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남자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대가 무슨 말을 했고, 자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것을 잘 기억 못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의도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반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부인하는 남자들도 있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남자들은 그들 속에 일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호감이 있는 사람과의 연애 자체가 목표로 설정되고 그 이후에는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도 기억하고, 섬세하게 대해주고, 말도 잘 들어주는데 그건 남자들의 일부가 상대와 연인관계가 되기 위해 그렇게 작용하는 면이 있다. 남자들이 그걸 의도하고 의식적으로 그런다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유인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면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또 다른 목적이 설정하고, 그 목적을 위해 상대에게 맞춰가기 시작한다. 남자들이 뭔가 실수를 했을 때 '뭐가 미안한데?'라고 여자 친구가 물어본 것에 대해서 완벽하게 대답을 해내는 남자가 많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남자는 경주마처럼 직진하며 앞만 보기 때문에 코너를 틀어서 갑자기 벽에 부딪히면 자신이 왜 그 벽에 부딪히게 되는 지를 알지 못한다. 그건 그 사람이 자신의 연인을 덜 사랑하거나 덜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때 그들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어쨌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고 화가 난 것이 분명하기에 '뭐 때문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네가 설명해주면 다음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게. 네가 마음 아프고 화나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지 무관심하거나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잘 들어주고 잘 맞춰주는 편인데, 인간은 누구도 그렇게 목적지향적인 자세를 항상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연애기간이 길어지거나 자신의 삶의 다른 영역에서 변화가 생기면 남자들의 모습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들의 진짜 모습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인지, 들을 줄 아는 사람인지는 그런 지점에서 드러난다. 본질적인 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갈등이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관계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그럴 때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화나 짜증을 내면 남자들이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는 것은 남자들은 항상 목적지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받아왔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것을 할 뿐인데, 여자들은 그에 대해서 해결책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하니 남자들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주위에 여자 사람이 많지 않았던 남자일수록, 힘들어보지 않고 본인이 하는 일은 항상 잘되었던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성이 강한 듯하다. 이는 그들에게 모든 관계는 경쟁과 목적으로 구성되고, 자신의 방식이 항상 옳았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감수성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어머니와 많이 소통하며 자란 사람들은 감성적이거나 감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발달해 있기도 하고, 여자 형제가 있는 사람들도 그런 면이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상의 연애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대화하면서 해왔거나 여사친이 많은 사람들도 목적지향적인 경향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는 나이가 있는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줄 줄 아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경험하고 훈련된 게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연인과의 대화

반면에 여자들은 연애 자체가 목표로 설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여자들에게 연인은 '온전한 나의 편'인 사람,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항상 내 편이면서 나에 대한 좋은 면만 봐주는 사람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남자라서 이 부분은 장담할 수 없지만). 이는 여자들은 여자들 간의 대화에서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받고 정서적으로 채워짐을 경험하지만,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그 관계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있고 서로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도 않고 그렇게 받아주기를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연애를 많이 못해 봤거나 주위에 여사친이 많지 않은 남자들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말한 것일 뿐인데 그걸 여자 친구가 섭섭해하거나 삐졌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할 때가 있다. 화장이 잘 안 먹어서 안 먹었다고 한 것일 뿐인데, 옷이 안 어울려서 그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말했을 뿐인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남자들은 진짜로 여자들이 연인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조금 나은 남자들은 상황에 따른 정답은 알지만 자신의 연인이 왜 그런 것을 바라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자들이 연인관계에서 기대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나의 편이 되어주는 것,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나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것,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 그 영역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것. 그게 우리가 사랑해야 하고 연인이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물론, 아무리 연인관계라 하더라도 본인이 감당할 부분은 감당해야 한다. 남녀관계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얘기를 연인에게 너무 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반면 여자들은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내고 상대에게 의지를 넘어 의존하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여자들이 항상, 모든 상황에서 남자들에게 그런 말이나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정말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조언이 필요할 때는 연인이 그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게 필요하다면 여자들도 남자들만큼이나 직구로 물어본다. '나 이런저런 상황이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이다.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으면서 자신의 힘듦, 머리 아픈 상황에 대해서 여자들이 털어놓는 것은 '내 편이 되어줄래, 긍정적으로 반응해 줄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자신의 연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하며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면 된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노력

남자들도 그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힘들 때 여자 친구 앞에서 무너질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부족한 면을 그대로 보여줄 줄 알아야 하며, 여자 친구에게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남자들 중에 기꺼이 그러하는 남자들은 많지 않다. 그놈의 '남자다움' 때문에.


어떤 이들은 '남자들이 그렇게 찔찔 짜면 여자들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물론, 매일 같이 그렇게 울어대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대부분 안다. 남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잘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을. 여자들은 그걸 무의식 중에라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약한 면을 보내줄 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도 과하게 그럴 필요는 없지만, 상대에게 기댈 필요가 있을 때는 연인에게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연인이 지금 공감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언을 원하는 것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우선 공감해주는 말을 하면서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여자분들은 '아니 무슨 그렇게 공식까지 만들어서 얘기해야 하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남자들 중에는 그런 공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여자들에게 필요한 노력

사실 여자분들은 남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주고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가 악의가 없고 자신의 진심으로 본인을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상대에게 무조건 '그것도 모르냐, 센스가 그렇게 없냐'라고 타박할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해주면 관계가 안정될 수 있다. 그런 센스가 있거나 경험적으로 아는 남자들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대부분 남자들은 사실 A에 대해서 A라고 말하면 그걸 A로 알아듣지 A'도 있다는 것을 고려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대부분 옆을 가린 경주마가 되도록 훈련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남자들은 특히 우리 사회에서 칭찬을 받지 못하고 계속 채찍질만 경험하고 자란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칭찬에 굉장히 약한 편이다. 칭찬이 무엇을 의미하나? 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대가 모멸감이 느낄 수준의 칭찬만 아니라면, 칭찬을 자주 해주는 것이 남자들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반대로 남자들이 못한 것을 계속 지적하면 남자들은 그 관계에서도 경쟁적이 되어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가 타고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런 남녀 차이가 존재한단 것이고, 그게 타고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회, 교육, 문화적인 특징들은 남자와 여자들을 이 글과 이전 글 두 개에서 설명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렇다면 너무 상대나 상대 성별 탓을 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떨까?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해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노력만으로도 연인관계는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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