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Apr 08. 2020

부모와 자녀의 대화

대화의 원리. 10화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이 내가 앞의 글들에서 설명한 가부장제와 군대문화로 가득한 사회에서 개인으로 살다 부모가 된다. 사람들은 모두 성장과정에서 상처들을 몇 개씩은 갖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점 몇 가지 이상을 갖고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 상처, 불만족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상처가 많은 부모는, 가부장제와 군대문화에서 억압을 받으며 자란 부모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가부장적이고 군대에서 상급자와 같은 존재로 군림한다. 그런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 본인의 생각과 방식을 강요하며, 아이가 그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심한 경우에 체벌을 한다. 본인이 부모, 선생님, 친구들에게 그렇게 대우 받았을 때, 상처받았을 때의 감정과 마음은 기억하지 못하고 본인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자신의 자녀에게 한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현실이지만 그건 그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서 그런 경험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상대의 지위고하와 무관하게 말을 듣는 법을 상당한 기간동안 연습하지 않는 이상, 그 부모도 본인이 경험한 부모와 자녀관계가 자신의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가 본인에게 했던 역할과 방식을 그대로 자신의 자녀에게 대물림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신도 사실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다른 방식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겠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모든 것은 부모의 잘못이다. 당신이 부모라면 이는 꼭 본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본인이 본인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나 감정의 골은 당신 잘못이 아니란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일수록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적인 군대문화가 모든 것을 아래사람 잘못으로 만들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기간이 길수록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 틀에서 벗어나서 내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부모가 대화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대했던, 상명하복식의 대화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그걸 넘어서지 않는 이상 우리가 경험한 대화방식과 부모-자녀 관계가 그것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는 부모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얼마동안은.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고 내 자아가 건강해지고 상처가 회복되면, 부모가 바뀌지 않더라도 부모를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게 된다. 부모님 또한 그 부모에게 받은 것을 물려줬을 뿐이고, 그 위로 올라가다보면 우리 조상들이 처했던 상황이나 우리 사회의 문화가 어느 순간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일제의 지배를 받은 후에는 극심한 경제난에 전쟁까지 겪고 독재정권을 경험한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분들의 부모는 현실에서 거룩하게 '자녀를 이렇게 키워야지'라는 방식으로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항상 생존이 과제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 아픔들이 가부장제, 군대문화와 결합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으로 안정만 된다면, 그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걸 넘어서고 나면 나의 대화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그게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똑같이 말하고 나서도 최소한 상대에게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된다. 그렇게 대화할 수 있을 때 부모가 된다면, 아이에게 무조건 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의견도 존중하면서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아이의 관점에서 상황과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실수했을 때 아이에게 기꺼이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그 부모가 본인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아이에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직 부모가 되기는 커녕 내 가정도 꾸리지 못했지만, 난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날 때야 비로소 내  안에 쌓여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를 고쳐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라고, 부모님이 힘든 건 내 탓이 아니라고 방어막을 치다보니 부모님과 엄청나게 부딪혔고 동생은 '형은 대체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왜 그러냐'는 말도 들었었다. 


맞는 말이었다. 난 사실 별 것도 아닌 것까지도 방어막을 쳤고, 내 자신을 보호하려 들었다. 그냥 넘기는 것이 그 당시에는 더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입은 아픔과 상처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 방어막을 쳐야한다고 생각했다. 내 자아가 건강하지 않고, 그로 인해 내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온 것을 알기에 내가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 패턴이 내 아이나 아내에게도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본을, 뿌리를 고치기 위해서 그렇게 이를 악물고 어쩌면 주위에서 보기엔 필요 이상인 수준으로 모든 문제에 목숨을 걸고 방어막을 쳤다. 


그 과정에서 이 곳에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부모님은 그 시기에 나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것이 다시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는 그 화살을 예전보다 잘 받아낼 수 있었다. 이는 내가 부모님께 상처를 드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것까지 부모님 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사실 우리 부모님이 내게 거칠게 대하신 것도 우리 부모님 탓이 아니었다. 우리 양가 조부모님들은 모두 6.25 때 피난을 오신 분들이었고, 두 분은 모두 양가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분들이었다. 그렇게 자라면서 두 분이 감당해야 할게 얼마나 많았겠나? 내 조부모님들은 또 낯선 남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셨겠나? 그 과정에서 사랑, 배려는 사치였을 것이다. 두 분이 두 분의 표현, 대화 방식을 갖게 된 것도 본인들 탓이 아니었다. 두 분은 여전히 '그런게 어디있냐'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두 분의 그러한 면을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두 분께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대하진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주위에서 날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힘든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진짜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그 전에 나는 생각나는대로 필터 없이 말을 하는 편이거나 내 말에 누군가 상처를 받으면 그걸 이해하지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의도가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며 부딪혔던 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회복된 후에는 처음으로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상대가 혹시라도 내 말에 힘들어하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우리의 대화는 가정의 뿌리를 타고 들어와 영향을 미친다. 대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접한 방식 외의 방식을 접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그대로 우리 자녀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야 우리 가정도, 사회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앞의 글들에서도 설명했듯이 대화 시작은 가정에서 이뤄진다. 가정 안의 대화가 바로 잡혀야 다른 영역에서의 대화도 바로 잡힐 수 있다. 가정이 그 시작점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전 09화 대화의 화학작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