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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20. 2020

가스 라이팅이 만연한 사회

대화의 원리. 16화

가스 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


얼마 전 종영한 '하이에나'에는 스타트업 CEO가 가스 라이팅을 통해서 직원들이 모든 것을 본인 탓인 것처럼 만든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CEO는 심지어 본인을 만나러 온 변호사들에게도 가스 라이팅을 시도하는데, 그 장면이 뭔가 엄청나거나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사실 우리 사회에는 가스 라이팅이 만연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이에나에 나오는 가스 라이팅의 경우 그 결과가 참혹했고 적나라하기 때문에 드라마 안에서 가스 라이팅이 부각될 수 있었지만 사실 우리는, 아니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수시로 가스 라이팅을 시도하며 살아간다. 이는 연인, 학교,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에서 화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인들 다툼의 원인은 주로 무엇인가? 두 사람이 본인의 의도대로 관계에서 특정한 사안이 결정되거나 진행되지 않아서 다툼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두 사람은 상대를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복종할 것을 지시하며, 동급생들 사이에서 권력관계는 결국 상대를 내 마음대로 다루고 싶기 때문에 일어난다. 직장에서도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을 본인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뭔가 잘못되면 부하직원들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회적으로 '항상 남 탓을 한다'라고만 말한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기적이라 부른다. 그런데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 상당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한 점이 있어서 그것을 인정하면 상대는 그것을 파고 들어서 우리의 잘못을 확장시키고 확대 해석한다. 우리가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전쟁터와 같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가스 라이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물론, 시도한다고 해서 가스 라이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선 가스 라이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하관계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고, 가스 라이팅의 방법이 교묘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 라이팅에도 급이 있고 통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능수능란하지도 않고, 때로는 권력관계가 가스 라이팅을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에 가스 라이팅이 지금까지는 엄청나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가스 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고, 드라마에서 에피소드로 나올 정도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상하관계와 갑을관계가 고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스 라이팅의 본질은 나는 항상 옳고, 상대는 항상 틀린 것이다. 그리고 뭔가가 잘못되면 그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는데 그게 가능한 것은 가스 라이팅을 하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듣거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나의 주장만 쏴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 라이팅을 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이기심'이 있다. 자신만 위하는, 온 세상이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가스 라이팅을 만연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가스 라이팅이 이토록 만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쟁적인 사회적 분위기'다. 무조건 이겨야 하고 내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사람들은 나의 승리만을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서 '듣기'는 상실되었고 '말하기'만 남았다. 거기에 가부장제와 군대문화가 결합하니 가스 라이팅이 잘 통하는 상하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틈을 타고 가스 라이팅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대화의 상실, 정확하게 말하면 듣기의 상실이었다. 이게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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