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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14. 2020

직장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15화

직장에서의 대화가 제대로 오가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직장 또는 회사가 어떤 집단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직장은 한자로는 職場인데 이는 일을 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는 영어로 workplace인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는 어떤 곳인가? 會社는 모여 있는 곳이고, 영어로 회사를 의미하는 company는 본래 빵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한다. Company는 회사 외에도 함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직장 혹은 회사는 그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조금 더 의역을 하면 먹고살기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 정도가 회사의 목적과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회사 안에서는 각자가 맡은 역할과 기능이 있을 뿐이지 회사의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수평한 관계가 전제될 것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관리하는 사람과 실무를 하는 사람의 구분이 있을 수 있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희소성이 있거나 경험이 풍부해서 숙련도가 높고 일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상을 더 제공함으로써 조직을 유지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이런 개념보다 상사, 부하직원이라는 개념이 회사에서 더 자주 사용된다. 상사는 윗사람, 부하는 아랫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은 처음부터 사람을 상하관계로 나눠버린다. 영어권의 경우 상사들에게 manager이나 director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는 그 사람이 담당하는 역할을 지칭하는 것이기 그 자체로 상하관계를 형성하진 않는다. Manager은 자신과 일하는 주니어들이 하는 일들을 전반적으로 관리 (manage)하는 사람이고, director은 일을 이끌고 나가는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회사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있는 회사에서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상사는 관리자가 아니라 지시자가 되고, 주니어는 자신의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시행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될 경우 상사가 책임까지 다 지면 참 좋을 텐데, 우리나라 회사들 중 적지 않은 회사들은 일이 잘못되면 실무자가 책임을 진다. 권한과 책임이 같이 가는 게 정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권한은 상사가 갖고 책임은 부하직원이 갖는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구조가 형성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에 전제되어 있는 군대문화와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군대는 다양한 기능이 조합되어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동질적인 기능을 가진 동질적인 집단을 만들어서 그 집단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상명하복이 중요하지만, 회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능적인 역할을 해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측면에서 군대와 회사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사실 군대문화는 회사가 잘 운영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장유유서'는 사적인 관계나 가족에서 필요한 질서지 그게 회사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질서는 아니다. 회사는 전적으로 일이 잘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렇다면 실력과 생산성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군대와 유교문화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회사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자신이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부하직원들의 말에는 귀를 닫고, 부하직원들은 처음에는 뭔가 소통을 해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이를 포기한다. 사람들은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혼자 떠들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맞춰주는 그림을 안주거리 삼아 비판하거나 희화하지만 그런 문화는 사실 회사의 생산성을 저하하기 때문에 하나의 집단의 기준에서 봤을 때 그런 문화는 배척할 대상이다. 


관리자가 어떻게 자신이 관리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관리를 한단 말인가? 지시하는 사람이 전반적인 그림을 모르고 지시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어디에 있나? 하물며 군대에서도 어느 정도의 기능적 분화는 이뤄지기 지휘관들은 부하들의 조언을 '듣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인데, 회사가 잘못되면 구성원들은 사회적으로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회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회사들에서 주니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주니어가 목소리를 내면 이는 일단 

'튀는 소리'로 간주된다. 


80년대까지는 이런 문화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산업 내에서의 변화는 적었고 오래 일한 사람들이 아는 게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그런가? 회사생활은 겨우 2년밖에 안 했지만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난 본인이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아는 실장님, 팀장님과 선배님과 함께 일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온라인은 지금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작았는데 실장님, 팀장님과 선배님은 학부시절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많이 했던 내가 홍보실에서 온라인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다며 내게 한 프로젝트를 통으로 담당시키셨었다. 그 프로그램을 만들고 얼마 안 되어 퇴사했지만, 그 이후에도 그 프로그램은 나랑 연배가 비슷한 선배들이 담당했는데 이는 선배들이 자신보다 후배가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는 더 잘 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젠 상사들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후배들이 더 잘 알기도 하고,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시대의 변화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르기 때문에 그걸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다 하거나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툴, 경험과 기술로 그들을 잘 관리만 해주는 것이 회사를 위해서 더 좋은 일이다. 그런 상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게 대화하고 들을 줄 아는 상사가 된다면 그 사람은 자신과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더 우호적으로 형성할 수 있게 될 텐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사적인 대화나 관계는 그러한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직급이나 직책이 높다고 해서 대뜸 직원의 사생활을 캐묻거나 이를 안주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상하관계가 너무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는 관계에서 좋은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사적 영역은 보호해줘야 한다. 이는 그렇지 않으면 그 영역까지 공적 영역으로 회부되어서 그 사람이 말라비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은 상사가 아니라 형이니 편하게 대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일을 할 때 그에게 편하게 귀 기울여주고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다. 물론, 사람들끼리 관계가 어색하고 불편한 것보다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게 생산성을 높인다. 하지만 그렇게 사적으로도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을 열고 신뢰를 획득한 다음에 시도할 일이지 지위를 갖고 찢어서 끄집어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편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술자리 한두 번으로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사들이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현실 속에서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자신의 사적 영역을 그렇게 쉽게 여는 것도 불가능하다. 


입사만 하면 거의 정년을 보장해주는 분위기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이제 정년을 보장해주는 회사는 거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렇게 쉽게 하려면 계약서에 정년보장을 해주고 그렇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하는 조항을 넣어주든지...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일부터 하고, 상대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한다. 상사는 필연적으로 어렵고 불편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의 평가에 따라 직원들의 입지와 수입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사들은 관계를 갑자기 끌어올리려 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상사가 직원들의 말을 듣는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신보다 아랫사람의 말을 정말 잘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예의가 없고 쉽게 끼어들고 들을 줄 몰라서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객기는 찍어 눌러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그들의 허점을 짚어낼 때 눌러진다. 우리나라처럼 상하관계가 명확한 문화 속에서는 직원들이 상사 말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해도 듣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상대할 때도 상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그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소통은 그 이후에 일어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물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채용하는 것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누구였나? 그건 그런 사람을 걸러내지 못한 그 의사결정권자의 실책이고, 조직은 그런 무능력한 의사결정권자의 짐을 지게 된다. 윗사람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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