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소개팅을 했고, 조금 더 알아갔던 분과 얘기를 하다 브런치에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그분은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결혼하셨던 것 아니시죠?'라고 물으시더라.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쓰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나도 걱정되었던 부분이다. 결혼도, 이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도 될지, 올해 초에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 되었다. 그때뿐이었을까? 글 하나, 하나를 쓸 때마다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써도 된다고, 쓸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사실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 중에 몇몇 분들이 결혼하신 분들이 가끔 '결혼도 안 해 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결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냐?'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사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내가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현상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파고든다.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케이스들을 보고, 분석하면서 원리를 도출해 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마지막에는 원리와 예외, 그리고 인과관계를 도출해 낸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작업을 내 전공을 놓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서른 살에는 꼭 결혼을 하고 싶었던 지금의 30대 후반의 싱글 남자인 나는 내가 경험하는 소개팅, 연애, 이별과 더불어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의 연애, 이별, 결혼, 이혼을 놓고 분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 언제가 될지, 나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된다면 최대한 이상에 가까운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 내 글이 만약 설득력을 갖는다면, 그건 아마 결혼을 하거나 이혼한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전부로 여기는 반면 난 한 걸음 물러나서 다양한 케이스들을 비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여정은 2017년 3월부터 지금까지, 3년 반이 조금 넘게 써온 연애, 결혼과 사랑에 대한 나의 글들의 정리 작업이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부족하고, 순간순간 필연적으로 내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이성적으로 이상적인 연애와 사랑은 못하겠지만, 상대에게 내가 실수를 했을 때는 그것을 인지하고, 이해해서 진심을 담아 사과는 하고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는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랑의 풍경] 시리즈를 마치면 4년을 가득 채울 이 여정은 어쩌면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하고, 글을 쓰면 쓸수록 내 안에 더 강하게 드는 확신은 연애, 결혼과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이성으로 유지하고 깊이를 더해가야 한단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어떤 면에선가는 부딪히게 되어 있다. 솔메이트들도 서로 맞지 않는 작은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는 감정으로 버텨내지지 않는다. 연애를 할 때는 그런 부분들을 일단 넘기고 그 불편함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고 잊을 수 있지만 결혼을 하면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밥을 먹는 사람과는 그게 될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어떤 경우에는 몇 달에 한두 번씩 보는 관계에서도 불편한 점들이 어떻게 같이 산다고 그냥 해결이 되겠나?
그 차이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이성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일방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대는 노력하지 않으면, 그건 연인이나 부부관계가 아니라 노예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연애를 시작할 때는 감정이 주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연인관계와 결혼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노력이다. 그 순간부터 감정은 이성과 노력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고,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힘을 감정이 주지 못할 때,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연애와 결혼에서 감정, 이성과 노력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 난 개인적으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토론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토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무엇이 먼저이든지 간에 인간에게는 선한 면도 있지만 악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악하다면 선함이 생길 유인이 없기 때문에 성선설이 맞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선함과 악함의 선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연애와 결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감정이겠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는 감정, 이성과 노력의 균형이 필요하다. 감정 없는 연애와 결혼은 감옥생활이고, 이성과 노력 없는 연애와 결혼은 마약에 취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결혼생활의 경우 특히 그렇다. 연애야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지고 두 사람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결혼은 사적인 성격과 함께 공적인 성격도 갖는다. 만약 감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본인과 상대를 위해서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와 결혼을 할지를 놓고 고민할 때, 상대가 그러한 준비를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양보하고 맞춰갈 줄 아는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애와 결혼이 사람을 무조건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은 연애와 결혼은 다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모든 것은 내게 달려있다. 그 상대도 결국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