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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15. 2020

남자들 간의 대화

대화의 원리. 11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고 떠들고 헤어졌다. 허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피곤하고 지쳐서 '이게 뭐지? 왜 이러지?' 싶었다. 집에 오는 내내 지난 몇 시간 동안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깨달았다. 남자들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해하지 말자. 남자들도 '형식적으로는' 대화를 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대화의 형식을 빌려서 하는 말'에는 '듣기'라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이 '남자들의 대화'라고 하는 것은 보통 각자 자신의 말을 하다 종결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제대한 이후 그 자리가 허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각자의 군생활 얘기를 번갈아가면서 얘기하다 헤어졌다. 그런데 사실 누가 다른 사람의 군생활 얘기에 관심이나 있겠나? 남자들도 다른 사람 군생활 얘기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군생활 얘기를 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


내가 대화의 형식을 빌린 '남자들의 대화'에 '듣기'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남자들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더 궁금해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들도 상대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가는 남자들의 말은 보통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 또는 그와 관련된 본인의 경험'이지 '그 사람의 상황과 그 사람을 고려한 반응'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남자들이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 수용받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모두가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누구도 나의 얘기를 진짜로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 남자들은 그런 점에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얘기를 한참 하고 나면 상대방이 자신의 얘기를 다 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한국 남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서도 마초적인 남자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인인 남자들도 보통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조곤조곤 들으면서 세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도 상대의 고민에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는 한다.


이러한 남자들의 특성은 과학적으로는 호르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직 명확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과 지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자들은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도 공격적이고 지배적이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상대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주기보다는 상대의 상황이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들에게 '관대함'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둔함'과도 실질적인 동의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관대함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둔함으로 작용하여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살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있다. 그런 남자들이 호르몬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남자들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의 접점이 많았거나 누나 또는 여사친들과 접점이 많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즉, 잘 들어주는 편인 남자들의 경우 후천적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에 공감하며 수긍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저도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는 그런 면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곳곳에서 공격적이고 되고 지배력을 확장하려 든다. 오해하지 말자, 공격적이 되고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부수거나 거칠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말을 적게 하고 나이스 하게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이 주도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남자들도 상황에 따라 상대의 말을 잘 듣고 그에 맞춰 반응하기도 한다. 일적인 측면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털어놓을 때, 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남자들도 상대의 말을 듣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한다. 그러한 남자들의 듣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다.


그런 대화의 예외가 있다면, 그건 굉장히 많은 것을 함께 경험했거나 서로를 안지 오래된 관계일 것이다. 감정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힘든 상황을 함께 버텨낸 남자들은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리고 현실에서의 힘든 상황들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대화를 한다. 서로를 오래 알았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서로가 경험했던 것에 대한 지식이 많다 보니 오래 알았던 사람들은 상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적으로도 교류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관계에서도 남자들은 오히려 많은 것을 얘기하지 않는단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관계에서 특별히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과 상황을 알 것이라고 믿으면 그것만으로도 수용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남자들 간에 그런 관계가 많이, 자주 형성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잘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들 간에 그런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은 보통 그런 관계를 아주 많이 소중하게 여긴다.


연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글을 오래, 많이 써 왔다 보니 아주 가끔씩 '결혼은 누구에게 더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난 망설임 없이 '남자'라고 한다. 이는 남자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본인이 지금 당장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영역에서 공감과 감정적 위로가 필요한데 남자들은 가장 가까운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도 소소하고 일상적인 공감과 감정적 위로는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들 간에 받는 공감과 위로는 크고, 묵직하다. 하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한 때 기러기 아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리방 너머에 있는 여성과 대화만이라도 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유리방'을 찾았던 것은 남자들이 둔해서 항상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 안에는 공감과 감정적 위로가 필요한 영역이 있단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 유리방들 중 상당수는 결국 유사성행위를 하는 업소로 변질되었단 면에서 절대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하지만 선배의 손에 이끌려 딱 한 번 갔던, 내가 '자매들이 나오는 술집'이라고 부르는 곳에 갔을 때 내가 본 광경에 의하면 남자들은 소위 말하는 '2차' 때문에 그런 곳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감정적 필요와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할지 몰라서 그곳을 찾는 면도 있는 듯하다. 3명이 같이 갔는데 그 3명은 서로 대화는 하나도 하지 않고 모두 본인 옆에 앉은 처음 보는 여성분들에게 자신의 힘들고 짜증 나고 힘든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었다.


애초에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끌려갔었기에 난 소위 말하는 2차에는 가지 않고 혼자 먼저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내 머리는 엄청나게 복잡했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난 그런 곳에 가는 인간을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내가 본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처음 본 젊은 여자에게 본인의 얘기를 다 털어놓는 불쌍한 중생들이었다. 사회적으로는 너무나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문화와 유흥업소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배척되어야만 한다. 그 안에서 몸과 마음과 삶이 망가지는 여성이 너무 많기에. 그런데 그곳을 찾는 남자들이, 본인이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외로움과 정서적 불안을 그곳에서 해소하는 게 뭔가 너무 이상하면서도 그들이 그 자리에서 불쌍하게 보이기도 해서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비판과 비난을 쏟아붓지는 못하겠더라. 그런 내가 싫어지면서도 또 예전 같이 반응하지 못하겠는 복잡한 감정과 상태에 꽤나 오래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결혼은 남자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이성으로 느껴지는 사람과의 관계나 매우 가까운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에서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공감과 감정적 위로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그건 상대와 공감하는 방법을 알고 결혼을 인생에 필요한 도구로 여기지 않는 사람과 가정을 꾸렸을 때의 얘기긴 하다. 그렇지 않은 결혼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을 더 외롭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으니까.


분명한 것은 남자들도 일상에서의 소소한 공감과 감정적 위로가 필요한데, 남자들의 관계에서는 그게 쉽사리 형성되지 못한다는데 있다. 이 역시도 뭔가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난 전형적인 문과이기에 이 글은 여기에서 맺으려 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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